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15. 우리를 위한 언약의 말씀
신명기 5:1–10
1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2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4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5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6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7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8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모세의 첫 번째 설교가 마무리 되고 이제 두 번째 설교가 시작됩니다.
1장에서 4장까지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씀을 전했다면, 5장부터는 미래를 전망하며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며 그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모세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대상이 언약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의 백성입니다.
신명기 5:2–3
2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이 부분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약’이 무엇인지는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언약은 죄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방식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언약은 두 인격 대상자가 법적인 양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결혼이나 입양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혀 관계가 없던 남녀가 결혼식을 통해 부부가 됩니다. 어떻게 부부가 됩니가? 결혼식을 통해서입니다. 결혼식이 언약식입니다. 언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당신을 나의 아내(남편)으로 삼아 이날 이후로 동거동락하며, 환경이 좋든지 나쁘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건강하든지 있든지 병들던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대로 당신을 사랑하며 남편의 책임을 다할 것을 엄숙하게 서약합니다.”
이 서약을 하나님과 사람 즉 증인들 앞에서 함으로 둘은 부부가 됩니다.
입양은 특별한 서약식은 없지만, 법적인 절차 가운데 서약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언약을 통해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이 가족이 됩니다. 가족이 되면 서로에 관계는 책임으로 묶입니다. 어떤 책임입니까? 신실할 것에 대한 책임입니다. 환경이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남편 또는 아내로서의, 또는 부모의 책임을 다할 것에 대한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심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남편이 되기로 하십니다. 그러한 책임에 자신을 묶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되고 그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을 근거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5–6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언약백성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희는 나만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의 남편이기 때문에 너희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남편이 아내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듯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언약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호하고 인도하며 책임진다는 것을 보장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33–34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내일에 대한 염려로 주의 일에 헌신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의 삶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의 염려와 두려움에 매여 살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위해 살라는 격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배타적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에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그들의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주어진 삶을 헛된 것에 낭비하지 않고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녀들은 잔소리로 들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가르치지 않습니까?
예수 믿어라, 주일날 꼭 예배 드려라, 운동 좀 해라, 골고루 먹어라. 부모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난 어린이날 아이들 데리고 바다에 갔어요.
아내는 돗자리에 앉아 우쿨렐레를 치며 찬양하고 있고, 아이들은 물에서 첨벙첨벙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그것을 보는 것이 저의 행복이예요. 제가 하는 것이 없어요. 그냥 안전하게 즐겁게 놀도록 지켜주는 일입니다. 그것은 저의 책임이기도 하구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깊이 들어가지 마라. 천천히 달려라. 결국 희수가 자전거 타다가 다쳤어요.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가르치고 잔소리할 수 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그 말씀안에 있을때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어요. 그러나 말씀 밖으로 넘어가면 그 책임은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5:6
6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너희의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자유가 없이 종살이 하고 있을 때, 크신 권능과 능력으로 너희를 구원한 하나님 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야, 내가 너의 아빠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명을 주십니다.
신명기 5:7
7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5:8–10
8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또한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시는데, 너희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사랑하고 섬기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말씀의 배후에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사랑이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데요,
우상숭배의 대가는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인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방점이 심판이 아니라 축복에 있습니다.
우리도 이럴 때 있잖아요?
“너 대학만 가봐. 네가 해달라는 것 다해줄게. 그런데 이번 시험 망치면 쥐뿔도 없어.” 이런 마음입니다. “당신 운동해서 살 빼면 내가 양복사 줄게. 아니 차도 바꿔줄 수 있어. 그런데 계속 술·담배에 야식까지 먹으면 밥이고 뭐고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방점이 심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에 있습니다. 잘하라는 격려입니다. 도와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기 보다, 이미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 나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명령으로만 받으면 안 됩니다. 계명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주신 것이고 우리 잘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천대까지 축복하기 위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의미있게 살라고 가치있게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신명기 10:13
13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대접해 주십니다.
