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2-03-29 12:00

10. 하나님의 거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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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10. 하나님의 거절의 의미

 

신명기 3:23–29

23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신명기 강해 10번째 시간입니다.

본문은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께 이를 거절하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모세는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거절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23절에 보면‘그때에’에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때입니까? 이스라엘의 두지파 반이 요단강 동편을 기업으로 얻었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두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심으로 가나안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요단동편 땅을 기업으로 얻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기뻤습니다.  

40년 광야생활이 끝나고 드디어 비옥한 땅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푸른 초장에 한가히 풀을 뜯는 가축들,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옹기종기 모여 떠드는 아낙들의 정겨운 풍경들, 아내들은 올리브 기름에 빵을 구웠고, 포도와 무화과로 풍성해진 식탁은 그야말로 천국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곳에 정착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도 선봉에 서서 말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아름답고 풍성한 기업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헌신은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의 승리. 그들이 누리는 기업의 풍성함,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 된 모습. 모세는 지금 이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난 우리의 삶 속에 행복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과만 같아라. 이제는 바랄 것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모세가 지금 그것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며, 간절한 자신의 바람을 기도합니다. 

24절은 모세의 찬양입니다. 

신명기 3:24

24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모세는 하나님의 크심과 권능을 체험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두 번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전쟁은 두렵고 무섭습니다.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전쟁입니다. 전략도 무기도 없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그 과정이 생략되어 있어 알 수 없지만, 다른 성경의 기록을 통해 기적적인 승리임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나님의 크심과 권능을 여러차례 체험했습니다.

애굽의 10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 홍해를 가르실 때,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을 때, 구름기둥과 불기능이 떠오를 때, 그리고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에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그는 마치 처음 주님의 크심과 권능을 체험한 것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신명기 3:24

24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이것은 모세가 이전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경이로움이 항상 새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우리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더욱 새로워진다는 것을 아십니까?

 

어릴 적 부모님께 했던 감사와 현재의 감사는 전혀 다릅니다.  

더욱 깊어졌고 새로워졌습니다.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인격적으로 성장했고 영적으로 성숙해졌습니다. 과거에도 찬양했지만, 그 깊이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이 순간이 모세의 인생 가운데 가장 진실했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기도가 그의 진심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합니다.

 

모세의 기도

신명기 3:25

25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모세는 알고 있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37

37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모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자신에게 진노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민수기 20장의 므리바 물 사건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므리바에 있을 때입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그들은 늘 불평과 원망을 달고 살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했고 만나를 주시니 또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망했습니다. 이제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여러분! 불평과 원망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모세를 찾아와 불평을 퍼 붓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볼까요?

 

민수기 20:3–5

3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회중을 반석 앞으로 모으라고 하십니다.  

민수기 20:10–11

10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20:12

12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다고 하십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요? 

민수기 20:7–8

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명령을 보면 세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는 아론과 함게 회중을 모르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첫 번째 두 번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명령인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이때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민수기 20:10 

10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모세가 상당히 분노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동안 이스라엘은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모세는 그 불평과 원망을 계속해서 들었던 것입니다. 참고 참았던 분노가 이 순간 폭발한 것입니다. 반석에게 명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의 손에 지팡이가 있으니 그것을 휘둘러 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의 행동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만큼 잘못된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이 한번의 일로 인해 모세에게 진노하셨을까요?

그의 잘못은 과연 무엇일까요?

 

민수기 20:12 

12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것은 네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러한 행동을 심각하고 위중하게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며 이스라엘 목전에서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 이 지팡이로 나일강을 치니 핏물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드니 우박을 내렸고, 메뚜기 때가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아말렉과 싸울 때도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 하셨고 이에 승리했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내밀었을 때 바닷물이 갈라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하실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실 때입니다.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갈 때마다 이번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며 자신은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바위에게 명하지 않고 지팡이로 내리쳤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입니다. 그는 분노하였고 그 순간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믿음이 없는 보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거룩함을 훼손한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은 순종인데 그 순간 그는 불순종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모세의 인간적인 본성과 그의 믿음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봅니다. 

그는 출애굽의 영웅이며 신실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구약의 선지자 중에 모세를 가장 으뜸으로 여기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애굽에 있을 때 자신의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 모래에 감추었습니다. 이 일이 탄로 나자 미디안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어쩌면 그는 분노의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사람의 본성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예수믿고 신앙생활 한다고 그의 본성이 한순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는 므리바에서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드러내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믿음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살인자였고, 분노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분노를 책망하셨습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자기 자식이 아무리 부족하고 잘못해도, 그래도 자기 자식입니다. 

누가 내 자식에게 뭐하고 하면 열 받습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은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자식들입니다. 

아무리 모세라고 해도 그들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보면서 범하기 쉬운 실수 중의 하나는, 이들을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원망하고 불평하지?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더 불평하고 원망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품으셨습니다. 

부족하고 실수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반응하신 것입니다. 

“니가 뭔데 내 자식에게 분노해!”

 

여러분, 신앙인이 성숙한다는 것은 넉넉하고 이해심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낼 일에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은 아직 어리기 때문입니다. 성숙하면 정죄하지 않아요. 그럴 수 있다 이해하거든요. 분내고 싸우는 것은 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수할 수 있어요. 부끄러운 죄를 짓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버리지 않거든요. 그런 이스라엘을 품고 가셨습니다. 그들이 착하거나 선해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식이니사랑하신 거예요. 아무리 못나고 부족해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 눈에 아무리 부족해보여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요한복음 13:1

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여기에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한 베드로, 서로 높은 자리 차지하겠다고 싸우던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가 포함됩니다. 주님은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품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정죄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럴 만큼 진실되고 거룩한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부족함을 감싸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함입니다. 

 

골로새서 3:12–14 

12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이와 같은 이유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반석에서 물이 나왔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불신하였고 하나님의 자녀에게 분노함으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것입니다. 

 

다시 신명기로 돌아옵시다. 

모세는 과거의 그 사건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이 기도를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요단 동편에서의 승리와 이로 인해 기업을 얻은 두 지파 반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행복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천국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 순간이 좋습니다. 이 순간을 영원히 누리게 하옵소서. 할 때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거절하십니다. 

신명기 3:26

26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만해도 족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무심하시게도 그 땅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너는 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신명기 3:27

27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들어가지도 못할 땅을 왜 보여주셨을까요? 이순간 모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저는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거절하셨을까?

들어가지도 못할 땅을 왜 보여주실까?

 

그러면서 깨닫을 것은 이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이스라엘이 구원 받았음을 입증하는 사건이란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많은 분들이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은 과연 천국에 갔을까 하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가나안땅에 들어갔다면 광야에서 죽은 자들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도 못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으로 인해 광야에서 죽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구원받았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도 그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거룩합니까? 그렇지 않거든요. 그들은 그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여인들과 혼인합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면,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때로는 분노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실수하고, 넘어지고 해도 주님은 우리를 품으시고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이 땅의 삶 가운데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욱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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