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29. 순종을 통해 누리는 축복
신명기 7:12–26
12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13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14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15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16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넘겨주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17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18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19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
20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
21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2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2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기시고 그들을 크게 혼란하게 하여 마침내 진멸하시고
24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넘기시리니 너는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마침내 그들을 진멸하리라
25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26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멀리하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
1.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주시를 원합니다.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그분의 자녀 삼으신 것은 우리를 복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반드시 받습니다.
에베소서 1:3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미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받았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 받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늘의 신령의 복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5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복입니다.
또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1:7
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 위해 죄사함 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사함 받게 했다는 것입니까? “속량”이라는 단어가 나오지요. 당시 속량은 시장용어입니다. 노예를 돈을 주고 사서 해방할 때 치른 대가를 말합니다. 즉 우리는 죄의 노예, 사단의 노예였는데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자유 자로 해방하시고 자녀로 삼은 신 것입니다. 그때 치르신 값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 즉 죽음입니다. 죄의 대가는 하나님의 심판인데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우리 대신 심판하시고 그 대가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입니까? 죄의 심판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로마서 8:1–2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래서 우리가 받는 모든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축복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저 풍요롭고 건강하면 그것을 복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잘 섬기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풍요와 건강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이해 차원에서 설명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 경제적인 풍요를 약속하십니다.
신명기 7:13–14
13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14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두 번째 몸의 건강을 지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신명기 7:15
15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두 가지는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축복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장로 가이오에게 편지하면서 이러한 복을 받기를 간구합니다.
요한3서 2
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것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었습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민족이 있지만, 이스라엘은 특별히 구별된 민족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다워야 하고 또 하나님은 그렇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표현이 축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깨닫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고 우리를 향한 마음이세요.
하나님은 처음 사람을 창조하신 후 하신 말씀이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창세기 1:28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복주시기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고 마음입니다. 우리가 고통스럽게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예레미야애가 3:33
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우리 인생에 비록 고난과 아픔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심은 아닙니다.
민수기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 즉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을 축복하라고 하시면서 이 말씀을 주십니다.
민수기 6:24–26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이러한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곳에 모인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충만히 받으며 마음껏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2.하나님의 축복은 그분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할 때 누립니다.
1)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게명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은 전전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애씀과 노력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는 축복들은 대부분 순종을 통해 누리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자신의 사랑에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반응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입니다. 사랑하면 계명을 지킵니다.
요한1서 5:2–3
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출애굽기 20:6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명기 5:10
10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명기 7:9
9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여호수아 22:5
5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느혜미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느헤미야 1:5
5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할 때, 크고 두려우신 분이시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다니엘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다니엘 9:4
4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이렇게 여러 구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함께 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입니다. 사랑하기에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이라고 할 때는 십계명을 근간으로 한 하나님의 모든 뜻을 말합니다. 십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며 예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대리자인 부모를 공경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의 피조물인 사람을 존엄하게 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이웃의 재산까지도 귀하게 여깁니다. 저는 이번에 십계명을 공부하면서 열 가지 계명 안에 참으로 풍성한 진리가 담겨있음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십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분의 뜻만 알아도 이 땅에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천만번 고백해도 주일예배를 사모하고 정성껏 드리지 못하는 성도는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가장 먼저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을 것입니다. 상대를 감동시키기 위해 서프라이즈도 준비하고 그가 기뻐하는 일을 찾아 행할 것입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뜻에 순종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아내가 큰애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네가 엄마를 사랑하면 엄마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야?”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엄마를 무시하는 것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기쁨을 줍니다. 주일성수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짐이 됩니까? 아니면 기쁨을 줍니까? 헌금을 드리는 것이 짐이 됩니까? 아니면 기쁩니까?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명, 교사나 사역팀으로 봉사하는 것이 짐이 됩니까? 아니면 기쁩니까?
구약에서 사랑이라는 표현은 감정이 아닙니다. 상대에 대한 충성과 신실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은 그분의 계명에 대한 충성과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내 감정과 상황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신실해야 합니다.
2)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누립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자녀로서 누리는 많은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순종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했을 때는 전쟁에 패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가?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다.”
그러면서 순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다른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할 때 우리는 두렵습니다.
예수님을 산상수훈에서 이것을 넓은 길과 좁은 길로 표현했습니다.
마태복음 7:13–14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은 대부분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갑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로 갑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 길에 서 있을 때 안정감을 얻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가는 자들, 그들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의 길을 걸어갑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선택들을 합니다.
좁은 길로 가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살아보지도 않았고 또 대부분 이렇게 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 원하십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세상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자녀들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길 두려워 하는 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7:18
18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신명기 7:21
21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가나안민족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힘있고 권력있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니까 세상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돈에 굴복하고 힘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힘과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신명기 7:21
21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정말로 두려운 존재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두려운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인지를 모르니까 죄악된 세상의 힘과 권력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가정마다 보면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가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통점은 순종하는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큰 어려움 없이 평탄한 삶을 삽니다. 저는 삼남매중 막내입니다. 위로 누나 둘이 있어요. 그런데 보면, 하나님의 축복이 저를 통해 흘러감을 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복을 받았어요. 저는 제가 받은 이 복을 희수, 의성이, 형원이 모두 누리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바램이에요. 누가 받는가 하면 순종하는 자녀가 받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입니다. 그들이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에 받은 축복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에게로 흘러갔습니다. 이삭이 받은 복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 받았습니다. 야곱이 받은 축복은 12아들 중에 요셉에게로 흘러갔습니다. 요셉이 받은 축복은 므낫세가 아니라 에브라임에게로 흘러갔습니다. 므낫세가 형임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에브라임 머리에 오른손을 얹어 축복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모는 알아요. 여러분 알잖아요. 누가 하나님의 복받을 자녀인지. 결국 순종하는 자녀가 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을 진 복을 받기를 원하세요. 그 축복은 순종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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