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2-05-03 06:51

14. 도피성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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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14. 도피성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

 

신명기 4:41–49

41그 때에 모세가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였으니 

42이는 과거에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 곳으로 도피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 중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가 그의 생명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라 

43하나는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이라 르우벤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길르앗 라못이라 갓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바산 골란이라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 

44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러하니라 

45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증언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으니 

46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그리하였더라 이 땅은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속하였더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를 쳐서 멸하고 

47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고 또 바산 왕 옥의 땅을 얻었으니 그 두 사람은 아모리 족속의 왕으로서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 살았으며 

48그 얻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의 아로엘에서부터 시온 산 곧 헤르몬 산까지요 

49요단 이쪽 곧 그 동쪽 온 아라바니 비스가 기슭 아래 아라바의 바다까지이니라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41-43절까지 도피성에 대한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44-49절까지입니다. 모세가 말씀을 전하고 있는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소개입니다. 

 

저는 먼저 두 번째 부분을 먼저 설명하고 이어서 첫 번째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용은 모세가 말씀을 전하고 있는 장소와 시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언제, 어디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가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강조합니다.  

신명기 3:29

29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그 때에는 시간적 배경이고 벳브올 맞은편은 공간적 배경입니다. 

그때는 언제이고 벳브올 맞은 편은 어디일까요?

신명기 4:45–49 

45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증언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으니 

46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그리하였더라 이 땅은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속하였더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를 쳐서 멸하고 

47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고 또 바산 왕 옥의 땅을 얻었으니 그 두 사람은 아모리 족속의 왕으로서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 살았으며 

48그 얻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의 아로엘에서부터 시온 산 곧 헤르몬 산까지요 

49요단 이쪽 곧 그 동쪽 온 아라바니 비스가 기슭 아래 아라바의 바다까지이니라

 

언제입니까?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에서 아무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진멸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은 후입니다. 장소는 벧브올 맞은편이거요.

본문의 구조를 보면 4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전하고 있는 말씀은 이 시공간적 배경이 감싸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배경으로 4장의 말씀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전해진 말씀인가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언제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이 요단동편을 정복하고 땅을 기업으로 받았을때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순간입니까?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40년 만에 기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떠돌이 생활을 접고 정착민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을까요.

그러나 승리에 도취하여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들이 꼭 기억해야 할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알브올 사건입니다. 

 

모세가 말씀을 전한 곳이 어디라고 합니까?

벳브올 맞은 편 골짜기입니다. 벳브올은 바알브올이라고도 불립니다. 

출애굽1세대들은 이곳에서 모압의 여자들과 음행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알브올 사건은 이스라엘에게 잊을 수 없는 참혹하고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자신들의 부모들이 바알신을 음란하게 숭배했고 이로 인해 죽임을 당했던 곳입니다. 그 자녀들이 모세에게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부모가 부끄러운 행위를 했던 곳,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었던 곳, 그곳에서 모세는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어떤 말씀이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 세가지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모세는 자녀세대에게 이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마치 자녀들을 팽목항으로 데려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며 국가의 역할과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기념관에 데려가 국력의 중요성을 교훈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때의 분위기가 얼마나 엄숙하고 진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일부로 이곳에서 이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승리했다고 기업을 얻었다고 바알브올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부모가 무엇 때문에 망했는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기업을 얻은 것은 너희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여전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고, 우상을 만들어 섬길 수 있으며 하나님 말씀을 거역할 수 있는 존재임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늘 교훈을 줍니다. 역사를 배우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당면한 현실을 바르게 인식하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성도들에게 있어서 국가의 역사는 세상을 바른 시각으로 보는 것을 돕습니다.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삶의 시간들은 현재의 삶을 보다 낳은 방향으로 이끕니다. 만일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 없다면 우매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를 반복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 속에서 싸워나가면서 능력있는 자녀들로 자라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부모세대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교훈삼아 보다 낳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가 강조한 것인 이것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분을 경외하라. 너희 부모들은 실패했지만, 너희는 그래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해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너희 부모들은 우상을 숭배하여 결국 심판받았으니 너희는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부모들은 이것에 실패하여 결국 하나님의 기업을 얻지 못했으니 너희는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부모가 술에 의존하여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면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부모가 도박에 빠져 어리석은 인생을 살았다면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부모가 외도로 가족의 눈에 피눈물을 나게 했다면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의 실패를 반복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환경의 영향도 있겠고, 유전자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죄를 합리화시킬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히12:4).

 

하나님은 우리가 어찌하던 복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이를 교훈하기 위해 역사를 남기신 것입니다. 단지 우상 숭배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교훈이 아니라, 부모세대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실패한 역사를 보여주심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의 지나온 삶을 통해 깨달은 것들은 남겨진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의 실수와 실패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다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거기서 배우는 것입니다. 애쓰고 노력하고, 그러다가 또 넘어지고 실패하고.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의지를 다지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력하는 만큼 절망합니다. 애쓰는 만큼 화가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안되기 때문입니다. 

불신남편 하나 마음에 품고 사랑하는 것 조차 어렵지 않습니까?

자녀들은 또 어떻습니까? 애쓰는 만큼 화가 납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습니까? 

