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1-29 06:55

88. 기독교 신앙의 세가지 핵심교리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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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88. 기독교 신앙의 세 가지 핵심교리

 

사도행전 26:24–32 

24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불광불급 不狂不及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미치광이처럼 그 일에 미쳐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베스도 총독에게 ‘미쳤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바울의 이러한 신앙이 당시 사회를 흔들었습니다. 

 

총독 베스도의 요청으로 아그립바왕은 바울을 심문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베스도를 비롯한 유대사회의 유력인사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예수를 전하게 되었는지를 간증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자가 예수를 전하가 자가 되었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이 시간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울의 변증 가운데 나타난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총 세 번 공적인 심문의 자리에서 자신의 신앙을 변증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바울이 믿는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1. 부활신앙입니다. 

첫 번째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 라고 할 때 그 중심에 예수의 부활사건이 있습니다. 

바울은 세 번의 심문 과정에서 동일하게 강조한 것이 바로 예수의 부활입니다. 

23장의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에서의 재판에서는 바울은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내가 심문을 받노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3:6

6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24장의 벨릭스 총독 앞에서는 

사도행전 24:21

21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그리고 아그립바왕 앞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그 분이 나사렛 예수임을 증언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누군가 기독교는 무엇을 믿는지 한마디로 정의해 보라고 한다면,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주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왜 그리스도이며 주님이십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우리의 대답은 예수가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사건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주님이라는 것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의 예수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며 우리 삶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일 내가 참된 신앙을 가졌는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예수의 부활을 믿는가의 여부로 판단됩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성경공부를 많이 해도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라 할지라도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가 그렇지 않는가가 신앙의 진짜와 가짜를 부분하는 기준이 됩니다.

 

기독교가 세상으로 박해와 핍박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부활의 믿고, 따라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오직 예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매우 독선적입니다. 

 

지난 수요일 워싱턴장로교회 류응렬목사님께서 다니엘 기도회에서 하셨던 설교를 함께 나눴습니다. 짧은 영상을 소개하셨죠? 

 

https://www.youtube.com/watch?v=akK-D_Jld9U

존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 때 기도하러 나온 비먼 목사님의 기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우리 공동체 신앙의 강력한 이름으로, 아멘”기도했습니다.

올해 미하원 개원할 때도 기도하러 나온 목사님은 “유일하신 신 부라만, 혹은 다양한 종교의 다양한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에이 우먼” 라고 했습니다.  

 

이제 미국 사회는 공적 자리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자라고 하면 조롱합니다. 특히 좀 배우신 분들의 경우는 대놓고 무시합니다. 

 

그 어떤 종교도 자신들만이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기독교만 유일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배척받는 것입니다. 

바울이 당시의 최고의 권력자들 앞에서 변론한 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부활입니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분을 믿고 복종하는 것만이 구원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베스도가 바울에게 미쳤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바로 부활신앙 때문입니다.  

저는 베스도의 이러한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의미심장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불신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쉽다면 사람들이 쉽게 예수를 믿겠지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기독교가 믿는 예수의 부활은 비정상입니다. 믿는 자들이 미친 것 같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명확성을 보여줍니다. 회색지대가 없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느냐 또는 안 믿느냐 여기서 판가름 납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신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신자입니다. 

신자라고 하면서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그는 불신자입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을 미쳤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30세 초반의 한 청년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정상입니까 아니면 미친 것입니까?

 

대학원 때였습니다. 상담학 시간에 정신과 병동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환자들을 만나 대화하는데 제 생각과는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정상적인 분들이셨습니다. 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자기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이곳에 몇 명이 자기가 하나님나라고 주장하는데 다 가짜고 자기가 진짜라는 거예요.

 

여러분, 누군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두 가지 가능성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는 그는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일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진짜 하나님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성인이라던가, 존경할 만한 분이라던가 하는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미쳤거나 진짜이거나.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둘 중 하나입니다. 미쳤거나, 진짜거나. 

만일 예수를 부처나 공자와 같은 성인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또는 혁명가나 개혁가로 존경할 분으로 여긴다면 그는 기독교 신앙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자리가 공간이 없습니다. 미쳤거나 진짜거나입니다.  

 

옥스퍼드대학 교수였던 C.S루이스가 쓴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 불과한 사람이 예수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정신병자이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막을 수도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 편승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기독교를 여러 종교 중에 고상한 하나의 종교로 여겨 믿고 있다면 기독교 신앙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진짜 미친것입니까? 바울이 진짜 미친 것입니까? 우리가 진짜 미친 것입니까?

