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64.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신명기 23:9–14
9네가 적군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10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영 밖으로 나가고 진영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11해 질 때에 목욕하고 해 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12네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련하고 그리로 나가되
13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14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본문 말씀은 전시 중에 삼가야 할 내용입니다.
9네가 적군을 치러 출진할 때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적군을 치러 출진할 때”라고 언급함으로 전시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모든 악한 일을 삼가야 합니다.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이러한 것까지도 금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전시상황에는 모든 악한 것을 금해야 하는데 이러한 것까지도 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밤에 몽설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 진영 밖으로 나가 있다가 해가 질 때에 목욕하고 해가 진 후에 진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배설의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도 진영 밖으로 나가서 땅을 파고 배설하고 준비한 삽으로 흙을 파내 덮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14절에 말씀합니다.
신명기 23:14
14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진영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께서 진영중에 행하시는데 진영이 거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몽정이나 배설로 인해 진영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먼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싸우는 전쟁이 어떠한 성격을 가졌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전쟁의 성격/ 하나님의 전쟁
여러분이 만약 군대의 지휘관이라면 전쟁을 앞두고 무엇을 명하시겠습니까?
정신적으로 무장하도록 군기를 확립하고 또 무기와 장비들을 점검하여 작전 수행에 차질이 없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전쟁의 승패가 군사들의 정신력과 무기 그리고 전술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쟁은 달랐습니다 ,
이스라엘이 치루는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가나안이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상숭배자 들과 싸우는 전쟁입니다.
이것을 이해할 때 본문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홍해에 앞에 섰을 때입니다. 바로는 특수부대로 조직된 기병과 보병을 총동원하여 뒤쫓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기 시작합니다. 모세를 향해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고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이때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출애굽기 14:13–14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스라엘의 싸움은 처음부터 여호와께서 싸우시는 싸움이었습니다.
이후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정복하기까지 모든 싸움은 여호와께서 싸우시는 싸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무기일 뿐입니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를 때 사용했던 지팡이와 같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낼 때 사용했던 지팡이와 같습니다.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처럼 하나님 손에 들린 막대기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우상숭배자들과의 싸움입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았던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독하는 골리앗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사무엘상 17:45–47
45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은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우상숭배자와의 대결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선택한 무기인 이스라엘이 두려워 순종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 전쟁을 자신들이 치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군사력과 무기에 달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골리앗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싸우시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승패가 칼과 창에 달려 있지 않다고 외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갈멜산에서 누가 살아계신 신인지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대결의 방식은 이것입니다.
송아지를 한 마리를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을 내리는 신이 참 신입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릅니다. 응답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몸을 상해하면서 미친 듯이 외칩니다. 저녁때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제 엘리야는 모든 백성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한때 여호와를 섬겼지만, 지금은 바알을 따르고 있었던 무리였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엘리야가 그들을 제단 가까이 부릅니다. 그는 무너진 제단을 수축합니다. 그리고 제단에 올려진 송아지 위에 물 네 통을 가져다 붓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붓습니다.
열왕기상 18:37–39
37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의 대결에서 승리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 전쟁은 엘리야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숭배자들과의 전쟁입니다. 엘리야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악한 사단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계속해서 공격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허리가 꺾인 사단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때가 지금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길 차를 찾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6:12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러분들이 이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전시상황입니다. 악한 영들이 끊임없이 여러분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를 공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시자 “주님 그리하지 마옵소서” 거칠게 항의했고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사탄이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신실하고 견고한 신앙을 가진 사람도 사탄의 공격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신약성경에는 한때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지만 사탄의 공격에 넘어져 결국 믿음을 져버린 사람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디모데전서 1:19–20
19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믿음을 가졌던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결국 믿음 생활에서 파선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탄의 공격을 받아 신앙을 버렸습니다.
디모데후서 4:10
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세상을 사랑했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고 세상의 삶의 방식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은혜와 사랑을 나누었던 형제와 자매들이 믿음을 저버리기도 하고, 세상을 사랑하여 떠나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자들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지금이 전시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우리들에게 영적 전쟁은 불가피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허리가 꺾인 사탄은 최후의 발악을 하며 믿음의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항상 영적으로 긴장해야 합니다. 전시상황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무기로 삼아 싸우시는 전쟁입니다.
에베소서 6:13–18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하나님의 전심 갑주를 취하라고 하십니다. 진리로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검 곧 하나님 말씀을 가지라고 합니다. 이렇게 전신갑주를 입고 무엇을 합니까?
18절에 보면,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하십니다.
전신 갑주를 취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싸움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무기로서 준비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무기인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오늘 본문이 그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무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들은 거룩해야 한다.
저는 군대에서 주특기가 81M 박격포였습니다. 이기자 부대를 나왔는데 훈련도 많았고 군기가 셌습니다. 훈련이 끝나면 박격포를 닦습니다. 닦고 또 닦습니다. 조금의 먼지도 없어야 합니다. 훈련이 없을 때도 박격포를 닦습니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닦습니다. 81M 박격포는 항상 청결해야 했습니다.
