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1:1-7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11:1–7
1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2너희의 자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으나 너희가 오늘날 기억할 것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교훈과 그의 위엄과 그의 강한 손과 펴신 팔과
3애굽에서 그 왕 바로와 그 전국에 행하신 이적과 기사와
4또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와 그 말과 그 병거에 행하신 일 곧 그들이 너희를 뒤쫓을 때에 홍해 물로 그들을 덮어 멸하사 오늘까지 이른 것과
5또 너희가 이 곳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너희에게 행하신 일과
6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에게 하신 일 곧 땅이 입을 벌려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장막과 그들을 따르는 온 이스라엘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삼키게 하신 일이라
7너희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이 모든 큰 일을 너희의 눈으로 보았느니라
1.“그런즉”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미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인데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런즉” 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즉,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즉”이 무엇입니까? 10장에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니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2절부터 다시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명령 아닌 요구와 설득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이런 분이시니 그런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신명기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 나오는가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총25번 나옵니다. 이 중에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표현은 8번이고,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표현은 10번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에 반응하여 자신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명려하지 않고 요구하고 설득하십니다. 만일 명령이라면 이렇게 길게 신명기의 말씀이 기록될 이유도 없습니다. “이것을 명하노라”라고 끝내면 됩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 또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상명하복의 관계가 아닙니다.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여 자발적으로 순종하길 원하십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고 판단과 선택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강제하거나 강압하지 않으시고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하십니다.
무조건 믿어, 무조건 사랑해, 무조건 순종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믿어야 하는지, 왜 사랑해야 하는지, 왜 순종해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실물로 교훈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고 그 사랑의 증거를 역사적 사건들을 들어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난 사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십니다.
그래서 1절에 “그런즉”이라는 단어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즉”이라는 것은 10장의 내용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고 여기까지 인도하셨으니 그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절부터 다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이유와 그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왜 그분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까?
그들을 구원하셨고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1:2–5
2너희의 자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으나 너희가 오늘날 기억할 것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교훈과 그의 위엄과 그의 강한 손과 펴신 팔과
3애굽에서 그 왕 바로와 그 전국에 행하신 이적과 기사와
4또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와 그 말과 그 병거에 행하신 일 곧 그들이 너희를 뒤쫓을 때에 홍해 물로 그들을 덮어 멸하사 오늘까지 이른 것과
5또 너희가 이 곳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너희에게 행하신 일과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광야를 거쳐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억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너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가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마음의 감동과 설득이 되지 않으면 사랑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시면서 먼저 그분의 사랑을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해야만 하나님께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이것 하나로 요약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기 위해 성경전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를 얼마나 아끼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지 않으시고 역사를 통해 증명해 보이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역사적 사건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그 구원의 사건들 하나하나가 우리를 향한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치밀하게 준비한 사건이었습니다.
창세 전부터 준비한 사건입니다. 인간의 창조를 계획하실 때부터 성삼위 하나님께서 의논하신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는 삼위 하나님이 의논했다는 기사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삼위 하나님께서 어전회의를 하셨습니다.
창세기 1:26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히브리적 표현에 “우리” 즉 “아나누”는 셋 이상을 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실 것을 의논하셨습니다. 자신의 형상이라는 것은 인격적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격적 존재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습니다. 삼위하나님은 전지하시기에 아담의 타락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 존재의 아담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성삼위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 길까지도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은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여 심판받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선택한 백성의 죄를 사하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그 이름을 예수 즉 구원자로 부르게 하셨습니다.
2천 년 팔레스타인 땅에 마리아의 몸에서 나신 예수, 그분은 창세 전부터 예비하신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갈라디아서 4:4–5
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심판 가운데 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무리 반려견을 사랑해도 개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았으며, 마음과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던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역사 속에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어쩌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최종적인 설득인지도 모릅니다.
죽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로마서 5:8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한 사건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구원한 사건입니다.
로마서 5:9 (NKRV)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출애굽의 구원사건에서 찾았다면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게 그 증거를 발견합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신 구원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사랑을 진짜 믿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1서 4:8–10 (NKRV)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죄인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깨닫지 못할 사랑입니다.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에베소서 3:18–19 (NKRV)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만일 가격표가 붙는다면 예수님 짜리입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존귀합니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다면 나는 도대체 얼마나 존귀한 자입니까?
