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06-03 07:09

64. 우상의 도시에 전파된 복음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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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64. 우상의 도시에 전파된 복음

 

사도행전 17:16–34 

16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데살로니가에 이어 아덴에서의 바울의 선교의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적대적인 유대인들에 의해 쫓기게 되어 아덴으로 가게 됩니다. 아덴은 아테네입니다. 그리스 아테네는 익숙하실 것입니다. 지중해에서 약48km 떨어져 있는 아크로폴리스 바위 언덕에 세워진 요새화 된 도시입니다. 아덴은 헬라의 철학과 예술 및 과학의 중심지요, 민주주의의 발상지로서 특히 고대 세계에 가장 유명한 대학 도시였습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의 영향아래 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과연 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했을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장소는 아레오바고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뒤 쪽에 보이는 곳이 파르테논 신전입니다. 판테온 아파트 있잖아요. 판이 집이라는 뜻이고 테온이 신들이거든요. 신들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아덴은 수많은 신들의 도시였습니다. 아테네는 사람보다 신들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일본이 그렇거든요. 일본에 신들의 숫자가 80만이라고 하는데요, 아덴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신화속에서 살았고 신들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아레오바고는 당시 재판의 장소였고, 또한 철학자들의 연설을 듣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가르침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17:20–21 

20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그들은 새로운 지식에 대해 열려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탁월한 가르침이 있으면 그를 아레오바고에 세우고 연설을 들었습니다. 바울이 이곳에 서서 연설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바울은 과연 어떻게 복음을 전했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바울은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17:18 

18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바울은 어디를 가든 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했습니다.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시대에 따라 듣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의 주님이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그러나 본질을 담는 그릇은 시대나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에 복음의 상황화를 설명하면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곳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복음을 듣는 아덴 사람들의 상황에 맞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탁월함이 등장하는데요, 배울 것이 많습니다. 

 

사도행전 17:22–23 

22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은 처음부터 복음의 들이밀지 않습니다. 그들과의 접촉점을 정확하게 집고 그 부분을 통해 복음을 전합니다. 

사실 바울은 지금 격분한 상태에 있습니다. 

16절에 보시면, 

사도행전 17:16 

16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우상으로 가득한 도시와 그것에 심취된 사람들을 보며 격분한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격분’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두 번 나오는데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고 할 때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시며 분노하셨던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우상들로 가득한 도시를 보며 격분한 것입니다. 

이러한 격분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로 내가 손해 보거나 내 뜻대로 안될 때 격분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때 격분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는 냉정했고 이성적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두 가지 모습이 다 있어야 합니다.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운 것,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인해 가슴은 뜨겁지만, 그 사랑을 말과 행위로 표현할 때는 차가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진 현실을 보며 격분했지만 , 복음을 전할 때는 냉정하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일방적이거나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섬기는 모든 신들은 다 가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면서 시작합니다. 

“내가 이 도시들을 둘러보는데 여러 신상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어떤 신상은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이름을 새긴 신상도 보았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여러분들은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제 제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그 신이 어떤 분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우상을 인정해서가 아닙니다. 그들과의 접촉점을 찾고 그것으로 부터 복음을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접촉점을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만일 여러분의 남편이 제사를 지내는 분이라고 해봅시다. 시아버지 제삿날에 불신남편에게 

‘사람이 죽으면 천당 아니면 지옥에 가는 것이지, 무슨 제사야!’ 

라고 감정적으로 말하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이것을 접촉점으로 삼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니까 영혼을 인정하는 것 같은데, 맞아 세상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세상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도 있어. 그것이 영적세계야.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땅에 썩지만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거야. 그런데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죽은 조상들이 영혼 상태로 떠돈다고 믿는 것이지. 그러나 우리 영혼은 죽으면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 

하면서 복음을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의 접촉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하여 무례하면 안 됩니다. 그들의 우상숭배와 잘못된 신앙을 보면서 격분하는 마음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들에 무감각하며 안됩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정죄하는 자세로 대하면 안 됩니다.  

