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53. 주님은 나의 피난처
신명기 19:1–13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가옥에 거주할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4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5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6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7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8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9또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10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11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면
12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13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오늘 본문은 도피성에 대한 규례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고대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제도입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은 금지하는 계명은 자연법 또는 도덕법으로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법이고, 고대 바벨론의 함무라이법전에서도 그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보편적입니다. 그런데 부지중 살인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만들라는 규정은 매우 독특한 제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도피성 제도를 살펴보면서 이 규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도피성은 무엇인가?
실수나 부주의 사고로 살인한 자가 피살자의 가장 가까운 형제나 친지로부터 당하게 될 피의 보복을 면하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몸을 피할 수 있도록 마련된 성읍입니다.
이런 경우입니다.
신명기 19:5
5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살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형으로 그 죗값을 물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의성이 없는 살인 곧 과실치사 자의 경우 도피성에서 보호받게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도피성이 처음 언급된 것은 민수기 35장입니다.
레위인 위한 성읍을 언급한 직후에 도피성 제도를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35:6
6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들이 피하게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
이미 살펴본 것처럼 레위인들은 기업이 없이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제단에서 제사 업무를 감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입니다. 제사업무는 주로 성막이 있었던 실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중앙집권적 관점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율법을 가르치는 일은 각지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에게 적용되는 지방분권적 관점의 역할입니다.
이러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 이스라엘 전역에 48개의 성읍에 흩어져 거주하였습니다.
그중에 6개가 도피성으로 지정됩니다.
그러니까 도피성은 레위인들이 거주하는 성읍입니다.
성읍의 크기도 규정하셨는데요,
민수기 35:4–5
4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의 들은 성벽에서부터 밖으로 사방 천 규빗이라
5성을 중앙에 두고 성 밖 동쪽으로 이천 규빗, 남쪽으로 이천 규빗, 서쪽으로 이천 규빗, 북쪽으로 이천 규빗을 측량할지니 이는 그들의 성읍의 들이며
성읍은 성(주거지)과 가축을 키울 수 있는 목초지로 구분됩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레위인의 성읍
다양한 계산법이 있는데 종합해 보면, 성읍은 사망 500미터를 넘지 않았고, 목초지까지 하더라고 사방 3700미터를 넘지 않습니다. 성읍자체는 사망 500미터의 작은 마을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이곳에 제사장도 있고 대제사장도 살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마치 거대한 수도원 또는 신학교 같은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레위인 성읍 48개, 그중 도피성이 6개가 있었습니다.
요단강을 중심으로 요단동편에 3개 요단서편에 3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세성읍을 구별하라고 하셨는데, 이미 요단 동편에서 3개의 도피성이 지정되었기 때문에 나머지 세 개를 언급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20:7–8
7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지도를 보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보시면 6개의 성읍이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도피성으로 향하는 길목 요소요소에 ‘도피성’이라 쓴 팻말에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도피성 방향으로 곧고 넓은 길이 정비되어 있었는데, 길의 폭이 14m나 되었다고 합니다. 요단강 양편에 각각 세 군데씩 선정된 것은 각 성읍 사이의 거리가 거의 균형을 이룰 정도로 같은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도피성은 이스라엘 어디에서든 50km 이내로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 외에도 도피성에는 모든 생필품을 비치하여 그곳에 피신한 자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하지 않게 배려했다고 합니다.
2.도피성의 역할
1)도피성은 실수나 부주의 사고로 살인한 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실수나 부주의로 살인을 하게 되면 도피성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 성안의 장로들이 나와 이들의 사정을 듣게 됩니다.
여호수아 20:4 (NKRV)
4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레위인들이 이들을 맞아 주거지로 안내하고 그곳 생활에 대해 안내할 것입니다.
도피성의 장로들은 모여 재판 일정을 진행하게 됩니다.
도피성은 무조건 살인자를 보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살인자일지라도 정당한 재판을 받을 때까지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인의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사고 현장을 찾아가 정황이나 물증 등을 살피면서 판단했을 것입니다. 만일 고의성이 발견되면 사형에 처하지만, 과실치사로 판명되면 도피성에 거주하게 됩니다.
