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03-31 12:03

8.베드로의 설교1. 말세에 임한 구원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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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8. 베드로의 설교 1. 말세에 임한 구원의 소식

 

사도행전 2:14-21
14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지난 시간 우리는 성령강림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2천 년 전 오순절 임하신 성령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능력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들은 방언을 받아 각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큰일을 증거하였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이들은 이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였습니다. 새 술이라는 것은 발효되지 않은 술입니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부정적인 반응들이 있었고 그 중에 하나가 이러한 조롱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일어나 설교를 시작합니다. 그는 먼저 사람들의 오해를 바로잡습니다. 그리고나서 지금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총19편의 설교가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베드로, 바울의 설교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한 베드로의 설교가 첫 번째 설교입니다. 저자 누가는 베드로의 설교 전체를 옮겼다기 보다는 그가 기억하고 메모하여 핵심적 내용만을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죠.
14절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장소는 성전의 뜰일 것입니다. 오순절을 맞이하여 유대 전 지역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몰려들었고 주변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증거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놀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11사도가 함께 섰고 베드로가 담대하게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먼저 우리가 새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15절에 때가 제 삼시니, 제 삼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전9시입니다. 오순절에 그것도 아침부터 술에 취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베드로는 지금 일어난 일은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진 사건이고 특히 요엘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16-21절입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요엘의 예언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말세에 하나님의 영이 모든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성령님께서 특정한 자들에게만 임하셨습니다. 왕이나 제사장 선지들에게 임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일을 위해 구별된 자들에게만 임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성령의 임재는 간헐적 임재여서 떠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7절에 “말세에 되면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모든 자들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특별한 성도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임재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남녀와 성별이나 차이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목사나 장로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신실한 몇몇 성도들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열정이 넘치는 청년들이나 성인들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어린 아이들에게도 젊은이들에게도 또한 늙은이들에게도 임한다는 것입니다.
늙은이라고 하니까 어감이 좋지 않은데, 어르신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남종와 여종, 즉 남녀 차별 없이 모두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순절 이후 성령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임합니다.


전에 뉴질랜드 있을 때 공원에서 쉬고 있는데 어떤 분이 다가와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입니까? 물어봅니다. 그래서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방언을 할 줄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못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안에도 방언을 성령님이 임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죠.
그들은 방언을 받지 못한 것은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구분하고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성령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님이 임재하신 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오순절 사건은 성령님께서 신실하고 특별한 몇몇 성도들에게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신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래서 비록 어린 아이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한다면 그 안에 성령님이 임재하신 것입니다. 비록 말이 어눌하고 표현력이 없어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장애인이라고 할지라고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면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신 것입니다.
평생을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위해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들에게도 성령님은 임하십니다.

오순절 이후 성령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십니다.

 

두 번째 베드로의 설교는 오순절 성령 강림은 말세의 징조라는 것입니다.
17절 보시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그러면서 18-20절에 요엘이 예언한 말세의 징조들이 이미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원래 요엘의 예언에는 “말세에” 라는 말은 없고 “그 후에”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요엘서 2:28절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말세에” 라는 말로 바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요엘의 예언이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결국 말세가 시작되었고 또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말세가 무엇입니까? 종말을 의미합니다. 인류의 종말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시작이 있고 그리고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란 순환하거나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직선적으로 흘러갑니다. 창조에서 종말로 치닫고 있습니다.

세상과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졌고 모든 피조물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최근 N번방 사건으로 떠들썩합니다. 그곳에 성노예로 사진이 배포된 사람들의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옥 아닙니까? 또 그것을 관음하며 즐겼던 자들도 지옥의 삶을 산 것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이라는 책에서 말했던 악의 평범성이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건설한 죄악의 도시는 지옥이며 결국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당할 것입니다. 성경은 인류의 역사가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 악함이 더욱 횡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온 세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신음하고 있습니다. 말세입니다.