여기 만 원짜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 돈을 꾸겼습니다. 발로 밟았습니다. 그래도 만원이라는 가치는 여전합니다. 우리 인생이 때로는 타인들에게 밟힐 때가 있습니다. 자존심이 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짜리라는 가치는 여전합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도 나만큼 존귀합니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어도, 가방끈이 좀 짧아도, 직장이 변변치 않아도, 장애로 태어나 몸이 좀 불편해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존귀한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세상은 학력, 외모, 재산으로 점수를 매기로 우리 가치를 평가합니다. 여기에 매몰되어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곁에 사람과 비교하게 되고, 자신을 초라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애굽의 삶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고 섬기기 위해 살아갑니다. 쌓아놓기 위해 돈을 벌지 않고 누리고 베풀기 위해 법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누리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없는 빈 가슴을 헛된 것으로 채우던 삶에서 구원받아 충만한 삶,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확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로 자신을 평가했던 삶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확신이 서게 되면 부러울 게 없어집니다. 그러니 헛된 욕망을 품지 않아도 됩니다.
얼마 전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서울 변두리에 사는 촌스러운 삼남매의 이야기입니다. 늘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에 지쳐있던 막내딸 염미정은 술중독자인 외지인 구씨를 찾아가 이렇게 말하지요.
"날 추앙해요. 나는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xx.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그날 이후 염미정은 구씨를 사랑하기로 하고 또 그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 행복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제목처럼 그녀는 무엇에 구속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이 규정한 행복의 조건들에 갇혀 행복을 발견하지도 누리지도 못했던 그가 사랑을 하고 받게 되면서 자기를 누르고 있던 그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합니다.
드라마의 엔딩은 이렇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이런 독백을 하지요.
”나 미쳤나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게 사랑밖에 없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게 되면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해방되야 합니다. 세상이 만든 행복의 조건들에 억눌려 있던 삶에서 해방돼야 합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와 걱정에 눌려 오늘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삶에서 해방되야 합니다.
그래야 웃을 있어요.
빌립보서 4:4
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며 살길 원하세요.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돈이 많아야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세상은 외모가 아름다워야 사랑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학벌이 좋고 능력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받기 위해 돈과 명예를 추구하고 외모를 가꿉니다. 그러한 조건들은 일시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의 어떤 조건들이 다 끊어져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8:38–39 (NKRV)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은 세상이 말하는 조건들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존귀한 자들입니다. 그 누구도 이 사랑의 관계를 흔들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5–37 (NKRV)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특히 로마의 성도들은 매일 죽음의 위협가운데 있었지만 저들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위협과 고통도 넉넉히 이겼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에 그 어떤 고통의 순간일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얼마전 포항시 남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벌어진 침수 사고로 중학생 아들을 잃은 어머니 김은숙 집사(52)가 지난 주일 오천제일교회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김 집사는 태풍 ‘힌남노’가 동반한 집중호우로 침수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다 고립됐고, 오후 9시 45분쯤 구조되며 약 15시간 만에 극적으로 생환했습니다.
김 집사는 “이번 일을 겪으며 가장 사랑하는 늦둥이 내 아들을 잃었지만,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품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집사는 “제게 닥친 엄청난 이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그 놀라운 비밀과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그 큰 은혜를 새롭게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울먹이며 간증을 이어나간 김 집사는 “정말 뉴스에 나오는 그 일들이 나에게 닥칠 줄 몰랐다. 순식간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이 슬픔과 가슴이 미어지는 이 아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는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집트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던 내 아들이 내 옆에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얼굴 보고 싶고, 한 번 더 안아주고 싶고, 정말 따뜻한 그 체온을 느끼고 싶고,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품에 안겨 있음을 제가 알기에, 제가 더 하나님을 신뢰하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저는 김집사님이 말할 수 없는 고통중에도 삶을 이어가며 간증의 자리까지 설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 사랑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죽음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아들, 주님품에 안겼으니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주님께서 자기 목숨을 바쳐 구원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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