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13. 지난 날을 상고하여 보라
신명기 4:32–40
32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33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34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35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36여호와께서 너를 교훈하시려고 하늘에서부터 그의 음성을 네게 듣게 하시며 땅에서는 그의 큰 불을 네게 보이시고 네가 불 가운데서 나오는 그의 말씀을 듣게 하셨느니라
37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38너보다 강대한 여러 민족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과 같으니라
39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40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신명기 4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압둔 이스라엘에게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의 요점은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4:40
40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모세의 이 세 가지 명령은 신명기를 통해 계속해서 반복될 것입니다.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 같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는 이것이 절대 쉽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모세는 이 말씀을 전하면서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언급합니다.
32~3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서 40절에 그러니 너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먼저 주목할 것은 모세가 이 말씀을 하면서 명령조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설득합니다. 친절하게 조목조목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지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압하지 않으십니다. 명령하시고 충성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하나님은 좋은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기뻐하셨던 하나님은 저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떠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자유로 하나님을 선택하며 섬기길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진 인격성입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들은 본능과 질서에 의해 움직입니다. 꽃이 피고 싶다고 피고, 피기 싫다고 안 피는 것이 아닙니다.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것이 자연의 질서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동물도 본능으로 움직이고 반복적 훈련으로 행동을 통제합니다.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만 유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 존재로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순종하길 원하셨습니다.
강압에 의한 것도 아니요, 두려움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그 은혜가 정말 감사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설득되지 않고는 누군가를 예배하거나 그의 말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권위와 힘이 두려워 당장에는 그 말을 따르는 것 같지만, 뒤돌아 서면 달라집니다.
사람의 인격은 스스로 설득되거나 감동되지 않는 이상 누군가의 말을 자발적으로 듣지 않습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나이가 되었을 때 부모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까? 아무리 좋은 충고라도 듣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릴 때야 부모 말이 무서워서 지키지만, 머리가 좀 크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그때 여러분이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설득입니다.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고 예화까지 들면서 설득합니다.
왜냐하면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설득합니다. 설득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이 때문입니다.
만일 모세의 이러한 설득을 이스라엘이 들었더라면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나안땅에서 축복 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 약속을 하지 않습니까?
신명기 4:40
40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설득하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창조하셨어요. 그만큼 존엄하게 창조하시고 존귀하게 대하십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따르지 않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스스로 설득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은혜이면서 동시에 중요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에 대한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설득하셨는데 듣지 않으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누구를 탓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유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었어요.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유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하나님이 막지 않으세요. 막을 수 있지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중심에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싫어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대신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불순종의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불순종의 대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자녀들은 독립하면 행복할 줄 압니다.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기를 원합니다.
대학 가면 그렇게 나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집 떠나면 고생합니다.
독립하려면 그만큼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실력이 있어야 해요.
결혼도 나이가 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합니다.
자유는 책임이 따르기에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후 자신의 경험과 능력의 한계에 갇혀 버렸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책일 질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내 지혜와 능력으로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던가요?
발등의 불도 끄지 못해 전전긍긍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러한 우리를 실력 있는 자녀들로 세우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로 세우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실력과 능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장에는 힘을 발휘할지 모르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우리 삶의 문제를 얼마만큼 해결할까요?
자녀들의 문제하나 해결해 주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러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돈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성경이 말하는 능력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내하는 것이고, 참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것들을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능력은 어떤 능력입니까?
빌립보서 4:11–13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가난함에 처하든, 부함에 처하든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자족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전에는 돈이 좀 많아지면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것에 상관없이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든 없든 내 삶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11
11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원문에 가깝게 해석하면 능력으로 능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력있게 하셔서 고난을 기쁨으로 견디고 오래 참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야 자유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책임을 감당할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저는 바다 수영을 즐깁니다. 그것은 수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꼭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서핑입니다. 높은 파도를 타고 즐기는 서핑을 꼭 해보고 싶어요. 파도는 누군가에게 두려움과 공포입니다. 그러나 수영실력이 있으면 그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바다를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누릴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갖춘 자들입니다.
그 능력은 인생의 여러 가지 고난을 통과하면서 습득되는 것들입니다.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 속에서 다양한 고난을 통과하면서 그 속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훈련되고 연단되면서 얻어지는 것들입니다.
하나님 자녀다운 모습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시고 고난의 풀무 불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보십시오.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탄했나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뜻하지 않았던 삶의 문제들이 덜컥덜컥 우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때로는 막다른 절벽에 서는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그때는 죽을 것 같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나서 그 고난을 빠져나왔나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견디게 하셨고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힘들었던 순간들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때 내가 견디긴 했고 감당하긴 했는데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내 의식이 그것을 담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일단 닫으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감당할 만큼 성숙해지면 그때 열어주십니다. 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무슨 말인가하면, 그렇게 우리는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중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연단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형성된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나는 비록 연약하여 넘어지고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나를 끝까지 붙들고 계신다라는 믿음입니다.
내 인생 끝날 것 같았지만 일으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가운데 보여주고 싶어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말입니다.
단지 기록된 말씀으로만 아니라, 그 말씀을 실제로 경험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체험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어떤 분이셨는가를 상고해 보라고 합니다.
상고하여 보라는 것은 지나간 삶의 시간들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32Ask now about the former days,”
너희 삶을 돌이켜 보고 그때 그 순간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셨는기를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실제하셨던 순간들을 언급합니다.
33절, 불 가운데 너희에게 말씀하셨다.
34, 강한 손과 편 팔로 애굽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셨다. 그때 얼마나 큰 이적과 기사를 일으키셨는가
38, 강한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믿고 붙잡아야 할 하나님은, 너희 가운데 실제로 역사하셨던 하나님 이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순간들의 하나님의 개입과 붙드심이 지금 너희를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 이곳에 있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현재를 나를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나온 삶의 시간 속에 항상 함께 하셨고, 도우셨고, 붙드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 이것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세종시 호수공원에서 놀다가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파트를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것입니다. 어디 분양하는 곳이 없나? 다자녀 혜택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사면 어차피 오를 것이고 우리도 영혼까지 끌어모아 사야 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려면 대출받아야 합니다. 대출금도 빚인데 일단 빚이 있으면 돈에 매이게 되고 그러면 결국 돈에 민감하게 됩니다, 어떤 선택들을 할 때도 돈을 중심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되겠죠. 결국 현재 우리 가족이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아파트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라고. 그래서 결론은 아파트 사지 말자였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삶이 초라하거나 불편하지 않거든요.
우리 삶에 아파트 하나만 내려놓아도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왜 사람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사려고 합니까? 아파트 한 채 있어야 내 삶이 안정되고 미래가 보장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 삶의 행복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믿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거든요.
아파트를 사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자유는 책임이 뒤따르고 그 책임을 감당할 능력이 있을 때 자유를 누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 능력이 아파트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며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진 능력은 무기나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무기를 만들 시간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전략회의를 할 시간에 가족들과 오붓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자유를 무기를 만드는 것에 허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누리는 예배의 자유를 다른 것에 빼앗기지 마십시오.
가족이 함께 하는 오붓한 시간을 학원과 과외에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것이 우리 자녀의 축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뢰하는 사람의 말만 듣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십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더 신뢰하십니까?
신명기 4:40
40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믿고 신뢰하며 살았는지 말입니다.
내가 의지하고 붙들었던 것들은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고 무너졌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이 견고한 산성이셨고 든든한 바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거기 계셨고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누구의 말을 들어야겠습니까?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 선택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마음껏 누리시는 복된 삶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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