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75. 직분자의 역할과 중요성
사도행전 20:28–38
28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바울의 밀레도에서의 고별설교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감독들에게 교회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0:28
28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여러분은 에베소 장로들입니다. 무엇을 당부합니까?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합니다. ‘삼가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보살피라’는 의미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0:28
28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살피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에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잘 살피고 양 떼를 잘 보살피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것을 위해 감독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좀 더 강력한 표현을 하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당시에 감독이라는 것은 오늘날 목사와 장로 권사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목사와 장로만을 언급하는데 제가 권사를 포함시킨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입니다.
권사는 한국교회에만 있는 독특한 직분입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하면서 여성을 돌보는 일에 중요했습니다. 이 일을 남성장로가 하는 것은 여러 가지 한계와 어려움이 있기에 권사를 세워 맡겼던 것입니다. 권사는 장로와 동일하게 투표를 통해 세웁니다. 투표를 한다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합니다. 첫째는 교회의 대표성을 갖는 다는 것이고 둘째는 은사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이 절차를 통해 교회는, 권사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운 것으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본문을 보시면 감독을 누가 세웠다고 합니까?
“성령이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성령님이 세운 것입니다. 성도들이 추천하고 투표하여 세운 장로와 권사는 성령님이 세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는 이러한 직분을 세우는 것일까요? 교회는 만인 제사장 아닙니까?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합니다. 차별이 있을 수 없고 지위 고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하셨던 사역을 계속해서 이어가도록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이를 통해 주님 대신 성도를 섬기게 하신 것입니다. 모두가 서로 섬겨야 하겠지만 특별히 이 일에 헌신된 자를 세워 주님의 손과 발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직분자의 주된 역할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 그 핵심을 말하고 있죠. 자기를 살피고, 온 양 떼를 돌보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의 주된 역할은 성도를 보살피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 성도를 보살펴야 합니다. 목사는 건강한 영의양식을 만들어 성도들에게 먹이고 장로와 권사는 성도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펴 그들을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 안에는 이러한 섬김의 직분을 명예와 계급으로 여기는 풍토가 있습니다. 이것은 외국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원래 장로교회는 카톨릭교회의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직분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대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한국교회 안에는 카톨릭적인 인식으로 직분을 이해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권찰, 서리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로 서열을 정해놓고 모든 직분은 장로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장로를 안수집사 가운데서 선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성도입니다. 그 가운데 은사에 따라서 목사로 섬기기도 하고, 장로로 섬기기도 하며, 권사와 집사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직분을 단순화하고자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장로와 집사 그리고 한국교회의 전통가운데서 요구되었던 권사의 직분, 이 세 직분만을 두려고 합니다. 장로와 권사는 주님께서 부탁한 양들인 성도를 돌보고, 집사는 교회 재정을 운영 집행하고 특별히 구제를 통해 긍휼사역을 담당할 것입니다.
만일 현재의 한국교회 모습처럼 모두가 집사이면 집사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분명한 역할과 책임이 부여되어야만 직분이 의미 있지 않겠습니까?
본문에 등장하는 감독은 오늘날 목사와 장로 그리고 권사입니다.
우리 교회도 내년이면 장로와 권사가 세워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투표를 통해 세워집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령님께서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이 세워질지 모릅니다. 누가 세워지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사도행전 20:28
28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살피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에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직분자 역할
1.주님의 양떼를 돌보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자기를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가십니다.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시죠.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양을 돌보는 사역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의 양입니까? 내 양, 주님의 양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양을 직분자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자신을 대신하여 돌보라고 말입니다.
혹시 “저는 직분자가 아닌데요, 저는 장로도 권사도 아니니 이 말씀은 저에게 해당이 없습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계십니까?
계속해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모두가 가정의 사역자, 일터의 사역자들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직분, 어머니로서의 직분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내 자녀이기 전에 주님의 자녀 주님의 양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이 말씀에서 제외되는 분들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양들을 돌보는 사역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럴만한 자격과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을 돌보는 사명을 주신 것은,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왜 베드로인가요? 라고 물으면 그것은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양들인, 자녀들, 성도들을 맡기신 것은 내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양을 돌보는 사명을 주시고 이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는지 결산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나오지요. 이렇게 시작됩니다.
