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0-26 13:51

84.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

joywoori
댓글 0

사도행전 강해 84.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

 

사도행전 24:24–27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유대 총독 벨릭스 부부는 총독관저를 나서 헤롯 궁으로 갑니다. 바울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벨릭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본디 노예출신으로 유대의 총독 자리까지 오르는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클라우디오 황제와 친분관계를 맺고 있던 그의 형 팔라스의 정치적 지원 덕이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벨릭스는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자를 고용할 정도로 잔인했다고 합니다. 

그는 총독의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과 여자를 취한 탐욕스런 인물이었습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벨릭스가 ‘노예의 마음을 가지고 왕의 권세를 휘두른 인물’이라고 악평했습니다. 비천한 출신 성분임에도 왕실 출신 아내를 세 명이나 차례로 거느린 그는, 

결혼도 정략적으로 이용할 만큼 탐욕이 그칠 줄 몰랐습니다. 

 

그와 함께 헤롯 궁으로 향하는 아내는 드루실라입니다.  

그녀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 딸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2:1–4 

1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드루실라의 아버지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로마의 신임과 총애로 AD37-44년까지 팔레스타인 전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통치의 한 방편으로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먼저 요한의 형제 야고보 사도를 칼로 죽입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마저 사형시킬 목적으로 투옥시킵니다.  

 

사도행전은 그의 죽음에 대한 기록도 남깁니다.

사도행전 12:19–23 

19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헤롯이 베드로를 찾지 못하자 그를 지키던 파수꾼들을 신문하고 죽입니다. 그리고는 어디로 갑니까? 가이사랴입니다. 그는 왜 가이사랴고 갔을까요? 

황제를 기념하는 축제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자신의 조부 헤롯 대왕이 건축한 헤롯 궁이 있었고 주변에는 장엄한 경기장과 극장이 있었습니다. 헤롯은 극장에서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고, 이를 알고 있던 두로와 시돈의 사람들이 헤롯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박수부대를 동원하여 참여하게 됩니다. 이날의 사건으로 인해 그가 죽게 됩니다. 

 

요세푸스는 당시의 사건을 기록으로 남겼는데요,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지금까지는 우리가 당신을 인간으로 두려워했을지라도, 앞으로 우리는 당신이 인간 이상의 존재임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 왕은 그들의 아첨을 흡족해 했다. 그다음에 그는 위를 쳐다보았고, 줄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부엉이를 보고 그것을 불운의 징표로 여겼다. 동시에 그는 격한 몸 안의 통증에 사로잡혔으며 왕궁으로 옮겨진 후 닷새 동안 병을 앓다가 죽었다“

 

헤롯은 복막염을 일으키는 맹장염으로 죽은 것으로 보이고요, 회충이나 촌충에 의한 낭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죽게 된 것이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의 딸 드루실라의 나이가 6세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렀습니다. 이때의 나이가 20세가 안되었을 때입니다. 그녀는 벨릭스 총독과 결혼하였고, 가이사랴의 총독관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바울이 헤롯 궁에 구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평소 기독교에 관심이 있었던 그녀는 남편을 설득하여 바울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가문과 기독교는 악연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신의 증조부인 헤롯대왕은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접하고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을 살육하는 잔혹한 왕이었습니다.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는 이복형제인 빌립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고 이를 비난한 세례요한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는 야고보를 비롯해 사도들을 핍박하고 죽인 헤롯 안티파스1세입니다. 

 

비록 그녀가 어린 나이였지만 이러한 사건들을 알았을 것이고 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가 누구이기에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있는가? 모진 고문과 핍박 그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를 믿고 또 전하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왕가의 딸로 태어났지만 불운한 인생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의지로 살았던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의 정략적 결혼의 희생자입니다. 행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남편 벨릭스는 평생을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치 않았던 사람입니다. 

 

이제 벨릭스와 드루실라 그리고 바울이 만납니다. 

저는 총독부부와 바울의 만남이 어쩌면 이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복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게 되는 순간입니다. 과연 이들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을까요? 

또 바울은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했을까요?

성경은 이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를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복음은 늘 그렇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중심으로 한 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바울은 좀 더 집중하고 강조한 주제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의와 절제와 심판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4:25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무엇 때문에 바울이 이러한 주제로 복음을 전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총독부부는 지도자라로서 의롭지 못했고, 절제하지 못했으며,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대하게 전한 것입니다. 

벨릭스 부부는 처음으로 이와 같은 진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이들 주변에는 아첨하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벨릭스의 한마디에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러한 것에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대제사장 앞에서도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라고 발언할 정도로 타락한 권력에 맞섰던 사람입니다. 

 

저는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종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나의 생명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력이 있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 삶은 하나님의 주권과 뜻 가운데 있음을 믿기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권력은 자신의 권력과 돈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벨릭스도 그러했습니다. 25절에 보면, 

벨릭스가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권력으로도 흔들 수 없는 주의 종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었을 것입니다. 

저도 바울과 같은 이러한 담대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돈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단호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그러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먼저 의에 대하여 전했습니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을 말합니다. 도덕의 기준, 윤리의 기준을 의미하고 법적인 정의를 말합니다. 정확히 바울이 의라는 주제를 어떻게 풀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의에 대하여 들을 때 자신들이 얼마만큼 불의한지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의에 대한 설명은 조금 후에 심판에 대한 주제와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는 절제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이미 총독부부의 무절제함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이웃을 착취하고 이를 통해 얻은 부와 권력으로 쾌락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이들에게 절제가 무엇인지를 가르친 것입니다. 

