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2-07-19 11:41

24. 탐내지 말라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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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24. 탐내지 말라

 

신명기 5:21 

21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십계명의 마지막은 탐내지 말라입니다. 무엇을 탐내지 말라고 하십니까? 네 이웃의 아내, 집, 밭, 남종, 여종, 그의 소유, 나귀 등입니다. 여기 이웃의 아내가 포함된 것은 당시 여성을 소유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1) 특징

마지막 계명의 특징은 마음을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계명은 말과 행위에 대한 금지 명령입니다. 그러나 탐심은 이웃의 소유를 탐하는 마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마음이 말로 표현되고 말이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마음에서 말로 말에서 행위로 표현될 때 파장력은 커집니다. 긍정적인 영향력이던 부정정적 영향력이던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 사랑을 말로 표현하면 상대가 감동합니다. 안아주거나 선물로 사랑을 표현하면 그 행복감은 배가 됩니다. 

 

반대로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파괴됩니다. 분노의 감정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미움을 말로 표현하면 상대가 상처를 받습니다. 분노의 말은 상대방에게 칼이 되어 마음에 상처를 주고 몸을 상하게 합니다. 미움을 폭력적 행동으로 표출하면 그 관계는 회복되기 어렵고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이렇듯 마음에서 말로 말에서 행위로의 과정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파장력이 다릅니다. 긍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고 파괴적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십계명은 대부분 행위에 관한 금지 조항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은 살인이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7계명은 간음을 8계명은 도둑질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9계명은 ‘거짓증거 ’라는 말에 대한 금지명령입니다. 3계명의 하나님을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도 말에 대한 것입니다. 

 

10계명을 대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살인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으니 10계명을 범하지 않았어.” 그러나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 10계명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입니다. 그 선을 지켰다고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언급하시면서 금지행위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셨습니다. 그 행위를 일으킨 마음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마태복음 5:27–28

27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음욕, 즉 간음을 일으키게 된 그 마음의 상태까지도 죄로 여기셨습니다. 

 

마태복음 5:21–22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이라는 행위를 일으킨 그 마음의 상태, 즉 분노까지도 죄로 여기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 그리고 우리 말까지도 보신다는 것입니다.

 

잠언 21:2

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십계명의 마지막은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주목하고 있고 우리가 마음을 잘 관리하고 다스릴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실 10계명에서 금지된 모든 것들은 탐심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따라서 탐심을 금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순종한다면 모든 계명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2.탐심은 무엇이고 왜 생기는가?

탐심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욕심은 필요이상으로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욕망이라면 탐심은 이보다 더 강한 집착의 상태를 말합니다. 특히 10번째 계명에서는 이웃의 소유를 탐하는 마음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웃의 소유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소유하고 싶어하는 상태를 금하신 것입니다. 

 

잘 보시면, 이웃의 물건을 도둑질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웃의 소유를 부러워하고 탐하는 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우리에게 어떠한 욕망은 열정을 일으켜 성취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 사회를 진보시키기도 합니다. 이웃을 향한 부러움이 부지런히 살게 하는 동기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탐심은 이러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웃의 소유를 부러워하고 그들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탐심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신약성경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5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삼고 경배하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탐심이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까?

 

원래 인간은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가운데 있을 때 참된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의 인간 아담과 하와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모든 풍성한 은혜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 분의 생명에서 분리되어 죽음이 찾아왔고, 사랑에서 분리되어 이기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혜에서 분리되어 한치 앞의 일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빠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창조주로부터 분리되어 근본적인 불안함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기가 태어나 엄마 품에 안겨 젖도 먹고 사랑도 받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아기는 분리불안과 함께 결핍이 생겨 평생 이것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상태가 됩니다. 

사람은 엄마와의 애착으로만 채울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있습니다. 이것이 비워지게 되면, 성장 과정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채우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도는 의식적이기도 하고 무의식적이기도 합니다. 무의식적이라는 것은 자기가 왜 그런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계속 갈구하는 상태라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조금 잘해 주면 쉽게 의지하게 되고, 그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인격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고 집착하는 모습이 됩니다. 또한, 만남을 지속할수록 불안하고 우울하게 느낍니다. 왜냐하면, 상대가 내 결핍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갈구하게 됩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불안과 결핍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핍이 해결될 때까지 소모적인 만남을 지속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순간 근본적인 불안과 결핍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불안과 결핍은 그 어떤 것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돼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할 때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결핍을 다른 어떤 것을 소유함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안의 결핍이 채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해서 많은 사람의 존경과 인정을 받으면 채워질 것이라 믿습니다. 

소유가 많아지면 내 삶도 풍성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것으로 우리의 근본적 결핍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것이 아니구나” 하고 영원한 것, 진리를 추구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고, 

“아! 이것이 아직 부족해서 그렇구나!” 판단하고 더욱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돈, 권력, 쾌락 같은 것들입니다. 돈을 추구하고 돈을 벌었는데, 여전히 결핍상태를 느끼니 더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얻었는데 여전히 결핍을 느끼니 더 강한 권력을 추구하게 됩니다. 쾌락을 추구하고 쾌락을 얻었는데 여전히 결핍을 느끼니 더욱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탐심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상태입니까? 하나님이 채워야 할 내 안의 결핍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왜 호텔욕실에서 숨졌을까 - 조선일보 (chosun.com)

 

2018년 6월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프랑스의 한 호텔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합니다. 

