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03-24 14:49

55. 참된 신앙 -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창조주를 믿음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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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55. 참된 신앙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창조주를 믿음

 

사도행전 14:11–18 

11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바울의 루스드라 선교의 장면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선천성 하반신 불구자였던 사람이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바울은 그 믿음을 보고 “네 발로 일어서라” 명하였고 이에 그가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에 대한 무리들의 반응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서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참된 신앙은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무리들의 이 놀라운 기적의 사건 앞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숭배하려고 합니다. 

11절에서 13절까지 내용입니다.

11절에 보면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렀다고 하는데 루스드라 사람들은 공용어인 헬라어와 지역방언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말했다는 것은 그들이 상당히 충격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신적 존재가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전해오던 전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헬라의 신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이 지역을 방문했는데 정체를 알지 못하는 나이든 부부인 빌레몬과 바우시스에 의해 환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환대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심판을 받았다는 전설입니다. 

 

무리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전설로 듣던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합니다. 아마도 바나바가 나이가 있어 보였고 풍기는 모습이 바울보다는 나았던 것이죠. 이 소문이 삽시간에 지역에 퍼진 것입니다.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도 듣게 됩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정성껏 섬겼던 신의 방문에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대문 앞에 왔다고 하는데 이 대문은 도시의 출입문을 말합니다. 아마도 성문 앞 광장에서 이 사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우스 신전의 제사장을 선두로 수많은 무리들이 제물을 들고 와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섬기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종교심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신으로 삼아 섬기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으면 불안해합니다. 아무리 신적 존재라고 해도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어야 만족합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까? 

신천지는 이만희를 신으로 믿거든요. 신천지 신도가 24만 명입니다. 이만희를 신으로 믿습니다. 사람이잖아요. TV앞에서 잘못했다고 절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신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을 재림예수로 믿습니다. 세계 7500여 교회와 300만 성도라고 자랑합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 JMS는 정명석씨를 신적존재로 믿습니다. 통일교는 또 어떻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어떻게 사람을 신으로 믿는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면 사람의 종교심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의지하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무지하고 연약합니다. 이것은 꼭 이단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 안에도 이런 부류의 종교인들이 많습니다. 

 

부교역자 때 만난 한 집사님은 유명한 포토그래퍼입니다. 연예인들 사진도 많이 찍으셨는데, 이 분 신앙이 참 신실했어요. 그때가 2006년 이었는데 손OO장로의 치유사역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이곳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 까페에서 이 집사님을 만났는데 이런 말씀을 하세요. 오른손을 내밀면서 손장로님께서 이 손을 잡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 장로님의 능력이 이 손에 남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 손으로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는 거예요. 저는 손OO장로님의 사역을 비판할 의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역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그릇된 종교심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려기보다는 보이는 것을 믿고 의지합니다. 

 

여러분! 그 어떤 능력 있는 사역자도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영적인 큰 도움을 주었을지라도 사람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비슷한 사건을 사도행전 3장에서 보았습니다. 베드로요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못 걷는 걸인을 고칩니다. 그가 일어나 성전 안으로 달려가 기뻐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을 목격한 성전의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솔로몬의 행각에 모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하였느리라” 고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치유와 기적의 사건이 일어났으니 오직 그 분만을 믿고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능력 있는 사역자의 기도, 탁월한 설교자의 설교, 은사 받은 누군가의 예언 등을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못된 사역자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을 자신에게 영적으로 종속시켜 버립니다. 목사에게 잘못하면 저주 받는다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또 연약한 성도들은 이런 목회자에게 영적으로 쉽게 의존해 버립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가 사람을 믿거나 의지하는 것에 대해 철저한 주의를 줍니다. 

고린도전서 3:4–7

4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탁월한 능력과 권능의 말씀을 전한 아볼로나 바울일지라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끝나고 이어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시작되는 모습을 봅니다. 사방으로 많은 물소리 같고 큰 우렛소리 같은 웅장한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압도된 가운데 천사가 말합니다.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요한은 이 황홀한 광경에 몰입되어 자신에 말하는 천사에게 엎드려 경배하려고 합니다. 이때 천사가 요한을 막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9:10 

10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천상의 존재인 천사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의 대상입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사람이 바나바와 바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4:14 

14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옷을 찢는 행위는 극도의 분노나 슬픔을 표현할 때 하는 행위였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경배 받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참람한 죄입니다.  

이사야 42:8

8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참된 신앙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합니다. 사람은 그 어떤 뛰어난 능력과 은사를 발휘한다고 하여도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2. 참된 신앙은 헛된 일을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4:15 

15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헛된 일이라고 말함으로 인간의 종교심으로 우상을 섬기는 것, 그것이 사람이든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든, 헛된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헛된 일에 빠져 있습니까? 

저희 집은 광수사 앞에 있습니다. 출입문을 열고 나가면 큰 불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면 합장을 하고 절을 합니다. 아침에 새벽예배 인도하고 돌아올 때면 수십 명의 불자들이 철야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들인 움직이지 않는 돌덩어리 조각품을 믿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속에 신성이 깃들어 있어서 자신의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다고 믿지는 않을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은 무언가 의지할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의 평안을 찾고 어려움을 극복하길 원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헛된 일입니까? 공들인 시간과 물질과 정성이 다 헛된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비단 부처상에만 절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고 경배하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재물이라는 단어는 맘몬 즉 돈 신을 의미합니다. 세상에 돈신이 있습니까? 없죠. 그런데 사람들이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니까 돈신이 된 것입니다. 돈을 하나님처럼 하나님을 돈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돈을 갖기 위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애쓰고 노력합니까? 그것은 돈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내 삶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돈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를 섬기는 것입니다. 내 삶의 풍요와 안정을 보장받기 위한 노력과 애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 대상이 기독교의 하나님일 뿐 실제로는 자신의 삶의 풍요와 안정을 위해 신앙을 갖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드리고 기도도 드리지만 이 모든 행위의 목적은 풍족한 삶, 안정된 삶에 있습니다. 이것을 보장 받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을 갖습니다. 

