사도행전

21-01-12 06:41

45. 자기 신념과 종교 관습의 위험성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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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45. 자기신념과 종교관습의 위험성

 

사도행전 11:1–18 

1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10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11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12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3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4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15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변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적 생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누구입니까?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입니다. 이전까지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하는 천동설을 믿고 있었지요?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천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주장했고 이는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마치 이와 같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던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평생 자신의 신념에 갇혀 외골수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은 옳다고 믿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잘못되었습니다. 자신은 정의라고 믿고 주장하는 것이 정작 불의합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이라고 주장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작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신념과 신앙이 결합되었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믿고 있던 정치적 신념과 신앙이 결합되면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형태로 표출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선교단체인 인터콥이 상주에서 수련회를 강행하고 흩어지면서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지역사회에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예배의 자유를 주장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가 정부의 권위보다 위에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들은 정부가 방역의 실책을 자신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자신들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했고, 선교를 위한 헌신을 다짐했고, 세상을 위해 기도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헌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신앙적 열정으로 말미암아 이웃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고, 실제로 코로나에 감염되어 고통가운데 죽어가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구원해야 할 이웃들이 복음을 듣기 전에 감염되어 죽어간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시편1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우리가 회복시키고 치유해야할 이 터가 무너지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인터콥의 수련회 강행은 터를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성경적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신념과 신앙이 결합되었을 때 나타나는 폭력적인 행태는 막을 도리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이 가진 잘못된 신념과 신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는 것 때문에 그를 비난합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더러운 죄를 범했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는 장면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장면은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도착한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베드로가 들어서자 냉랭한 기운을 느낍니다. 그가 온 것을 기뻐하고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사나운 눈초리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들과 형제들은 베드로에게 실망했습니다. 그가 신앙을 저 버리고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사도행전 11:1–3 

1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비난했다고 말하죠.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이 무엇입니까?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타락하고 더러운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따라서 정결한 유대인이 더러운 이방인과 접촉하게 되면 더럽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 가장 예민했던 사람들이 할례당이라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먹은 것은 정결법을 무시한 더러운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에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정결법을 어긴 것에 대해서만 비난하고 있습니다. 

사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베드로의 잘못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신의 신념에 갇히게 되면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합니다. 

종교적 관습에 매이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제한하게 됩니다. 

우리는 대부분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상>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베푸신 은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틀 안에 갇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3박자 축복, 즉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사업의 축복), 강건함(건강)으로만 이해하는 성도들은 그것을 넘어서는 축복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3박자 축복의 틀 안에서 제한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틀만 깨져도 우리 안에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발견 할 텐데 잘 깨지 못합니다.  

 

베드로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는 자기신념과 유대적 종교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자신과 같은 할례파 사람들을 이해했습니다. 이에 자신이 경험한 일을 차례대로 설명합니다. 

4절부터가 그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우리가 이미 10장에 살펴보았던 내용입니다. 

욥바시에서 베드로가 기도할 때에 하늘로부터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여 내려오고, 그 안에는 부정한 짐승들이 있었지요. 

하나님의 음성이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니

베드로가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죠.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가 들입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었지요.

 

여기서 세 번이라는 것은 실제로 세 번이라는 숫자일수도 있고요. 그가 인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환상이 펼쳐졌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러면 당장에 순종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 저항합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조차 자신의 신념과 종교관습을 꺾지 않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괜찮다고 하는데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는데 자신은 부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후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이러한 태도가 얼마만큼 변하지 않는가를 보여주는 또 한 가지 사건이 등장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갈라디아서 2:11–14 

11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게바가 베드로입니다. 그가 안디옥 교회 성도와 함께 음식을 먹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곳에는 이방인들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고넬료의 집에서 음식을 먹었던 때와 동일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던 중에 소식을 듣습니다. 야고보와 일행들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먹던 음식을 남겨 두고 급하게 그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그러자 곁에 함께 있던 유대인들도 베드로와 함께 떠난 것입니다. 바나바조차도 흔들렸다는 것 아닙니까?

왜 그런 것입니까? 베드로와 할례파 유대인으로부터 비난받을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외식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정결법을 지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네가 그것을 믿는 사도로서 여전히 그러한 종교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느냐 고 책망한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여러분! 행여 우리 가운데는 이러한 모습이 없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자기 신념이나 종교적 관습은 아닙니다. 하나님조차도 깨기 어려운 신념을 붙잡고 신앙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코로나의 위중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면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막는 정부의 정책을 종교탄압이라고 규정하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대부분 현 정권이 반기독교 적이라고 규정하신 분들입니다.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영상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자유롭게 예배할 날을 위해서입니다. 조금 더 인내하고 참음으로 이전의 일상을 되찾고자 모두가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스크를 강요하는 것을 인권침해로, 대면예배를 중단시킨 것은 종교자유의 침해라고 주장한 미국과 유럽사회를 보십시오.