그는 ‘앤서니 보데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미권 국가에서 젋은이들이 추앙하는 인물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행하고 사람들과 만나 소박한 식사를 나누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살았습니다. 이것을 방송에 담아 내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가 자살한 날 CNN은 그를 추모하는 방송을 할 정도로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들은 돈과 명예를 행복의 조건으로 삼았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지식과 경험을 쌓고 누리는 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삼습니다. 그런 면에서 ‘앤서니 보데인’을 많은 젊은이가 모델로 삼고 닮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한 그가 61세의 나이에 호텔에서 목을 매었습니다. 그 또한 삶에 결핍을 느꼈고 우울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가 이런 생각 하잖아요. 멀리 여행 가고 싶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현지 음식을 먹고, 자연 속에서 쉼과 안식을 누리고 싶다. 그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한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정작 그러한 삶을 살며 돈과 명예까지 얻었던 그가 자살한 것입니다. 

결국 그런 삶도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의 방황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전까지 우리의 탐심은 멈추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3장에서 탐심이 우상숭배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채워야 할 마음의 공간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마음의 상태. 내가 간절히 추구하는 바로 그것,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무엇으로 여러분의 빈 마음을 채우고 계시는가요?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다른 무엇입니까? 

 

3.탐심의 그 결과

구약의 사건을 통해 탐심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를 보겠습니다. 

 

민수기 11:4–6

4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만나를 내려 주셨고 이를 조리하여 음식으로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불평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고기가 먹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메추라기 고기를 내려 주셔서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정말 고기를 먹지 못해 불평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왜냐햐면 고기를 먹여주어도 불평과 원망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이 없다고 원망했고, 길이 험하다고 원망했고, 마침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원망합니다. 그들은 광야의 삶 자체가 싫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불평과 원망은 정당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400 동안의 애굽의 노예 생활을 끝내게 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자유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매일 아침 만나를 주셨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구름기둥과 밤에는 추위를 녹일 불기둥으로 보내주사 이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신고 나온 신발이 부르트지 않도록 하셨고, 입고 나온 옷이 해어지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만큼 세밀하게 이들을 지켜주셨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고작 고기가 없다고 마늘과 파와 부추가 없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한 그들의 원망과 불평은 탐욕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입니다. 

 민수기 11:4

4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탐욕을 품자 원망과 불평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원망과 불평은 탐욕의 증상입니다. 

탐욕에 걸려 있으면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탐욕은 현실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품은 탐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집트의 삶의 가치와 방식을 추구하는 욕망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평등이 아니라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사회, 계급과 차별이 존재하는 이집트의 삶을 동경한 것입니다. 

민수기 14:4

4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탐욕의 원인은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모두가 평등할 때 탐욕은 자리할 곳이 없습니다. 

뉴질랜드에서 특이했던 것은 학용품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노트와 볼펜을 사용합니다. 간혹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예쁜 학용품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는데 학교에서 사용이 안됩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학용품에 관심이 없어요. 탐욕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타인의 것이 더 좋다고 여길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광야에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삶과 광야의 삶을 비교했던 것입니다. 똑같은 음식, 똑같은 옷, 똑같은 집이 싫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평등했고 자유로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것들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오히려 애굽의 삶을 동경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러한 탐욕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입니다 .

 

민수기 11:4

4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출애굽때 이스라엘과 함께 거주했던 다른 인종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언약의 자손들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이 먼저 애굽의 삶을 동경했던 것입니다. 현재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기 보다 애굽의 삶과 비교하며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이 원망과 불평은 순식간에 이스라엘 사회로 전염되었습니다. 

 

여러분, 원망과 불평은 전염력이 있습니다. 코로나만 전염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망과 불평도 전염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변에 이런 분들이 있다면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탐욕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이 탐욕은 세상의 삶의 가치와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로고 강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를 바라보고 감사하기보다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 원망하고 상황에 대해 불평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민수기 11:33–34

33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집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우리가 탐욕을 낼 때 하나님은 그것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도 함께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10:10 

10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성경은 탐욕에 대해 단호합니다. 교회 안에 이런 자가 있거든 내쫓으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5:11–13

11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에베소서 5:3 

3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탐욕은 하나님과 그분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우리 안에 생기는 세상적 욕망입니다. 탐욕의 증상은 원망과 불평입니다. 사람을 향한 원망이든 어떠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든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탐욕을 가질 때 세상적 가치를 추구하고 삶의 방식으로 살게 되며 결국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게도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것은 탐욕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4.자족하는 능력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빌립보서 4:11–13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능력은 자족하는 능력입니다. 

내 곁에 허락하신 가족들에게 감사하시고 만족해 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일터에 감사하고 만족해 하는 것입니다.

내가 속한 교회에 감사하고 만족해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 곁에 계신 하나님 한분만으로 감사하며 만족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와 만족이 우리 삶을 복되게 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6–10

6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에게 주신 소박한 것들에 자족할 때 탐심은 자리할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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