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09-14 10:10

78. 사명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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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78. 사명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

 

사도행전 21:27–36 

27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33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34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35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사도행전 강해 78번째 시간입니다. 

바울의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사건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야고보의 제안에 따라 서원을 한 네 명의 결례비용을 대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자신도 결례를 행함으로 유대인의 율법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이방지역을 다녀오게 되면 7칠 동안 정결예식을 행하게 했습니다.

27절에 보면 “그 이레가 거의 차매”라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결례를 마무리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사건의 발단이 됩니다. 

 

시기는 오순절입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도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옵니다. 그 가운데 아시아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아 지역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대표적인 도시가 어디입니까? 에베소입니다. 이곳에서 큰 소동이 있지 않았습니까? 데메드리오를 위시한 아데미신상을 만드는 조합원들이 바울의 동역자들을 붙잡고 극장에 모여 불법집회를 한 곳입니다. 또한 바울이 3년 동안 두란도 서원에서 복음을 가르쳤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시아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곧장 성전에 있는 유대인들을 충동하기 시작하였고 삽시간에 모인 사람들이 바울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사도행전 21:28–29 

28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뭐라고 충동질을 합니까?

이 사람은 각 처에서 1)우리 백성과 2)율법과 3)이곳을 비방하였다. 이곳은 성전이죠. 4)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라는 것입니다.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비방한 비방죄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가르침을 통해서 했던 죄이고, 두 번째는 지금 실제로 행하고 있는 성전모독죄입니다.

어떻게 성전을 모독했다는 것입니까?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이방인과 함께 성전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시내에 있었던 것을 보고, 이곳에도 함께 있으려니 확신한 것입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바울이 붙잡혀 끌려가 죽을 뻔한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들이 이렇게 격분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성전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 하는 거룩한 곳이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로만 한정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성전 안에는 들어갈 수 없고 성전 바깥에 제한된 장소에까지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성전 사진을 보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성전 사진

 

#경계석 사진

당시 경고문이 쓰인 명패가 두 개 발견되었는데요, 헬라오와 라틴어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그 어떤 외국인도 성전과 경내를 둘러싸는 이 바리케이드를 넘어설 수 없다. 그렇게 하다가 붙잡힌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에게 임할 죽음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얼마큼 성전을 중시했는지는 예수님의 죽음과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뒤집어 쓴 죄목이 성전모독죄입니다.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세우겠다고 하신 말씀을 오해하여 고소한 것입니다. 또한 스데반도 마찬가지로 성전을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고 흥분한 유대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거든요. 

 

사도행전 7장을 보실까요?

사도행전 7:47–48

47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이 대목에서 그들이 흥분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누군가 성전을 비난하는 것을 돌에 맞아 죽을 만큼 심각한 죄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바울은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율법과 성전을 비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2:16 

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고린도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16 

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갈라디아서 6:15

15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고 했습니다.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우리가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율법, 성전, 할례 이 세 가지는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가지 모두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방인들에게 국한된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즉 유대교 있다가 예수를 믿은 자들에게는 율법과 할례 그리고 건물로서의 성전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이어서 그것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바울은 야고보의 제안에 따라 7일 동안의 정결례를 행하고, 서원한 사람들의 제사비용을 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바울에 대해 악한 감정을 품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바울의 이러한 행동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왔고, 이것은 거룩한 성전을 모독하는 것이며 성전모독은 곧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니 당장 붙잡아 돌로 쳐 죽이려 한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사도행전 21:30 

30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여러분! 이 장면을 머리에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성전을 모독했다는 가짜뉴스가 삽시간에 퍼졌고 평소 그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인 것입니다. 그들은 상황을 살피지도 않고 곧장 바울을 붙잡아 성전 바깥으로 끌고 나갑니다. 

이때 바울의 뒤에서 성전 문이 쾅하고 닫힙니다. 

 

학자들은 이 순간을 바울이 건물로서의 성전과 결별하는 순간이라고 해석합니다. 

바울은 야고보의 제안에 따라 나름 유대인의 율법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퍼포먼스는 아무런 유익도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의 선한 의도도 오해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기로 작정한 사람은요, 상대방이 뭐를 해도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해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뭐를 해도 이해하거든요.