의사들은 수술을 앞두고 수술기구를 세척합니다. 나이프나 가위 등 모든 의료 장비는 철저하게 소독되어야 합니다. 만일 조금이라고 균이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도구인 우리는 정결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세상의 싸움은 능력과 지혜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쟁에서 능력과 지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며 전지하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무기인 성도들의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통해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무기이다. 그러기에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거룩해야 하는가? 라고 할 때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영역까지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인이 밤에 몽정하는 것은 개인적이고 은밀한 일입니다. 배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이고 은밀한 영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부분까지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영 밖으로 나가 배변을 본 후 몸을 돌려 배설물을 덮으라고 하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더러운 배변의 잔상도 남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의 영역까지도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이며 하나님이 손에 잡은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하나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 그 누구도 거룩함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박격포에 이물질 하나만 있어도 포탄의 방향이 바뀝니다. 수술 도구에 묻은 작은 바이러스라 할지라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도구인 그의 백성 전체가 거룩하길 원하셨습니다. 그 거룩함은 보이는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도 포함합니다.
개인적이고 은밀한 너희의 생각의 영역까지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진영에서 누가 몽정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누가 배설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부정을 정결케 해야 했습니다. 누구를 의지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신의 무기를 정결하게 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자들은 정결한 자, 거룩한 자입니다.
디모데후서 2:20–21
20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아무리 금 그릇이라고 해도 깨끗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주인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은 깨끗한 그릇입니다. 자신을 정결케 하는자, 거룩함을 지키는 자 그들을 주님은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전쟁에서는 군사력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사람이 많으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전쟁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드온과 300 용사의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메뚜기 떼처럼 많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은 3만 2천 명이었던 이스라엘 군대를 300명으로 줄이십니다. 그 줄이는 방법이 물가에 내려가 물을 핥아 먹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로 나뉜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300명으로 전쟁을 치러 승리하시는데, 혹자는 이를 두고 300명이 정예부대, 특수부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을 마시는 모습만으로 정예부대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숫자를 줄이신 것에 불과합니다.
사사기 7:2
2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승리 후에 자신들의 군사력과 전술로 승리했다고 자랑할까봐 하나님께서 숫자를 줄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300명의 군대는 연약함의 상징적인 숫자이지 정예부대가 아닙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전쟁은 사람의 숫자와는 상관이 없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분의 전쟁을 치르실 때, 사람의 많고 적음으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 정결한 자들을 찾으시며 무엇보다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을 세우십니다. 그들을 통해 세상의 강력한 사탄의 진을 무너뜨립니다.
고린도후서 10:4–6
4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을 무너뜨리시는 것은 우리의 복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냥 복종이 아닙니다. 온전한 복종입니다.
우리가 공동체와 함께 거룩함과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붙들어 주면서 믿음을 세워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영역, 은밀한 영역에서 거룩함과 정결함을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없습니다.
지난한 코로나 기간 많은 성도가 힘들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동안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지키고 성장했던 성도들이 하루아침에 모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하며 또 교제하며 세상 속에서 지쳤던 우리의 몸과 영혼은 회복되고 치유되었습니다. 또 구역모임, 셀모임, 목장 모임, 조임 등 소그룹 모임을 통해 신앙을 나누며 신앙을 지켰던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영적 유익을 얻었고 또 신앙이 성장했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공동체 모임을 통해 교회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신앙생활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신앙이 개인적 영역의 책임으로 돌아갔습니다. 교회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교회 모임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다 제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신앙의 퇴보를 가져왔고, 어떤 성도님은 오히려 신앙이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나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요? 평소 개인적 신앙의 영역에서 거룩함을 지키려고 애쓰고 노력했던 성도들은 신앙이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신앙이 더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에 의존되어 신앙생활을 해오셨던 분들은 퇴보하거나 넘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어떤 분은 믿음이 신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고, 어떤 분은 믿음이 연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견고했습니다.
신앙을 견고하게 유지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신앙의 영역에서 승리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아무리 외부적인 환경들이 흔들리고 변해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거룩함을 유지했던 분들입니다.
개인적이고 은밀한 영역에서 신앙을 지켜온 분들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마지막에 두가지 비유를 통해 결론을 맺습니다.
첫 번째는 열매의 비유입니다. 열매로 그 사람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세상의 사람인지 말입니다. 나무를 보고는 알 수 없습니다. 나무는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열매를 맺을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고, 썩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습니다. 추수 때가 되어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모릅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외치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할지라도 그가 참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는 추수 때에 열매를 보고 알게 됩니다.
또 하나의 비유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둘 다 외관상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 두 집의 상태는 판가름 납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집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을 이렇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7:24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신앙의 집을 세운 자만이 살아남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신앙의 영역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삶을 흔드는 상황들이 닥치게 되면 무너집니다. 여러분들이 공동체를 의지하게 되면 공동체가 흔들릴 때 무너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그 사람이 흔들릴 때 함께 흔들리고 그 사람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영역에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셔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신명기 23:14
14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만일 여러분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다면, 다른 것 위에 신앙의 집을 세운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1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신앙의 연수나 직분이 참 신앙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초의 문제이고 뿌리의 문제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리스의 말씀 위에 신앙의 집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리스도의 말씀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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