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02-16 10:54

50. 선교의 원리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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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50. 선교의 원리

 

사도행전 13:4–12 

4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이 마술사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사도행전 강해 50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나바와 바울의 첫 번째 선교사역에 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1.선교의 주체는 성령님이십니다. 

선교는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사도행전 13:4

4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성령님께서 누구를 보낼지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하십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어디를 가고 싶다고 가는 것이 선교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결정하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령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 하셨고 그들을 보내십니다.

 

2.성령님은 교회를 통해 선교를 진행하시며 그 목적은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동역자로 삼아 이 일을 진행하십니다. 선교에 있어서 교회가 주도적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파트너로 삼아 선교의 사역을 진행하십니다. 이 또한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원리입니다. 

 

선교사를 세우고 파송하고 후원하는 모든 과정에 있어서 교회가 실제적인 역할을 감당합니다. 

오늘날 선교단체들이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지만 원래는 교회가 해야 할 사역입니다.

 

선교는 타문화권에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선교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선교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나라에 복음을 전하고 믿음의 사람을 모아 교회를 세우는 선교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교회의 5대 사명, 예배, 양육, 교제, 구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어려운 나라의 사람들을 구제하고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선교의 목적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2000년대 초반에 뉴질랜드에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왔습니다. 이민의 문의 활짝 열렸을 시기였습니다. 또 한국에 조기 유학바람이 불어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초중고 아이들을 많이 보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목적으로 대학선후배 몇 명이 모여 선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저도 이곳에서 훈련받고 사역에 합류했습니다. 제 아내를 만난 것도 이 선교회에서입니다. 아시안틴스클럽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토요일에 체육관을 빌려 아시안 학생들이 자유롭게 운동도 하고, K팝도 배우고, 한국분식도 먹고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 8명이 참석했는데 얼마 후 100여명이 모일정도로 활성화 되었습니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동료와 자유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유는 저는 이 사역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동료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이 일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뉴질랜드에 있는 아세안 학생들을 위해 기독교인들이 무언가 선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들어가는 재정을 대부분 교회에서 감당했었거든요. 칼리지교회를 개척하고 제가 담임으로 있었는데요, 다섯 여섯 가정이 모였습니다. 대부분 힘들게 일해서 헌금을 하십니다. 당시 저는 기타과외를 했고 아내는 홈케어를 했거든요. 그런데 토요일에 모이는 아이들은 대부분 잘사는 아이들이예요. 아이들이 올 때 비싼 외제타 타고 옵니다. 운동복이며 농구화가 명품들이예요. 한국에서 유학 보낼 정도면 여유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거든요. 그런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우리교회가 그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교회가 선교를 한다고 했을 때 그 목적은 명확해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에 반응한 자들을 모아 예배하는 자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할 때 그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과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은 대부분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들 아닙니까? 바울은 선교여행을 통해 결국 교회를 세웠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협력하는 세분의 선교사님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들이 직접 교회를 세우던 또는 그 일에 협력하던 결국 교회를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일에 물질과 기도로 동력해야 할 것입니다. 

 

3. 선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첫 번째 선교지가 어디입니까? 구브로입니다. 

선교대상이 누구입니까? 유대인들입니다. 

구브로라는 지명은 익숙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키프로스, 싸이프로스라고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지중해에 있는 섬입니다. 지명이 익숙한 이유는 바나바가 이곳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첫 번째 선교지를 정하면서 많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성도들도 금식하면서 성령님의 뜻을 물었을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응답이 구브로입니다. 왜냐하면 바나바에게 너무나 익숙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대상이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 또한 바나바와 바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자신들도 유대교에서 회심했거든요.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께서 어떤 사역을 맡기실 때 막연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나에게 익숙한 것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황당한 일을 명하시지는 않습니다. 집을 팔아 헌금하라 하지 않으시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만두고 신학공부 하라 하지 않으시거든요. 

 

하나님은 인격적이십니다. 이성적이며 합리적이십니다. 현실에서 벗어나 황당한 것을 원하는 분이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 저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좋은 땅이 있으니 사라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부흥시켜 줄 것이니 땅을 사서 예배당을 건축하라고 하면, 저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을 대단한 믿음으로 인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가 환상을 보았다고 해서 또는 어떤 음성을 들었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일부터 맡기십니다.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목사나 선교사가 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가까운 그 사람부터 전도하라고 명하십니다. 내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집 팔아서 헌금하라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감당할 수 있는 일부터 하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점차 사역의 경계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4. 선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시면,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을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사도행전 13:7

7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사도행전 13:12

12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에 있어서 힘썼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총독 서기오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바나바와 바울이 회당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어떤 내용인지 물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여러분! 세상에 지혜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성경에서 지혜를 단순히 지식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참된 목적과 의미를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두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돈에 대한 책들이 많습니다. 종합1위가 주식에 관련된 책이고요, <주린이가 알고싶은 최대질문77>입니다.  3위가 <2030축의 전환> 새로운 부와 힘을 탄생시킬 8가지 거대한 물결, 5위 <돈의 시나리오> 7위 <주식시장 무조건 따라하기> 15위 <돈의 심리학> 16위 <돈의 속성> 21 <친절한 주식책> 32 <돈의 미래> 33 <진짜 미국식 주식투자> 39 <주식투자 5일 완성> 40 <윌가의 영웅>

 

이러한 흐름은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이 돈에 쏠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속에서 급상승하는 책이 있는데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입니다. 

서울대 암병원 18년차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교수가 암 환자와 그 곁의 사람들을 모습을 보면서 의사로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담은 책입니다. 