저희 집은 광수사 앞에 있어 불자들을 자주 봅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들어가다 보면 밤새 절에서 철야기도를 마친 분들을 마주칩니다. 저분들이 하나님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저 열심과 헌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이단사상을 증거하고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자들에 대하여 격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대할 때는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가슴은 뜨겁지만, 머리는 차가워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의 접촉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상대하는 사람들은 유신론자들입니다. 신이 있다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 신이 있다고 하는 유신론입니다. 신이 있지만 인간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범주에서는 신이 있다고 인정하기에 유신론에 포함됩니다. 유신론 가운데도 신이 많다고 하는 다신론과 모든 것이 신이라고 하는 범신론 그리고 신은 한분이라고 하는 유일신론이 있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다신론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신이 어떤 분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에 대하여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신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이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셔야 합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자신을 계시하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계시는 두 가지인데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입니다. 일반 계시는 피조물에 깃들어 있는 창조주의 계시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계시입니다. 반면 특별계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구원계시라고도 하는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아덴 사람들에게 일반계시의 차원에서 접근하여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복음전파 방식은 로마서에서도 등장하는데, 특별계시, 구원계시를 설명하기 전에 1,2장에서 일반계시의 측면에서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일반계시는 무신론자가 아닌 이상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이것입니다. 

 

1.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사도행전 17:24 

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바울이 이 말을 할 때 사람들은 바울 뒤편에 보이는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신전에 신들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창조주께서는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렇겠죠. 아덴의 유신론자들은 이 부분에 동의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모든 피조만물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무신론자들은 빅뱅이 있었고 이후 여러 화학물질들이 진화되어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무에서 유가 창조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믿습니다. 

 

히브리서 3:4 

4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4For every house is built by someone, but God is the builder of everything.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희수야! 네 손에 쥐어진 장난감은 만든 사람이 있어, 그렇다면 나무는 누가 만들었을까? 저 넓은 바다는 누가 만들었을까? 하나님이 만드셨어. 

의성아! 네가 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꽃은 누가 만드셨을까? 하나님이 만드셨지, 그렇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만든 하나님은 얼마나 아름다우실까? 

저렇게 넓은 바다를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실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한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광대하신 분이란 말입니까? 그 하나님을 신전에 우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아덴의 사람들은 바울의 이 말에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2. 바울이 증거한 것은, 하나님은 섭리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섭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7:25–26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바울은 하나님은 그 어떤 결핍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사람에 의해 섬김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이 꼭 필요한 분은 아니십니다. 간혹 착각하는 것이 하나님은 나의 섬김이 필요한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에 충만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이나 섬김이나 헌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지 하나님에게 내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조주로서 계시고 섭리하시는 분으로 계십니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지요. 우리의 생명이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우연히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까? 그렇지 않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 어떤 생명일지라도 저절로 우연히 생겨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을 창조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존엄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창조한 생명을 다스리십니다. 

26절에 그들의 연대를 정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시간의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다는 것은 공간의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다스린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아덴 사람들은 비록 헬라철학에 깊이 빠져 있었지만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면 그 하나님은 반드시 다스릴 것입니다. 우리 삶을 섭리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창조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이 자신의 뜻과 계획가운데 운행하십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 주기로 돌듯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질서 가운데 순화되듯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질서 가운데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질서를 만들어 놓고 그것들이 저절로 움직이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그 모든 것을 운행하십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삶을 내버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주관하십니다.  

내가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7 

27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신전 안에 계십니까? 신상 안에 갇혀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으로 살아계시고,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하늘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배 가운데만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하는 곳 어디나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 가둘 수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집을 만들어 가둘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전 17:29 

29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아덴에는 수많은 신상들이 조각되어 있었고 그들은 신상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신상으로 만들어 가둘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만든 모든 신들 그리고 조각하여 만든 신상들 그리고 신에 대한 신화들 그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든 허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신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간을 위해서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중요한 세 번째 중요한 복음의 내용을 전합니다. 

 

3. 하나님은 심판주이십니다. 

사도행전 17:30–31

30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가 언제입니까? 바울의 복음을 받기 전까지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알지 못한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주권자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만일 거부하게 되면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그 결과는 심판입니다. 심판의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31절에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했다고 합니다. 정하신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예수라는 이름을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복음을 더 깊이 알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구원자이시며 심판주 이심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32–34

32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우상숭배로 가득한 아덴에서 바울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도 그가 전한 이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그분의 주권과 섭리,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전파해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전하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만, 동시에 심판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죄에 대하여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우리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이 복음을 믿으시고 또한 전파하시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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