마태복음 25:14
14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자기 소유를 맡기십니다. 각 사람의 재능에 따라 자기 소유를 맡기십니다. 자기 소유 즉 자신의 양들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결산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재능에 따라 다섯, 둘, 한 달란트를 맡기십니다. 그리고는 결산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주인이 자기의 양들을 돌보라고 부탁하신 후 결산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의 평가 기준은 무엇입니까? 충성입니다.
애쓰고 노력하여 달란트를 남긴 자들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충성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타고난 능력에 따라 잘하는 분도 있고요 그렇지 못한 분도 있거든요.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양들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후에 결산의 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나의 양들을 나의 뜻대로 돌보았느냐?” “너는 나의 양들이 나를 예배하고 섬길 수 있도록 충성을 다 했느냐?” “너는 나의 양들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나를 사랑하도록 양육했느냐?” 물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2. 주님의 양들을 사나운 이리와 같은 이단이나 거짓된 사역자로 부터 지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0:29–30
29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사나운 이리가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7:15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선한 삶의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16
16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못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 열매는 삶의 모습을 말합니다.
이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7:22–23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들의 설교나 신비한 은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삶 속에 선한 열매가 있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거짓과 불법이 있으면 아무리 탁월하게 설교하고 신비한 능력을 행할지라도 거짓 선지자 즉 이라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리의 특징은 주님의 양이 아니라 자기 양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30
30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자들이 이리 즉 거짓 선지자입니다.
어그러진 말은 성경말씀에서 벗어난 메시지를 말합니다. 또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전하면 주님의 양들인 성도들은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를 따르게 하기 위해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조작하여 가르칩니다.
참된 목사는 성도들이 주님을 따르도록 사역합니다. 자기는 없고 오직 주님만 영광 받으시고 주님만 일하시도록 사역합니다. 거짓 목사는 성도를 자기 종으로 만들어 결국 자기 이익을 챙깁니다.
우리가 참된 부모라면 자녀들이 주님을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의 성공을 따르도록 하면 안 됩니다.
3. 직분자은 성도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되고 본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33–35
33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은 3년 동안 에베소 사역을 하면서 자비량 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낮에는 텐트를 만들어 팔고 밤에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물론 그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사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성도들에게 본이 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본입니까?
사도행전 20:35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수고하여 즉 열심히 일하여 번 돈으로 약한 사람을 돕는 모습, 즉 일터사역자의 모습을 통해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단지 가르침이 아니라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바울이 자비량 사역했던 이유를 이렇게 언급합니다.
고린도전서 9:6
6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고린도전서 9:12
12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 자비량했다는 것입니다.
행여나 성도들 가운데 바울이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 하는 조금의 비난도 듣지 않기 위해 서 였습니다. 만일 그의 삶의 비난을 받게 되면 그가 전하는 메시지도 신뢰를 잃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스스로 벌면서 사역한 것입니다.
직분자들은 성도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통해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2–4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성도들에게 짐이 아니라 본이 되는 것은 직분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자세입니다.
목사가 성도를 위해 존재하지 성도가 목사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기 유익을 챙기느라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는 목사는 거짓 목사입니다. 주어진 사명의 기간 동안 충성스럽게 성도를 돌보고 조용히 떠나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직분의 중요성 -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기 때문
사도행전 20:28
28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누가 누구에게 샀다는 것입니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속량이라는 개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속량이라는 것은 몸값을 주고 죄인을 풀어 자유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치룬 대가를 속량 또는 구속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3:24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가 죄의 노예, 사단의 노예였습니다. 이런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댓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그것인 십자가입니다. 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르는데, 그 심판을 하나님께서 대신 치루신 것입니다. 무엇으로 치룬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못 박아 죽이는 심판입니다. 이런 의미로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3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속량과 구속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를 속량했다. 즉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사셨다는 것입니다 .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4:5–7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우리를 속량하시고 종이 신분에서 아들의 신분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로마서 8:32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이런 존재입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이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한 자들입니다. 그만큼 존귀한 분들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핏 값으로 사신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그 존귀한 자녀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얼마나 귀합니까?
교회는 하나님이 주님의 핏값을 치루고 사신 존귀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해서는 안됩니다. 내 자식이 아무리 허물이 크고 연약해도 부모는 자식을 감쌉니다. 사람들은 조롱하고 손가락질해도 부모는 자식 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욕해도 우리는 교회를 끌어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직분자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을 섬기는 직분자입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의 직분,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맡겨주신 양 떼를 충성스럽게 돌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직분자를 세우실 때 이 말씀 기억하시고 순종할 수 있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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