성경에서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 기간에 일어난 사건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바로 말세의 징조라고 말합니다.
19절의 하늘의 기사와 땅의 징조는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일어난 치유와 이적 사건을 의미합니다.
20절의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는 것은, 불과 50일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때 하늘에 캄캄함이 임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사역과 그분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 사건은 이제 말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강림 사건도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말세의 징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말세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이후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말세입니다.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기에 오래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2천년의 시간을 참으셨습니다. 이제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즉각 심판하시기보다 먼저 회개의 기회를 주시죠.
창세기 6장에 노아의 홍수 사건을 생각해 봅시다. 그 당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태어나면서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방주를 짓게 하십니다. 노아는 10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랜 기간 방주를 만들었어야 할까요? 그 기간 동안 노아는 사람들에게 외쳤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곧 홍수가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말세가 마치 노아의 때처럼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37–39 (NKRV)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여러분!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말세가 없는 것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우리 살아가는 세상이 늘 영원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이 말세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불꽃 가운데 임하시는 날 곧 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끝이 있습니다. 그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게 임할 것입니다.

<이 글은 이탈리아 북구 롬바드리의 38세의 의사 ‘율리안 우르반’의 글입니다.>
아마도 읽어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하나님을 믿게 된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수많은 어두운 악몽 같은 순간들을 지나왔지만, 지난 3주 동안 여기 우리 병원에서 발생한 일들을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악몽은 현재 실제로 흐르고 있고 또 더욱 거대해져만 갑니다.
처음에는 몇 명이 병원으로 실려 왔고 그 다음은 몇 십 명 그리고 몇 백 명이 몰려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의사가 아닙니다. 그저 누가 살 수 있고 누가 죽음을 맞으러 집으로 보내져야 하는가를 결정하고 라벨을 붙이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비록 그들이 평생 이탈리아에 세금을 성실히 납부했다 해도 그들은 죽음을 준비하도록 집으로 되돌려 보내집니다.

2주전까지만 해도 나와 내 동료들은 무신론자였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같은 것은 믿지도 의지하지도 않았고 그저 사람을 치료하는 논리적 학문인 의학을 배웠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 부모님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비웃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9일전 75세의 한 목사님이 우리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점잖은 분이었지만 호흡곤란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병원까지 성경을 지니고 왔습니다.
그는 주위의 죽어가는 이들의 손을 잡아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그의 전하는 말을 듣는 약간의 시간을 가졌을 때 모두 그저 피곤함에 눌리고 낙담한 의사들이었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끝난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한낱 무력한 인간인 우리들은 매일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이 상황에 대하여 더 이상 무엇을 할 수도 없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지쳤고 우리의 동료 2명은 사망했으며 다른 동료들은 이미 바이러스에 확진 되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끝나는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짧은 몇 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애기를 나눕니다. 치열한 무신론자였던 우리가 지금 매일 주님의 평강을 구하고 환자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주님께 구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믿을 수가 없노라고 말입니다.

어제 75세의 그 목사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지금까지 3주 동안 120명이 사망했고 우리 또한 모두 지칠 때로 지치고 무너졌지만, 그분은 자신의 위중한 상태와 어떻게 도와 드릴 수 없는 우리의 어려운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는 찾지 못했던 평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주님 품으로 돌아가셨으며 현재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아마 우리도 곧 그분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나는 6일째 집에도 들리지 못했고 언제 마지막 식사를 했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이 땅에서의 무익함을 깨닫지만 나의 마지막 호흡을 다른 이들을 돕는데 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나의 동료들의 죽음과 그들의 고통에 둘러싸여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에 대한 기쁨이 넘칩니다.
2020년 3월 23일
율리안 우르반

 

우리는 자신의 무능과 한계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됩니다.
‘나는 나를 믿어 하며’ 큰 소리 치지만, 정작 의사의 암 선고 앞에 벌벌 떠는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선포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과연 소망이 있는가?
21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구원이라는 것은 현재 우리의 상태가 절망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구원의 빛이 임한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죽어가는 자들에게 치료약이 개발되었다는 것은 구원의 소식입니다. 기쁨의 소식 곧 복음입니다. 인류에게 복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나도 결국 우리는 죽게 될 운명입니다.

진정한 복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복음은 더 이상 눈물이나 아픔이나 괴로움이 없어야 합니다. 일시적인 만족이 아니라 영원한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복음이 무엇입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가 주님이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사 지금 하늘 우편에서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시기에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을 찾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인간의 무기력함을 깨닫고,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은 이 시기를 통해 교만했던 우리를 겸손케 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십니다.

절망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구원의 소식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 가운데 혹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도 않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내 의지와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을 구원하길 기뻐하십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실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이 임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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