도피성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실수나 부주의 사고로 살인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2)도피성은 부지중 살인자를 감금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도피성이라고 해서 편한 것만은 아닙니다. 일단 도피성으로 피하게 되면 모든 일상적 삶에서 단절됩니다. 그는 가족을 만날 수 없습니다. 부모, 배우자, 형제, 자녀를 만날 수 없습니다. 작은 성읍에 갇혀 지내야 합니다. 레위인처럼 자유롭게 성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만일 그가 도피성을 벗어나 보복당하게 돼도 살인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35:26–27
26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가면
27피를 보복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나니
비록 실수와 부주의로 살인하기는 했지만, 도피성에 감금되어 죄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가족의 분노와 상처가 가라앉을 때까지 격리하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한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해는 되지만 마음은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노와 억울함, 상처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도피성은 피해자의 가족을 배려하여 부지중 살인자를 감금하는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도피성은 한편으로는 과실치사 자를 보호하고 또 한편으로는 감금함으로 이스라엘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3.도피성 제도에 담긴 하나님의 뜻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고대사회에서 매우 독특한 제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사람의 생각에서 나올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제도입니다.
살인한 자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피살자가 가까운 친구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의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평생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살인자, 가해자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 또한 피해자입니다.
무엇에 대한 피해자입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참혹한 일들에 대한 피해자입니다.
도피성은 바로 이러한 세상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제도입니다.
이전에 동두천의 한 어린이집 통학버스에서 4살 된 아이가 숨진 채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인솔 교사와 차량 운전사의 부주의로 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7시간 불볕더위 속에 방치되어 사망한 사건입니다. 숨진 아이 부모의 괴로움을 짐작하는 것조차 고통스럽습니다. 아이를 방치한 교사와 운전사의 고통은 또 어떨까요? 그들은 평생 아이를 죽인 고통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작년 6월에는 미국 버지니아에서 18개월 된 아이를 폭염 속에 방치해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몇 시간 뒤 아들이 사망한 것을 발견한 아버지는 숲속에 들어가 총으로 자살했습니다.
자신이 키운 개가 산책하던 사람을 물어 죽는 일, 고속버스 운전사가 고속도로를 건너를 치매 노인을 치어 죽인 일, 공장에서 일하던 청년이 기계에 몸이 끼어 죽는 일 등. 우리 주변에는 부주의와 실수 그리고 사고로 인해 죽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299명의 사망자를 낸 세월호 참사의 가해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159명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참사의 가해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이것이 바로 죄악으로 말미암아 일그러지고 무너진 세상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요? 우리는 도피성 제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의도하지 않은 살인과 억울한 죽음이 있는 세상을 안타까워하시며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의 악과 고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암으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서운함은 하나님께로 향했습니다. 한동안 하나님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의도치 않게 했던 말 한마디에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다.
실수로 했던 행동이 오해를 일으켜 고통을 받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착하게 살았던 사람이 질병에 걸려 죽기도 하고, 사고를 당해 죽기도 합니다.
악한 사람이 건강하고 잘 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과응보, 권선징악을 믿고 싶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세상은 오류투성이고 일그러져 있습니다. 자연의 순환처럼 원칙과 질서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와 혼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과실치사입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죽었습니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 가족이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내 자식이 죽었습니다. 한순간에 나는 살인자가 될 수 있고,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살인은 사람을 죽인 행동으로 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으로 넘어오면 살인은 사람을 죽이게 동기 즉 마음의 상태도 살인으로 간주합니다.
요한1서 3:15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내가 품었던 미움으로 인해 상대방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 마음으로 던진 말 한마디가 독이 되어 상대를 죽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나의 그 미움이 내 가족과 주변 사람을 죽였고 또 죽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죄악으로 일그러진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도피성을 가나안땅에 세우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은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 악과 고통의 현실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도, 과실치사로 상징되는 이러한 악과 고난의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모든 고통의 원인이 내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잘하려고 했는데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 자신을 자책하며 살아야 할까요?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평생을 후회하며 살아야 할까요? 장애아이를 둔 많은 부모가 자신을 탓합니다. 그때 그것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도피성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도피성으로 피해야 합니다. 도피성은 대제사장과 제사장 그리고 레위인이 있는 곳입니다.
왜 도피성을 레위인이 사는 곳으로 정했을까요? 그것은 레위인이 주관하는 예배와 말씀 사역을 통해 치유되고 회복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대제사장이 죽을 때입니다.
민수기 35:28
28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피성을 나와 자기가 살던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이 죽을 때 도피성 살인자의 죄를 짊어지고 죽은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즉 대제사장의 죽음은 살인자를 위한 대속적 죽음입니다. 그래서 그 죄가 사면된 것입니다.
도피성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곳에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로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을 배웁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십니다.
그 교회의 머리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히브리서 2:17
17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4:15–16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을 때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모든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합니다. 그것이 알고 지은 죄이든, 모르고 지은 죄이든, 고의성이 있는 죄이든, 고의성이 없는 죄이든, 실수로 인한 죄이든, 부주의로 인한 죄이든 상관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그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죄에서 자유한 것입니다. 심판에서 자유한 것입니다. 더 이상 죄에서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의 죄책감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세상에서 상처받은 자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절망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소망과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과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능력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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