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04-13 11:47

57. 교회가 주의 뜻을 분별하다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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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57. 교회가 주의 뜻을 분별하다

 

사도행전 15:1–21 

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기독교신앙은 기록된 말씀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알아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신 것은 오직 성경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만 바르게 해석되지 않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이단들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해석이 잘못되었습니다. 잘못된 성경해석은 잘못된 행위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입니다. 아니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말씀위에 세워졌고 교회의 모든 사역은 말씀의 통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바르게 해석하여 가르치지 않으면 그 위에 세우진 교회는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초대교회의 첫 번째 공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회 또는 총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속해 있는 서경노회가 이번 주에 정기회의가 있습니다. 각 지교회 모든 목사님들이 모여 지정된 안건에 대해 의논하고 결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노회도 있지만 총회도 있습니다. 총회는 각 노회를 대표하는 목사와 장로가 모여 회의하는 것입니다. 

장로교회의 정치제도는 이렇습니다. 각 지교회는 교회의 대표인 장로를 선출하게 됩니다. 장로님들의 회의를 당회라고 부릅니다. 각 지교회의 장로와 목사님들의 모임을 노회라고 합니다. 노회의 대표를 선출하여 장로교 전체의 회의를 진행하는데 이를 총회라고 합니다. 당회 위에 노회가 있고 노회위에 총회가 있습니다. 왜 복잡하게 이러한 제도를 두고 있는가? 그것은 교회가 진리위에 바르게 세워지기 위함입니다. 성도들은 당회의 치리 아래에 있고, 당회는 노회의 치리 아래 있습니다. 노회는 총회의 치리 아래 있습니다. 이 상위의 권위가 교회가 진리 안에서 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본문의 예루살렘 총회의 모습입니다. 안건은 할례입니다. 초대교회는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에 대한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1절에 보면, 

사도행전 15:1 

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어떤 사람이 유대로부터 내려왔다고 하는데, 예루살렘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안디옥교회로 온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주로 회심한 유대인들이 모였습니다. 반면 안디옥교회는 주로 이방인들입니다. 당시 안디옥교회는 부흥하는 교회였고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할 만큼 복음증거에 열심히 있었습니다. 또한 물질적으로 풍성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울 때 돕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부흥의 소식이 예루살렘에 알려졌고 그 중에 어떤 형제들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바나바와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사도행전 15:2

2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언제든 다툼과 변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다툼과 변론은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논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갈등은 되도록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만큼은 논쟁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때로 옳고 그름을 분별함에 있어 다툼과 분쟁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초대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신비한 체험이나 계시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자 여러분! 이 문제 있어서 성령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봅시다”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사도행전 11:27–28

27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안디옥교회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선지자들의 직통계시를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투고 논쟁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에 있어서 우리의 이성적 사고와 판단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어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간혹, “믿음으로 합시다. 은혜로 합시다! 라고 주장하면서 상식에 벗어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가 물질로 감당할 능력이 안 되면서, 건축을 무리하게 진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신앙이라고 포장합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사업이나 장사를 하시는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믿음으로 어떤 일을 벌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상식과 합리적 판단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4:28–32

28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 말씀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먼저 치러야 할 비용을 계산하라며 주신 말씀입니다. 무조건 예수님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제자가 되려면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망대를 세울 때 그 비용을 계산하는 것처럼, 전쟁을 치룰 때 전력을 비교하여 싸울 것인지 화친할 것인지 계산해 보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도 계산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 길이 정말 옳은 길인지, 그렇다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상식과 합리적 판단이 중요함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에서 불거진 할례의 문제는 적지 않은 다툼과 분쟁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교회는 이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에 가져가기로 결정합니다. 오늘날 당회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노회로, 노회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총회로 가져가는 것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과 신실한 장로들이 있기에 그들이 바른 결정을 해 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2절의 후반부를 보시면, 

사도행전 15:2

2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안디옥교회에서 파송된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고 총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그동안 안디옥 교회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던 안디옥교회의 부흥과 선교사역일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이 회심하고 주께로 돌아온 일들일 것입니다. 구브로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루스드라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 보고합니다. 