그래서 주의 일을 하면서 지나치게 사람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판단한 것은 결단력을 가지고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오해할 사람들은 오해합니다. 비난할 사람들은 비난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다면 소신을 갖고 진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집과 소신은 다릅니다. 고집은 자기중심이지만 소신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고집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소신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오해를 받고 손해를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소신을 갖고 그 일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야고보와 장로들이 짜낸 지혜는 바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사람의 지혜에 의지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기 가운데 있는 바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시는가를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방법

바울은 격분한 유대인들의 손에 붙잡혀 성전 밖으로 끌려갑니다. 그들은 이제 바울을 돌로 쳐 죽일 것입니다. 스데반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그 자리에 바울이 있었습니다. 이제 자신도 스데반처럼 순교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는 예루살렘에 오기 전부터 순교를 각오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로마에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죽기에는 너무 이른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사도행전 21:31–32 

31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성전사진 2.

지도를 보시면 이곳에 천부장의 본부가 있는 곳입니다. 천부장은 천명을 통솔하는 로마 군대 지휘관입니다. 로마의 군대조직 중 가장 큰 단위가 군단인데 6천명으로 구성됩니다. 1군단에 6명의 천부장이 존재했고요, 천부장은 100명을 거느리는 백부장 10명을 거느렸습니다. 안토니아 요새에 천부장이 있었다는 것은 천명의 군인이 주둔하고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왜 성전 옆에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당시 성전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유대인들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입니다. 안토니아 요새의 높이가 22m라고 해요. 때문에 성전 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사형 선고를 내린 곳도 이곳입니다.

 

천부장이 도착하자 순식간에 소란이 멈춥니다. 그가 군인들과 백부장을 동원하여 왔으니 쉽게 통제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천부장이 안오고 백부장이 왔다면 어떠했을까요?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최대 100명이거든요. 나름 통제할 수 있었겠지만,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천명의 군인이 동원된 것입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지는 모르지만 신속하게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굉장히 급박한 상황이거든요. 격분한 그들은 이미 손에 돌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만일 이때 천부장이 이곳에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백부장이 천부장에게 상황보고를 했을 것이고 지시가 내려지기 까지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바울이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에 천부장이 출동행고 위급한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우연이거나 재수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 바울이 해야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명이 다할 때까지 우리 생명을 지켜 주십니다. 

지난 일들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건강검진 때에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때 응급상황으로 병원에 갔을 때 마침 의사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때 교통사고가 났을 때 차가 조금이라고 정면으로 왔으면 어떠했을까요? 

1분 1초가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완벽하게 우리의 생명을 지키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명자의 생명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지금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잘못과 실수 때문에 일어난 일들일지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선을 이루어 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누구를 믿고 신뢰하겠습니까?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떻게 보호하시는지 계속해서 볼까요?

사도행전 21:34–36

34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35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군중들은 바울의 잘못을 묻는 천부장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흥분만 했지 바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던 것입니다. 성전을 모독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오긴 했지만 바울 곁에 이방인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런 저런 고소를 하지만 모두 가짜뉴스였습니다. 군중들을 계속해서 바울에게 달려들었고 천부장은 군인들에게 명령하여 바울을 들고 영내로 오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천부장에 의해 그리고 그가 거느리는 군인들의 보호 가운데 안전하게 영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로마의 군인들을 손길로 바울을 보호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은 세상 권력을 통해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세상 권력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정부를 세우시고 법과 제도를 통해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군인과 경찰 조직 세우시고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병원을 세우시고 의사를 통해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학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의 실험과 연구를 통해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그리고 우리를 통치하시는 방법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기도원으로 들어갑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형제들은 군대를 부정하고 입대하지 않습니다. 안식일교가 그렇지요.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제도화 된 교회를 부정하고 스스로 신앙생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지키십니다.  

 

우리는 무언가 직접적이고 직통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 역사 가운데 세워진 권력과 조직들을 통해 우리를 통치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과 교회라는 이분법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은 악한 것이고 교회는 선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영역의 주권자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것을 영역주권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 과학과 예술등 모든 영역에서 주인되시며 만물의 창조주로서 주권적인 통치를 행사하신다는 사상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로 말미암아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고 안전하게 보호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로마에 갈 때 까지 로마 군인들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명을 마치는 그 날까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용하여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어머니로서의 사명이 마칠 때까지 여러분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일터와 사업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시고 의지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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