그만큼 우리를 귀하게 여기세요. 그만큼 아끼고 사랑하세요. 우리가 잘되길 바라세요.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세요. 그러니 하나님 말씀안에 거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계명지키기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계명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5:3
3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이스라엘이 처음 언약을 맺은 곳은 호렙산입니다. 출애굽 한 후 삼 개월이 지났을 때입니다. 출애굽기 19장부터 그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40년 전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40년전의 호렙산에서 맺은 언약이 오늘날 너희와 맺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부모세대와 맺은 언약인데 너희와 맺은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 조상들과 맺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는 너희에게 여전히 살아있는 말씀으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화석화된 고대문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히브리서 4:12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
13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살아있는 말씀을 주시기에 그 말씀은 반드시 역사를 일으킵니다.
베드로전서 1:23
23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씨앗으로 비유한 것은 그 안에 엄청난 생명의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살아서 역동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하나님 말씀을 씨앗으로 비유합니다. 그것은 비록 작지만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생명이 있기에 땅에 심기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둡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록된 성경의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합니다. 우리의 영의 약식이 되어 강건하게 하고 성장시킵니다.
신명기 4:33
33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특별하고 귀하다라는 것입니다.
주식투자의 대가로 알려진 워랜버핏은 자신과의 점심식사를 경매상품으로 내놓고 낙찰된 모든 금액을 자선사업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 암호화패 트론의 창업자인 저스트선에게 낙찰되었는데 그 금액이 54억원이었습니다. 그는 워랜버핏과 점심먹기 위해 54억원을 지불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워랜버핏의 말이 그 만큼의 가치를 지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은 특별한 일입니다.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만 열면 원하는 설교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정작 듣고 싶은 말씀만 찾아서 듣습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기록된 성경말씀으로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성경을 펼쳐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씨앗처럼 여러분 심령에 심어져 역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병든 영혼을 강건케 하며, 지친 마음에 힘들 불어 넣을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평안을 줄 것입니다. 그 생명력이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규례와 법도이기에 반드시 배우고 지켜야 합니다.
신명기 5:1
1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규례(호크)는 “법”이라는 의미이고 법도(미스팥)은 “정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법과 정의입니다. 법과 정의라고 할 때는 세상이 불법과 불의로 가득차 있는 것을 전제합니다. 법이 왜 필요합니까? 사람들이 불법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왜 정의가 필요합니까? 사람들이 불공정하고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법과 정의의 판단자가 되었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선이고 정의입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되면 악이고 불법입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자기 중심성은 모든 것을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법과 정의의 기준이 자기의 처한 환경과 감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법정에서 법과 정의라고 판단했던 것들이 정부가 바뀌면 뒤집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그때는 불법이었는데 지금은 합법입니까? 왜 그때는 불의였는데 지금은 정의입니까?
세상이 말하는 법과 정의는 그것을 집행하는 권력에 의해 늘 바뀝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과 정의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법보다 하나님의 법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세상의 법은 하나님의 법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창세 이후에 변한 적이 없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이 변해도 하나님의 법은 같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반드시 절대적이고 보편타당하며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과 정의는 절대성과 보편성과 불변성을 충족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법과 정의 즉 규례와 법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과 규례입니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법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들은 세상에는 여성과 남성 2가지 성별뿐 아니라, 다양한 성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성 지향성에서도 양성애, 범성애, 동성애 등을 이성애와 동등한 선상에 놓고 평등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에 대한 도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규례와 법도라는 것은,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엄격합니다. 선과 테두리가 분명합니다. 넘어서면 안 됩니다.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운전하기 위해 도로교통법에 대해 배워야 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배워야 합니다.
이 또한 우리의 행복과 안전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의 길이 어디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따듯한 아버지의 말씀 안에 있고, 엄격한 규례와 법도 안에 있습니다.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십시오. 말씀안에 담긴 지혜로 세상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사시길 바랍니다.
그 길로 우리의 자녀들을 인도하시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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