 

이렇듯 교회가 어떤 문제로 모였지만, 먼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나눔이 먼저여야 합니다. 그동안 교회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떠했는지 나누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꾸만 문제만 바라봅니다. 문제만 집중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크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작은 문제 앞에서 불안하고 염려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먼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나누다 보면 내 앞에 문제가 작아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비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지만,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나눈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우리 삶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지만, 먼저는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간혹 성도님들과 상담할 때가 있습니다. 삶에 어려운 문제를 목사와 함께 나누고 기도를 부탁하는 자리입니다. 많은 경우 성도님들은 발등에 떨어진 불같은 문제만 바라봅니다. 이때 저의 역할은 그동안 성도님의 삶에 함께 하신 하나님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성도님! 어떻게 예수님 믿게 되었어요?”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중에 가장 감사한 것은 무엇입니까?”

“최근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느낀 일은 무엇이었어요?”

 

문제만을 바라보는 시선을 하나님의 은혜를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 삶에 문제가 가볍게 여겨지고 이 문제 또한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길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은 항상 있어왔고, 그때 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중요한 것은 내 삶에 주어진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을 대하는 내 자신이 하나님을 신뢰하는가의 여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무리 어려운 삶의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행하신 모든 일을 먼저 말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고가 있은 후에 안건이 다루어집니다. 

먼저 바리새파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사도행전 15:5 

5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예루살렘 교회에는 바리새파에서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구제의 문제로 갈등을 겪지 않았습니까? 이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당연히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증표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조상대대로 지켜오던 것을 한 순간에 버린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이것을 충분히 이해한 사도들과 장로들은 의논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의논이 필요한 이유는 한 사람의 의견보다는 여러 사람의 의견이 낫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이것에 대한 예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탐지한 열 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사건을 언급합니다. 그들은 다수결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어겼으니 교회가 다수결로 결정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다수결로 거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이것과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세우기 위한 과정입니다. 만약 이러한 방식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결정하겠다는 것입니까? 결국 목사의 뜻이나 교회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몇 몇 사람의 의견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모두가 연약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뿐만 아니라 특별한 은사로 받은 사람들도 죄인입니다. 따라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시중든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어떤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려 할 때 의논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뜻을 확실히 받았어 하면서 어떤 일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남편 또는 아내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자녀들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내 주변에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의논이 필요한 것입니다. 충분히 의논한 후에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할례의 문제를 충분히 의논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5:6–7

6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세울 때는 충분한 의논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생각은 위험한 것입니다. 교회는 의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의논의 방향이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여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 총회는 많은 변론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성경은 중요한 두 개의 사건을 언급합니다. 베드로가 체험한 사건과 바울이 체험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는 이방인 백부장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는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을 부정하게 여겼던 사람입니다. 그는 환상 중에 부정한 동물을 잡아먹으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세 번이나 반복되지요. 이후 고넬료를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체험하고 다음과 같이 공회에서 증언합니다. 

사도행전 15:7–11

7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다음으로 바울과 바나바의 의견입니다. 

사도행전 15:12 

12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베드로와 바나바와 바울은 체험에 근거한 증거를 한 것입니다. 구원은 주 예수의 은혜로 받는 것이며 차별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영적인 체험이라 할지라도 주관적이기에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최종 권위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검되어야 합니다. 

 

이때 총회장 야고보가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개진합니다. 

여기 등장한 야고보는 사도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이 동생 야고보입니다. 그는 사도는 아니었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야고보의 결정한 사항입니다. 

사도행전 15:13–21

13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야고보는 시므온, 베드로입니다. 그의 체험이 성경의 말씀과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회복되고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된다는 말씀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즉 이방인들도 차별 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기록이 있고 이것을 베드로와 바나나 그리고 바울이 체험하였으니 결국, 이방인의 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며, 이것은 할례와 율법 준수와 무관하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함을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가 어려운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세웠는가를 보았습니다. 

1.하나님은 우리의 상식과 합리적 판단을 존중합니다.

2.하나님의 뜻을 세움에 있어 충분한 의논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3.하나님의 뜻은 세움에 있어 우리의 체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4.그러나 이 모든 것은 기록된 말씀으로 통해 확증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총회는 이러한 결정을 통해 교회가 더욱 견고해 졌고 복음 전파에 있어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러한 모습을 본받아 더욱 견고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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