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2-06-14 12:07

19. 살인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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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19. 살인하지 말라

 

신명기 5:17

17살인하지 말지니라

 

십계명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섯 번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입니다. 

이 계명은 오늘날 매우 민감한 여러 가지 윤리적 주제들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 자살, 낙태, 안락사, 사형 등 무거운 주제들입니다. 쉽게 다룰 수 없는 매우 민감한 내용이어서 세밀하게 설교에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는다면 이러한 모든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중요한 원리를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주신 목적입니다. 

‘무엇무엇 하지 말라’고 했을 때는 반드시‘무엇’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이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계명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넘지 말아야 할 선입니다. 이 선을 넘으면 심판이 따릅니다. 

그렇다면 ‘살인하지 말라’에 담긴 적극적인 명령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셨으니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그렇게 하지 못할 지라도 살인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언급드릴 것은 6계명에서 금지된 것인 ‘살인’인가 ‘살생’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살인으로 알고 있지만, 이전에는 논쟁이 많았습니다.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고 살생은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동식물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불교는 살생을 금지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확인하듯이 살생을 금지한 것이 아닙니다. 살인을 금지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동식물을 하등하게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가장 존귀함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그 어떤 피조물과도 비교할 수 없이 존엄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존엄합니다. 왜나하면 그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물과 식물의 생명도 존중하시지만 그 가치와 존엄성은 사람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피조물을 사람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범죄 이후에 하나님은 짐승을 죽여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은 살생이 아닙니다. 물론 짐승을, 먹기 위한 재료로 공장식으로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먹거리가 부족할 때는 허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이 가장 가치있고 존엄하며 그것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통해, 사람의 생명이 가장 존엄한 가치를 지녔음을 깨닫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 호흡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존엄합니다. 세상은 그들을 인종, 국가, 직업, 학력, 성별로 차별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 모든 사람은 존엄합니다. 

 

저와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영화가 좀비 영화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흉측하게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마음을 품으면 가장 먼저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알려면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보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대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분당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구역장을 했던 모권사님을 기억합니다. 어려운 분들이 사시는 구역을 맡아 기쁨으로 사역하셨습니다. 구역원 대부분은 독거노인들이었습니다. 그곳 심방이 잡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이 없습니다. 권사님은 저를 붙잡고 이 집 저집으로 다니며 분주합니다. “목사님 이 분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 저 분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 한 집만 더 갑시다.” 어르신을 사랑하시는 그분 때문에 몸은 힘들었지만 기쁨은 충만했습니다. 그러던 중 전주대를 다니는 권사님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권사님은 그 일을 감추었습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조용히 장례를 치루시고 돌아와 어르신들 섬기는 사역을 지속하셨습니다. 그 권사님 언젠가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이러한 분들이 많이 계셔서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이웃을 향한 여러분의 마음에 큰 감명과 도전을 받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무연고 아이들이 11명입니다. 연고는 있지만 어려운 아이들이 2명입니다. 총 13명을 저희 교회 성도들과 여러분의 헌금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가장 어린아이가 3세입니다. 한명당 매월 5만원에서 10만원까지 후원합니다. 우리가 5만원을 후원하면 정부에서 5만원을 보조해 줍니다. 매월 10만원이 한 아이의 통장으로 들어갑니다. 일년이면 120만원, 15년을 지속하면 1800만원입니다. 아이가 시설을 나올 때 자립정착금 포하하면 그래도 살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이 일에 헌신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이웃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돈 많이 버세요. 그래서 헌금 많이 하세요. 그 아이들 얼마나 귀합니다. 생모들을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겠습니다. 그래도 그 생명 지켜냈잖아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버려진 아이들이 아녜요. 지켜진 아이들이에요. 그 아이들을 우리가 잘 섬겨보자구요.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살인을 금하는 명령이기 전에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생명에 어떤 가해도 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폭력이듯 폭언이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21–22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예수님은 살인이라는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시지 않고, 사람을 향한 감정적인 분노, 폭언, 욕설까지도 금지하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일에 헌신하시는 분들은 정말 감동입니다. 저희 아내는 이국종교수의 펜입니다. 아주대병원의 외상센타에서 긴급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 그분이 쓴 책을 읽고 제 동의도 없이 큰 돈을 후원금으로 보내 저와 다툰 적도 있습니다. 저는 TV를 통해 본 적이 있습니다. 꺼져가는 생명을 향해 가지는 헌신과 열정을 보며 큰 감동과 도전을 받습니다. 멋집니다. 아름답습니다. 그분이 기독교인이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존경스럽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생명은 가장 존엄하며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분위기는 생명보다 물질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2007년 있었던 샘물교회 사건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선교팀 23명은 탈레반에 인질로 억류되었고 결국 배형규 목사를 비롯한 2분이 순교하고 풀려났던 일입니다. 당시 분위기는 선교팀을 비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왜 그 지역에 들어갔고, 또 정부와 국민들에게 어려움을 끼쳤냐는 것이었습니다. 탙레반의 잔혹함에 대해 비난하기보다는 기독교와 선교팀을 비난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의 생명을 구할까보다는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그때 우리의 관심은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군대 귀신 들린 청년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을 그 청년을 무덤가에 쇠사슬로 묶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쇠사슬을 끊고 자해하며 밤낮 소리 질렀습니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어 사람들에게서 격리되었습니다. 과연 그 청년은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기 위해 폭풍을 뚫고 찾아가십니다. 군대 귀신을 내어쫓아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2천 마리가 되는 돼지 떼들이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몰사합니다. 