바울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6:25–26 

25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이것은 예수의 부활 사건이 실제 일어난 일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역사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로마에서 파견되어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말합니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지 않습니까? 모를 수 없죠. 자신의 증조부 헤롯 대왕은 예수가 태어날 때 영아들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가문의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를 증거한 세례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야고보 사도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알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담대하게 말한 것입니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존재도 그의 십자가 죽음도 그리고 부활도 다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작정과 선택교리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변증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의 작정과 선택교리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부활신앙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신앙을 어떻게 갖게 되는 것입니까?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믿게 되었고, 그분이 나의 구주임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까?

세상적인 시각으로 지극히 비정상적인 신앙을 어떻게 갖게 된 것일까요?

 

우리는 바울이 회심한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몇 차례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실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붙잡아 고문하고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정오의 시각, 태양이 가장 밝고 뜨거울 때 그 빛보다 더 밝은 빛이 바울을 비춥니다. 

그 빛은 바울을 포함한 동행들에게도 비추었습니다. 

그 빛은 부활의 주님의 빛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빛 가운데 임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과 동행들에게도 빛은 비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주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오직 바울만 부활의 주님을 믿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행전 26:13–14

13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바울만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빛은 모두에게 비춥니다. 그러나 그 음성은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 오직 선택된 사람들만 듣습니다. 

 

그동안 바울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다 부활의 주님을 믿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오직 선택된 하나님의 사람들만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그렇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미쳤다”라고 말합니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8장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고린도는 우상숭배가 만연했고, 성적으로 타락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대적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잠시 머물다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주님께서 환상가운데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8:9–10

9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주님께서는 고린도에 자신의 백성이 많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선택한 그분의 백성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년6개월을 머물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우리의 의지나 또는 구원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구원받기 전 우리의 상태는 베스도처럼, 기독교 신앙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은혜의 빛이 임하였고, 주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그 음성이 어떻게 들렸습니까? 

설교를 통해,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 주님의 음성이 우리 영혼에 와 닿았습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해 주었고 그 복음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 졌고, 그 복음이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렸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복음 전도자들을 통해 자신의 음성을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선포된 주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의 귀에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묻지요. 그 장면을 볼까요?

 

마태복음 13:10–16

10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입니까? “너희는” 선택된 주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작정과 선택 바깥의 사람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이 모든 자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허락된 자에게만 들리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듣고 깨닫는 자들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녀들입니다. 

 

똑 같은 엄마 배에서 태어났는데, 어떤 자녀는 신실한 믿음을 가졌고요, 어떤 자녀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부모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믿으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어요. 어려서야 혼내고 다그쳐서 교회 보내지만, 머리가 좀 크면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각자 신앙의 길이 다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여러분 가족 모두에게 임했지만, 그 음성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전에 울산대 법대 이정훈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그가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을 만들어 기독교를 공적영역에서 몰아내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박사논문을 마무리 하려고 자주 찾던 절을 찾았는데 그날따라 머리가 아팠다고 합니다. 뭔가 기분 나쁜 두통이었다고 합니다. 더는 그곳에 머물 수 없어 집으로 갑니다.

아내가 밥을 준비하는 동안 TV를 켰습니다. 한 기독교 채널에서 설교가 나옵니다. 설교중에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그는 어김없이 조소를 날입니다. “웃기고 있네, 너나 잘하세요.”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입을 뗄 수가 없고 혀가 굳어집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아 죽는구나..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는구나. 그렇다면 이제 나는 죽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깨닫습니다.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자신을 죽이셔야 하는데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것이 은혜구나라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후 회심하여 지금은 기독교를 변증하는 사명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은혜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증거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바울은 그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그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 모인 권력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6:29 

29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바울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입어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자신의 죄의 비참함을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들었던 주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6:14 

1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주님께서 바울을 얼마나 애처롭게 바라보시는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녀가 계속 잘못하면 괘씸합니까 아니면 애처롭습니까?

남의 자녀가 나에게 예의 없게 굴면 괘씸하죠. 내 자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애처롭고 불쌍하거든요. 바울이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가 그 은혜를 체험했기에 그가 기록한 성경의 대부분이 은혜를 증거한 내용입니다. 

에베소서 2:8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3:7–8

7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고린도전서 15:10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뉴질랜드에서 바이블 칼리지에 다닐 때입니다. 종교학시간이었는데요, 교수님은 인도분이셨어요.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을 때인데, 첫 시간에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종교는 A man search for God. 인간이 신을 찾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God search for man. 신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 이것이 은혜입니다. 바울은 알았습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시지 않으면 저들의 마음 문이 열리지 않는 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분도 저처럼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내가 노력하고 수고한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그 은혜. 그러기에 성도들을 늘 감사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부활신앙입니다. 우리가 부활신앙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선택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 가운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이 신앙 붙잡고 살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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