포기가 안됩니다. 어떡해서든 잘되는 것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들 힘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나만 격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역사 가운데 이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켜라. 그래야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인간이 역사를 통해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러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류가 처한 슬픈 현실입니다. 

 

모세는 너희는 바알브올의 사건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너희 부모가 겪은 일이었고 그 실패를 되풀이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실수를 되풀이 하게 됩니다.

그들은 가나안에서 우상들을 섬기게 됩니다. 바알브올의 사건은 반복됩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어났습니다. 그 참혹함을 보고도 일어났습니다.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알고 있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아나 침공은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3차 세계대전의 위기 앞에 있습니다. 그 참혹함은 재현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역사를 통해 깨닫고 배워도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역사를 통해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의 실패. 인간교육의 무능함. 정치의 한계성.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 본성의 타락의 결과입니다. 

 

슬프지만 절망적인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절망적인 내 모습도 계속될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패하고 망해도 너희는 또 그 짓거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무능한 인간이라면 무엇 때문에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왜 계속해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애쓰고 노력하고 절망해 본 사람만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절망하고 나에게 절망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삶을 드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던가요? 

 

여러분이 언제 그렇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까? 언제 그렇게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철저하게 실패하고 나 자신의 무능과 연약함에 직면했을 때 아닙니까?

애쓰고 노력하고 다 해보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나요?

 

하나님은 그 자리에 우리를 세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해보자는 것입니다. 

비록 실패하고 절망할지라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속 썩이는 자녀들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절망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해보고 절망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능력을 갖추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고백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내 삶에 그렇게 힘들었던 일들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할 것입니다.

그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도피성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왜 도피성에 대한 언급이 이곳에 나오는 가에 대한 것입니다. 

학자들 가운데는 이 내용이 이곳에 있는 것은 어색하고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아마도 편집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을 죽 이어지다가 갑자기 도피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맥의 흐름이 어색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곳에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요단동편이 정복되고 기업이 분배되었기에 먼저 도피성을 지정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도피성이 시급했던 것입니다. 

 

먼저 도피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명기 4:42 

42이는 과거에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 곳으로 도피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 중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가 그의 생명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라

 

오늘날 법적 용어로 하면 과실치사입니다. 의도치 않은 살인입니다. 

민수기에서는 이것에 대한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35:22–25

22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23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에 이는 악의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24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25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하나님은 가나안에 세곳 그리고 요단 동편에 세곳을 정하셨습니다. 

#지도

 

어떠한 경우입니까? 의도치 않은 살인으로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상태입니다. 돌에 맞아 죽은 자만 피해자가 아니라 돌을 던진 자도 피해자입니다.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살인 대한 자책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위해 도피성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무엇인가 하면 시급하게 도피성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도피성이 왜 필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게 죄를 짖기 때문입니다. 

의도하지 않는 죄로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도피성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편할 날이 없습니다. 죽은 자의 가족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처한 괴로운 현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죽인 자를 찾아가 죽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살인자가 됩니다. 그러면 살인과 살인이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도피성입니다.

 

얼마 전 큰애가 병원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큰애를 위해 두 번의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제가 아무리 훈육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늘 같은 문제에 봉착했고, 그때마다 화가 났습니다. 우리 아이는 왜 늘 부모에게 짜증을 낼까? 왜 과격한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아무리 말하고 훈육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문제는 반복되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충동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 검진을 받아보자 했고, 지난주에 1시간 넘게 검진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 중에 저와 아내는 ADHD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내일 결과가 나오겠지만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ADHD 같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입니다. 이것은 뇌의 신경계통의 발달장애입니다. 전두엽의 발달 문제와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에 관한 기능 저하가 일차적 원인으로 추정되는 질병입니다. 

 

ADHD는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니고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치료방법은 약물치료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동안 우리 아이는 많은 사람에게 불편함과 피해를 주었습니다. 일차적 피해자는 부모입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ADHD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우리 아이가 가해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도 피해자였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태어났을까를 분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DHD아이들은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피해에 대한 손해를 물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자기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안전한 부모의 품입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해 줄 안전한 부모의 가슴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화내고 윽박지르면 될 줄 알았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우리 아이가 피해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큰애에게는 도피성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을 막아줄 따듯한 부모의 품입니다. 2주 동안 학교를 쉬게 했습니다. 이 기간에 그동안 도피성이 되지 못했던 제 자신을 돌아볼 생각입니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의지와 힘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도피성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의도하지 않게 감당할 수 없는 죄를 짖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와 연약함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피해를 입습니다. 

나 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내 자신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도피처를 마련하십니다. 

 

현실도피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살기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렇게 도피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절망하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추슬렀기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도피성입니다. 

저는 동성애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는 죄이지만 그들을 차별하고 혐오해서는 안 됩니다. ADHD처럼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혐오가 아닙니다. 정죄가 아닙니다. 

긍휼과 사랑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도피성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도피성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의도치 않게 사람들에게 상처와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때 도피성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정죄하지 않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입니다. 

비난하지 않고 감싸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도피성이 되사

우리를 죄의 심판으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은 자라면,

우리 가족부터 긍휼히 여기시고, 나아가 우리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주님을 피난처로 삼아 그 분안에서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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