청년은 온전하여 졌습니다. 

 

이때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옵니다. 당장 동네를 떠나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한 청년이 온전케 된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자신의 경제적 손해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경제적 이득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낙태>

오늘날 생명의 가치가 점점 추락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작년 1월 1일 낙태죄를 폐지했습니다. 임신한 여성이 임신 중지를 원하면 낙태 할 수 있습니다. 뱃속에 있는 아이의 생명권보다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더 중시한 것입니다. 

미국은 1973년부터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낙태권 논쟁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50년 동안 낙태를 허용했던 미국이 이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낀 것입니다. 

 

지난 5월 24일 미국텍사스의 한 초등학교에 18세의 청소년이 총을 들고 들어와 학생 19명과 선생님 2명을 총으로 쏴 죽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종 혐오 총기 난사로 뉴욕주 버펄로에서 흑인 10명이 사망한 지 열흘 만에 다시 발생한 대형 참사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규제법안 강화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이 50년 전부터 생명의 존엄성을 실추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잔혹한 살해사건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생명의 가치 보다 돈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 한 선교사님으로 들은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자매가 있는데 결혼해 아기를 임신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날부터 태어날 아기를 위해 모자를 뜨개질 했다고 합니다. 임신하고 15주 정도가 되어 산전검사를 했는데 아기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죽던가 태어나도 얼마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부는 처음에 흔들렸지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아기는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그동안 정성스럽게 준비한 모자를 아기의 머리에 씌워주었습니다. 그리고 10일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이 부부를 선교사님이 만났을 때 이런 고백을 하더랍니다. 

아기와 함께 한 그동안의 시간이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우리 아이들 생모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만나면 꼭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렇게 귀한 생명을 지켜 주셔서. 가끔 속 썩이기도 하지만 내 인생에 이토록 찬란한 순간은 다시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명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젊고 패기 왕성한 생명이든 노년에 꺼져가는 생명이던 소중합니다. 따라서 생명을 돌보는 사역만큼 의미 있는 것도 없습니다. 아픈 노부모님을 보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축복 많이 받으실 것입니다. 병약한 배우자를 간호하는 우리 성도님들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신체적 또는 정서적으로 약한 우리 자녀들 돌보시는 부모님들도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존귀한 생명을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선교사로 해외에 가지 않아도, 매주 모여 전도하러 나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가족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에 어느 정도 해방되신 분들은 세상의 돌봄이 필요한 곳으로 가십시오. 그러나 먼저는 가족입니다.

 

<안락사>

안락사, 존엄사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삶보다는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삶에 대해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국민의 80%가 안락사 입법화를 찬성합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게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도 암투병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무엇 때문에 안락사를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명을 살릴 의무는 있어도 생명을 죽일 권리는 없습니다.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서 있습니다.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꺼져가는 등불 같은 생명도 함부로 꺼서는 안 됩니다. 

 

<차별의 문제>

지난 5월 30일 경남 밀양에서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가 투신 사망했습니다. 