 

이러한 흐름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의 가치를 추구하지만 그 속에 인생의 의미를 찾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혜를 찾고 싶어 하고 또 지혜롭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총독 서기오 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누군가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암으로 죽어가는 누군가에게 소망이 될 말씀은 무엇입니까?

주식에 대한 것입니까? 부동산 정보입니까? 아닙니다. 영생에 대한 말씀입니다.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죄사함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것 말고 다른 것이 있다면 말씀해 보십시오.  

 

코로나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삶에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붙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저들이 붙들 수 있는 것은 돈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흔들려도 돈만 있으면 삶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한해 소출이 풍성했던 부자가 있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대박이 난 것입니다. 주식을 하던 사업을 하던 대박 난 것입니다. 그는 창고를 크게 짖고 수확물을 저장합니다. 그는 창고에 쌓인 곡식을 보면서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대박이 나서 수십억의 수익이 난 것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이제 평생 먹고 살 모든 재산을 모았으니 평안히 쉬고 즐거워하자. 별장도 사고, 고급승용차로 바꾸고, 요트도 사서 여가도 보내고, 이런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가 어리석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내 생명을 가져가시면 드려야 합니다. 생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소유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날, 내가 쌓아둔 물질은 타인의 것이 됩니다. 부자라고 하루에 네끼 먹는 것 아닙니다. 매일 스테이크 먹는 것도 아니죠. 사람이 먹고 산다는 것이 뭐 그리 다르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삽니다. 

얼마나 헛되고 허무한 인생입니까?  

만일 그에게 하나님 말씀이 들려진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요?

그는 창고를 짖기 보다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의 물질을 흘려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의 주권자 앞에 겸손히 삶을 의탁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부자라고 권력자라고 하나님 말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인생의 결핍과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니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5.하나님 말씀이 증거될 때 곳에는 악한 영들이 대적하지만 성령님의 능력으로 승리합니다.

본문에 보면 총독 서기오 곁에 누가 있었는가 하면 마술사 엘루마입니다. 당시 권력층 곁에는 거짓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로 따지면 무당입니다. 우리 역사에도 보면 권력층 곁에는 용한 무당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그렇습니다. 세상의 지혜와 권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영적세계를 인정합니다. 

전에 분당에서 사역할 때 인데 판교지역을 지날 때 였습니다. 그곳에 첨단과학 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거든요. 아마도 개업을 하는지 무슨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주차장에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수십명 모여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나 보았더니 돼지 머리 올려놓고 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참 아이러니 했어요. 그 유능한 사람들이 돼지머리 앞에 절하는 모습. 

영적세계를 인정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까?

명절에 제사지내는 것도 영적세계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무당을 찾아가 점보고 굿하는 것도 영적세례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영적세계를 인정하며 살아갑니다.  

 

영적세계에는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거짓 선지자 엘루마는 악한 영에게 붙들린 사람입니다. 그가 바울이 총독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영적전투가 시작된 것입니다. 총독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했지만 그 곁의 거짓 선지자는 믿지 못하게 힘썼던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할 때 악한 영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 영혼이라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특히 믿음의 1세대들이 겪는 영적전투는 치열합니다. 구원은 나를 넘어서 후손들에게도 임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복음이 그 가정에 들어가는 것을 막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보면 믿음의 1세대들이 악한 영들의 공격을 많이 받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피해야 할까요? 무시할까요? 아닙니다. 대적해야 합니다. 

바울은 악한 영들을 대적합니다. 

사도행전 13:9–11 

9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바울은 악한 영에 사로잡힌 엘루마를 대적합니다. 

야고보서 4:7 

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어떻게 대적합니까?

먼저 그를 주목합니다. 주목했다는 것은 노려보았다는 것입니다. 엘루마의 눈을 쳐다보면서 그를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을 노려본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울이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 있지 않으면 악한 영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님의 통치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음을 말합니다. 그럴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요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않겠느냐?”

 

바울은 악한 영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악한 영은 거짓의 영입니다. 그들은 악행이 가득합니다. 마귀의 자식입니다. 의의 원수입니다.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합니다. 악한 영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영들의 활동을 보면서 그들의 정체를 분명히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저들을 거짓을 말합니다. 광명한 천사로 변장하여 진실과 거짓을 혼합하여 내밉니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넘어가죠. 저들은 분열의 영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오해하고 갈등하여 분열을 조장합니다. 저들은 분노의 영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분노를 일으켜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그 정체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포로 악한 영들을 쫒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도 잘못이지만 무시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영적세계는 분명히 있고 악한 영들은 활발히 활동합니다.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악한 영을 대적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엘루마는 앞을 얼마동안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혀 거짓과 불의로 총독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가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것은 내가 능력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활의 하신 주님의 권능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10–17

10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악한 영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말씀이 검이 상대를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 자신을 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해 져야 합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그럴 때 우리 곁에 악한 영들에 사로잡힌 자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밀알사회복지회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도 입양가정이라 교제하면서 공감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둘째가 중학교 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모속을 썩인 것입니다. 이 아이는 배 아파 낳은 아이입니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이 아이가 어떻게 속을 썩였는지 말하면 화가 치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내가 목회를 그만두더라도 이 자식 때려서라고 고쳐놔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로마서를 묵상하는데, 12장 1절 말씀이 가슴을 파고 든 것입니다. 

로마서 12:1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이라는 말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자비하심으로 대하시는데 나는 왜 둘째에게 그렇게 대하지 못했는가 하며 집에 들어갈 때 마다 문고리 잡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이에게 자비함으로 대하게 해 주옵소서. 

 

여러분!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들의 활동은 말씀의 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가 사로잡힐 때, 악한 영들의 모든 활동은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분노, 상처, 답답함, 두려움 등 그것이 힘을 잃고 결국 떠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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