 

헛된 일입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드려진 모든 시간과 정성과 물질이 다 헛됩니다. 

참된 신앙은 이러한 헛된 행위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복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동안 바울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중심으로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달라질 때 복음전파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루스드라의 사람들은 이방인들입니다. 구약성경을 알지도 읽지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구약성경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구약성경은 구원에 대한 예언과 약속이며 이것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달랐습니다.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사건으로부터 시작했다면, 이방인들에게는 창세기 1장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당연히 신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릅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신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유신론자라고 합니다. 신이 없다고 하는 사람을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을 믿지 않기에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도 믿지 않습니다. 약137억만년 전 대폭발을 시작으로 우주가 팽창했고 그 가운데 자연적으로 생겨난 물질들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생명체가 생겨났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유신론자들은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이 있다고 믿지만 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신을 가상해 놓고 그것을 신이라고 믿으며 섬기게 됩니다. 

 

세상에 어디를 가도 유신론자들은 있습니다. 저마다의 신화가 있고 신상이 있고 그 신을 섬기는 나름의 방식이 있습니다. 문제는 신이 있음을 알지만 신이 어떤 존재인지 그 신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성경에는 몰렉신이 나옵니다. 가나안의 신입니다. 사람들은 이 신에게 아기들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신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원한다고 믿고 순결한 생명을 드림으로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신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무리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신이 어떤 존재인지 신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을 섬기는 모든 것은 헛된 일입니다. 헛된 일을 넘어서 가증하고 잔혹한 일입니다.  

 

바울은 신의 존재가 있음을 믿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의 복음전도 방식은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신이 있음을 알기에 신이 있음을 증명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저들이 잘못 알고 있는 신에 대하여 바로 알려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참 신이라면, 참 하나님 이라면 창조주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주 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이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피조물에는 우리도 포함됩니다.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를 알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신을 섬기는 모든 것이 헛된 일 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신을 어떻게 섬깁니까? 

 

피조물이 창조주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자신을 알리셔야 합니다. 피조물은 창조주께서 자신을 알리신 것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학자들은 계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피조물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이 계시는 두 가지입니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입니다. 일반계시는 자연계시라고도 합니다. 자연만물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알리셨기 때문입니다. 특별계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리셨기 때문에 성경계시라고도 합니다. 

바울은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일반계시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일반계시인 자연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무한 광대한 우주를 보면서 이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 보다 더 광대하신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봄이 되어 피어나는 꽃들의 향연을 보면서 이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름다운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주가 질서와 조화를 가지고 완벽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질서와 조화를 가지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 양심이 있어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선한 분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일반계시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피조물의 장엄함을 보면서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피조물 자체를 섬기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계시의 한계입니다. 참된 신앙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로마서 1:25

25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23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일반계신 자연계시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섬기는 참된 신앙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3. 참된 신앙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4:17

17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며 먹을 것을 거두게 하셔서 사람들이 기쁨으로 음식을 먹게끔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케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다스리는 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인 자연의 운행방식으로 돌아가도록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치 시계공처럼 시계를 만들어 놓고 저절로 돌아가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을 이신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의 운행에 관여하시고 피조물을 다스리십니다. 

 

참새 한 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 10:29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삶에 이러저러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지라도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됩니다. 

잠언 16:9

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가 제비를 뽑을 때 그 결과가 하나님의 작정대로 됩니다. 

잠언 16:33

33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우연은 없고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진행되고 결정됩니다. 

무한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계획까지도 세밀하게 관여하시고 간섭하시고 인도해 가십니다. 참된 신앙이란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만 믿는 것은 반쪽 신앙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고, 나의 삶을 주권자이시며 나의 삶을 인도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신앙이 우리 삶에 어떤 유익을 줍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게 합니다.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며 그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살아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은 인격이라는 것입니다. 지정의가 있는, 지식과 지혜가 있으시고, 기쁨과 분노와 사랑과 슬픔을 아시며, 그분의 선하신 뜻 가운데 자유롭게 행동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그 분을 어떻게 섬겨야 하겠습니까?

그에 걸맞은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가증스럽고 더러운 모든 경배행위를 멈추고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창조주의 뜻을 반역한 죄입니다. 

이사야 43:21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살아계신 분이신데 그분의 뜻을 거스를 수 있습니까? 우리 생명의 주권자이신데 그 분 앞에 ‘아니오’가 있을 수 있습니까?

 

이 신앙이 주는 또 하나의 유익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모든 것이 나의 결정과 뜻대로 된다면, 인생은 불확실하고 삶의 짐은 너무 무겁고 내 삶에 이루어진 모든 일들은 만족스럽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을 믿는 자들은, 모든 것을 감사로 그분의 뜻으로 여기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인내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고난과 아픔일이라 말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믿고 전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잘 못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살아계신 분이라고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합당한 경배를 드려야 한다고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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