 

권력자에게 중요한 덕목이 절제입니다. 절제는 다른 말로 자제력입니다. 영어로 셀프컨트롤입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절제입니다.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사람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죄 된 본성입니다.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권력, 돈, 쾌락입니다. 

 

우리는 최근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사건을 보면서, 권력과 돈을 향한 인간욕망의 끝이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봅니다. 수십, 수백억 원 돈이 불법적으로 사용되었고 뇌물로 오갔습니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인이거나 법조인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여 불법적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결국 돈 때문입니다. 공평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허울일 뿐이고, 그 뒤에서는 결국 불법적인 거래들이 오갔던 것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불법적인 돈에서 자유로웠던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것이 결국은 돈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모든 권력은 섬김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권력입니다. 그 권위앞에 사람들은 겸손해지고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절제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나의 능력과 자원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면 하지 않는 것이 절제입니다. 

내가 가진 물질을 내 맘대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참는 것이 절제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도록 나를 위한 시간을 포기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절제가 없는 사람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습니다. 

절제가 없는 남편과 아버지를 둔 가족들은 불행합니다. 

절제가 없는 CEO를 둔 직원들은 불행합니다. 

절제가 없는 목회자를 둔 성도들은 불행합니다. 

절제가 없는 지도자를 둔 공동체는 불행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결국 공동체에게 큰 실망과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돈 문제가 있는 목회자들을 보면 여자문제도 있습니다. 이것은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절제의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욕망은 있거든요. 이것을 절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입니다.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이 권위의 자리에 서면 안 됩니다.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얼마 전에 아내가 차를 타고 가면서 마약 탐지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서 제가 좀 찾아보았습니다. 

주로 리트리버가 이 임무에 적합하다고 합니다. 생후 6개월 동안은 어미 품에 있다가 6-12개월에는 기초체력과 집중력 등을 훈련한다고 합니다. 이 훈련을 통과한 개들은 마약류 인지 훈련, 탐지 능력 개발 및 세관현장 적응 훈련이 16주간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훈련을 받았다고 다 탐지견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탐지견이 되는 것은 10마리 중에 3마리 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탐지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음식에 대한 절제력입니다. 이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 400-500g을 섭취한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게 되면 탐지견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음식냄새를 맞느라고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이런 말을 해요. 마약탐지견도 임무수행을 위해 절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절제력이 없으면 어떻겠냐고. 

 

저는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로 세워가지 위해서는 반드시 절제력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말씀 듣고 마시멜로를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았던 아이들이 나중에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은 결국 절제에 달려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나 더 높이 오르고 싶고, 누구나 더 많이 소유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절제하지 못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그 결과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 번째로 심판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무엇에 대한 심판입니까?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최근에 하나님에 심판에 대한 교리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심판하시는가? 라고 묻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또한 공의로우셔서 죄에 대하여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만일 법정에서 살인자를 심판하지 않고 무죄판결 내린다면 재판장을 공의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죄에 대하여 심판하는 것이 공의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죄에 대해 심판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죄의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대신 심판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심판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고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기준에 완전한 의로움을 이루셨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의로우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얻은 의로움을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으신 의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28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여기 보시면 두가지 의로움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2절에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고 하십니다. 이때가 언제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낸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받으신 심판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의로움은 26절 뒷부분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하심이라’ 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28절에도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의로움에 대하여 전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과연 이 진리의 말씀을 받아 드렸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을 느끼지는 했지만 그렇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도행전 24:26–27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벨릭스의 관심은 여전히 돈과 권력에 있었습니다. 돈과 권력을 향한 그의 집착과 그러 인해 강팍해진 마음에 복음의 씨앗은 열매 맺지 못했습니다. 

 

이 날로부터 2년 후 벨릭스는 가이사랴의 총독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역사에 의하면 벨릭스는 강도 때들이 약탈하게 하여 그 약탈 물을 나누어 가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헬라인들과 분쟁하는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여 그 탄원서로 인해 총독의 자리에서 쫓겨나서 로마로 소환됩니다. 

 

그의 아내 드루실라는 권력의 자리에서 모은 엄청난 돈으로 폼페이에 별장을 짓고 그의 아들과 살았는데, AD79년 8월 24일에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할 때에 화산재에 묻혀서 아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들이 만약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저들의 인생은 분명 달라졌을 것입니다. 돈과 권력의 노예로 살아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듣고 두려운 마음을 가졌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것 자체가 귀한 은혜이지만, 그 말씀이 우리의 강퍅한 심령을 뚫고 뿌리내리고 열매 맺어 순종할 때만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들을 주십니다. 이 기회가 늘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여전히 세상적인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진리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분들이 혹 계시다면, 아니 두려운 마음은 가졌지만 순종하지 않는 분들이 계시다면,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8–9 

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복음은 듣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복종해야 하는 진리입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가 복음에 복종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도행전

목록
번호 제 목 이 름 성경구절 날짜
92 92. 우리의 사명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8:11-31 2021.12.26
91 91. 신앙의 항해 3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8:1-10 2021.12.19
90 90. 신앙의 항해 2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7:21-44 2021.12.12
89 89. 신앙의 항해 1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7:1-20 2021.12.05
88 88. 기독교 신앙의 세가지 핵심교리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6:24-32 2021.11.28
87 87. 어둠에서 빛으로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6:1-23 2021.11.14
86 86. 바울을 죽이려는 이유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5:13-27 2021.11.07
85 85.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25:1-12 2021.10.31
» 84.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사도행전 24:24-27 2021.10.24
게시물 검색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