그보다 앞선 5월 23일 서울에서는 40대 어머니가 발달장애가 있는 6살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인천 연수구에선 60대 여성이 39살 딸에게 수면제를 먹여 숨지게 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다 미수에 그쳤습니다. 딸은 발달장애·뇌병변 중복장애인인데 대장암까지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6월 3일 경기도 안산에서는 20대 발달장애 형제를 홀로 키우던 아버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까?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차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니다. 뉴질랜드에 오신 한국분들 가운데 자녀들이 장애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 행복하게 지냅니다. 왜냐하면 한국처럼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장애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뉴질랜드는 1980년대부터 장애인시설을 폐쇄해 왔고 2006년 마지막 시설인 킴벌리 시설이 폐쇄되었습니다. 장애인시설을 폐쇄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로 하기 위함입니다. 그럴 수 있는 정책들을 개발하고 실천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지금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제가 뉴질랜드에 있을 때 주변에 늘 장애인들이 있었습니다. 마트에서 카트를 운반하는 일들은 대부분 장애인들이 합니다. 한번은 아이들 만화영화를 보는데 클립포드라는 개가 주인공인 만화영화가 있어요. 혼혈아이들이 함께 등장하고요. 장애인 아이도 등장합니다. 다리가 없는 개도 등장해요. 그러니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장애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너무 냉혹합니다. 장애인 학교가 동네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시위를 합니다. 집값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꼭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은 차별하는 것은 간접적인 살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십시오. 나이가 든 분들이 지역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어르신 보호 센터로 갑니다. 이전에는 동네에서 나무 그날 아래에서 정겹게 담소를 나누시던 분들이었습니다. 

시설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예요. 우리가 저들을 몰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에서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우리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일입니다.  

간혹 어떤 성도들은 영혼과 육신을 구분하고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육신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과 육신은 구별은 있지만 분리된 것은 아닙니다. 영혼이 건강할 때 육신이 건강하고 육신이 건강할 때 영혼도 건강합니다. 영혼이 병들면 육신도 병들고, 육신이 병들면 영혼도 병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는 만큼 육신도 소중히 여기십니다. 따라서 우리 몸의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육신을 혹사하는 것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자기 몸을 상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안식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해야 합니다. 

 

선배목사님들은 강대상에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셨습니다. 

제 친구중에도 있습니다. 밤이면 강대상에 올라와 기도하다 잠깐 자고 새벽기도 인도합니다. 

신학교 때 함께 통학했던 전도사님은 앞을 못 보시고 걷지를 못하십니다. 원래 건강했는데 40일 금식하시면서 몸이 망가지셨습니다. 저에게 절대 40일 금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주의 일을 하길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나라 40-50대 남자사망률이 여자의 3배입니다. 음주, 흡연등 건강해 해로운 생활습관과 경제활동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너무 몸을 혹사시키지 마세요. 

 

지나친 염려와 근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몸을 망가뜨립니다. 

잠언 17:22

22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자살>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한국인의 자살률은 OECD 37개국중 1위입니다. OECD평균의 두배가 넘습니다. 

자살의 이유는 다양합니다. 중요한 것을 상실했을 때, 굉장한 우울감을 유발하면서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산, 사람, 건강, 명예 등이 포함됩니다. 또한, 인간은 가까운 사람의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므로 그런 지지기반이 너무 없을 때 너무 외롭거나 소외될 때도 상당히 위험도가 높습니다. 

자살의 이유를 단 한가지로 설명할 수 는 없지만 어떤 사회적 현상이라든가 개인적인 성향의 이유로 자살의 이유를 찾아 들어가면 도와주기 어렵습니다. 핵가족화, 개인화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자살의 제1 원인은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뇌에 생긴 질병입니다. 적절한 치료를 통해 치료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의지나 성격과는 무관하게 병에 걸리듯 뇌에도 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과 우울증은 다릅니다. 최소 2주 이상 우울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정신과 진료를 받으시길 권면 드립니다. 그 상태에서는 죽고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가족 중에 우울증을 겪고 계신 분이 계시면, “용기를 가져봐, 취미를 가져봐, 마음을 굳게 먹어봐, 기도해.”라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프니까 회복이 필요해, 좀 쉬어도 되. 그동안 잘해왔어.”라며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우셔야 합니다.

 

저는 자살한 가족의 장례를 두 번 집례한 적이 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뿐더러, 남겨진 가족이 당하는 고통은 너무 가혹합니다. 자살 유가족은 평생 죄책감과 고통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살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고 우리 주변 사람들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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