미국은 하루에 약4천명이 죽고 있습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600명 이상이 죽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8백 명 이상이 죽습니다. 하루에 말입니다.   

 

내 형제, 내 자매가 죽어가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 대면예배를 강행하려는 것은 결국 하나님도 말릴 수 없는 자기 신념일 뿐입니다. 

 

뉴질랜드에서 교제했던 분들의 사진이 페이스 북에 올라옵니다. 

성탄절 파티의 모습, 여행하는 모습, 함께 둘러앉아 예배하는 모습. 그들은 더 이상 마스크를끼지 않습니다. 확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바이러스를 잡을 수 있었는지를 압니다. 오래전 뉴질랜드 유학시절에 6명의 전도사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바이블 칼리지 다니던 중국인 한명이 결핵이 확진되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모든 학생들과 그해 학교를 함께 다녔던 학생들을 추적하여 전부 결핵검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공동체 가운데 저만 빼고 모두 결핵에 걸린 것입니다. 

매주 간호사 두 명이 공동체 숙소에 방문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약을 먹는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갑니다. 이렇게 6개월을 매주 방문했습니다.  

1년 후 제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에도 찾아와 혹시 결핵에 걸리지 않았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때 만약 우리 중 누군가 이것은 인권침해라고 하고 거부한다면 공동체 전체에 어려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항상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추어야 합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 아래에서의 자유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부의 법 아래에서의 자유입니다.  

 

로마서 13:1–7 

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여러분! 당시 로마정부는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정부에 대하여 반역하고 대항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비록 로마 정부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지만, 그 권세에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정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자 홉스는 말합니다. 

만약 정부가 없으면 만인이 만인에 대하여 투쟁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합니다. 그 악함을 억제하고 선을 장려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사역자로 세웠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만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정부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웠습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정부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세우신 하나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저도 현 정부의 반기독교적인 정책 대하여 반대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차별금지법입니다. 그렇다고 정부의 권위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정권이 교체 되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대할 수는 있어도 정부 자체의 권위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 신념과 신앙이 진정 성경적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내 신념과 신앙의 근거가 성경인지 아니면, 내가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인지, 또는 유투브의 가짜뉴스인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연약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분의 사역을 펼치실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9:10–13 

10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제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웃을 향한 긍휼이 없는 제사는 원치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의 사건은 제가 자주 언급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성경에 등장하는 사건 중에 가장 비참한 사건일 것입니다. 

사사기 나오는 입다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암몬과의 전쟁에 앞서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서 승리를 허락하시면 승리한 후 집으로 돌아갈 때 자신의 집에서 가장 먼저 나와 영접하는 그를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이후 그는 전쟁에 승리합니다. 

승리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 때 그 소식을 전해들은 딸이 소고를 들고 춤으로 추며 아버지를 마중나갑니다. 집에는 다른 시종들이 있었으나 딸은 아버지의 승리를 누구보다 축하고 하고 싶어 달려 나갑니다. 

한편, 입다는 자신을 향해 춤을 추며 오는 여인을 멀리서부터 바라봅니다. 가까이 가자 자신의 딸임을 확인하죠. 성경은 그를 무남독녀라고 말합니다. 

입다는 옷을 찢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었은즉 돌이키지 못하리라 하며 결국 딸을 번제로 드립니다. 

번제는 죽이고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참혹한 가정의 참사를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그의 잘못된 신앙과 열정이 결국 무남독녀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서원했으면 과연 돌이키지 못할까요?

하나님께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요?

하나님은 과연 인신제사를 받는 분이실까요?

당시 그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이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신념이며 이방 종교의 풍습을 따른 종교적 신념에 불과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내 자신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 내 신념들, 뼈 속까지 박혀 있는 종교적 관습들, 다 내려놓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 그 말씀 앞에 복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17절 후반부에 보시면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우리의 신념이 하나님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평생을 붙잡고 있는 종교적 관습이 하나님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마시고, 듣고 싶은 것만 듣지 마시고, 믿고 싶은 것만 믿지 마시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내 신념과 말씀이 부딪힐 때 저항하지 마시고 그 말씀에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올 한해 말씀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자신의 틀 안에 갇혀 있던 우리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그 자유를 누리시는 복된 한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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