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37.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신명기 11:8–28
8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9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10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13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14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15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16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17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18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20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21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의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과 같으리라
22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23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24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25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26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우리에게는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입니다. 축복의 길은 생명의 길이고 저주의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이 길을 믿음을 걸어가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탈하거나 포기하면 사망과 저주를 받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요청합니다. 이 길만이 생명의 길이며 축복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셨는지를 기억하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경외하고 섬기자고 합니다.
1.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8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는 7절에 언급된 “여호와께서 행하신 이 모든 큰 일을 말합니다” 그 내용이 2~7절까지입니다.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2-5절까지가 출애굽하여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절은 그 여정가운데 있었던 하나님의 심판 사건을 언급합니다. 구원사건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면 심판 사건은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지만 또한 공의로우셔서 죄에 대해 심판하신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언급된 사건은 민수기 16장에 기록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사건을 말합니다.
이들은 파당을 짖고 여론을 형성하여 지휘관 250명과 함께 모세를 거역합니다. 그들은 모세가 스스로 왕이 되려 하고 있고, 사적유익을 추구하고 있다며 모세의 리더쉽에 도전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이 거주하는 진영의 땅에 싱크홀을 내셔서 산채로 매장시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모세의 권위를 세워주셨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셨지만 하나님을 대적할 때 심판이 임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두 개의 상반된 사건,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심판 사건을 언급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러한 사건들을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경험한 실제적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너희를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광야를 지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입니다.
또한 너희가 체험한 것처럼, 하나님을 반역했을 때 무섭게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너희가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8절에 “그러므로”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한결같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주가 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할 때 심판하시는 두려운 분이십니다.
2.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길 원하시며 그 축복은 그의 명령을 지키는 자들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십계명의 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우리 사회는 간통죄를 폐지 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성적인 자기결정권과 사생활보호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상대방의 가정과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며 인생을 파탄 내기 때문에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성적인 자유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만 충족되며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를 벗어난 추구는 추잡하고 파괴적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존엄함이 파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의 행복과 아름다운 삶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주시는 축복에 대해 길게 서술합니다.
1) 강성해져서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신명기 11:8
8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가나안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강성하게 하사 가나안을 차지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살아가는 자들을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강합니다. 돈과 권력이 있어 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음에 강한 것입니다. 모세가 죽고 리더쉽을 이양받은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수아 1:9 (NKRV)
9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누가 가장 강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세상에서 강성하길 바랍니다. 세상은 강성함을 재력과 권력이라고 말합니다. 재력과 권력은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재력과 권력을 쥐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재력과 권력으로 움질일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앞서가고 승리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2)약속의 땅에서 풍족한 삶을 삽니다.
신명기 11:9
9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그러면서 모세는 가나안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합니다.
애굽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1:10–12
10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애굽은 어떤 곳입니까?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굽의 농경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농사는 주로 나일강 주변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들은 나일강의 물을 끌어다 쓰기 위해 농수로를 만들어 농지에다 물을 댔습니다. 이 관계사업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고 이스라엘의 주된 노역이었습니다. 굉장히 고되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반면 가나안은 어떻습니까?
신명기 11:11–12
11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우리나라의 천수답을 연상하시면 되는데요. 산의 비탈면에 계단식으로 밭을 만들어 포도, 무화과, 올리브 등의 농사를 합니다. 계단식 테라스의 아랫쪽에는 석회를 깔고, 그 위에 좋은 토양을 덮어서 하늘에서 비가 오면 빗물이 곧바로 땅 아래로 스며들어 가지 않고 오랫동안 빗물을 가두어둘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농사때마다 매일 같이 물을 대야하는 애굽의 수고로움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농업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만 적당할 때 오면 이만큼 좋은 방식도 없습니다.
그래서 14절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1:14
14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애굽은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 살아가는 곳이었지만 가나안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노예적삶이었지만 가나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는 은혜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의 구원 사건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노예적인 삶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의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애굽으로 상징되는 세상으로부터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상징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노예적인 삶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의 자유한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구원받기 전 우리의 상태는 노예였습니다. 사단의 노예였고 죄의 노예였습니다.
요한복음 8:34
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우리 삶을 죄가 끌고 다녔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유롭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죄가 끌고 다닙니다. 갈망하는 것이 죄이고 성취하는 방식도 죄입니다.
죄는 문화를 만들고 사회 구조를 만들어 인간을 가두고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일만 있고 안식이 없는 곳, 피라미드 구조를 만들고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경쟁하고 착취하는 곳, 사람의 가치를 생산력으로 평가하고 기계의 부속품 다루듯 대하는 곳, 애굽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가나안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입니다. 일과 안식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곳입니다. 노동이 즐거운 곳입니다.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온전히 안식할 수 있는 곳입니다. 생명의 존엄함을 알고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돌보는 곳입니다. 그 땅은 한마디로 풍족한 땅입니다. 애굽은 승자독식의 사회지만 가나안은 섬김과 나눔이 있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사회 그곳이 가나안, 즉 하나님 나라입니다.
구원은 애굽으로부터 가나안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순간, 이곳이 가나안,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구원을 영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구원은 실제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순종하며 그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자들은 풍족합니다. 가진 것이 많아 풍족한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편23편을 잘 아실 것입니다.
시편 23:1 (NKRV)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NIV)
1The Lord is my shepherd, I lack nothing.
시편 23:1 (ESV)
1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모든 번역이 좋지만 개인적으로 ESV번역이 좋습니다. 나는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결핍이 없는 상태,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게 되면 충만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마음을 채우면 이렇게 됩니다. 현재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한 상태가 됩니다.
3.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길 원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했을때는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 처럼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나안을 허락하셨는데, 그 땅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허락하셨는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애굽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명기 11:16–17 (NKRV)
16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굽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우상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삶의 가치와 방식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신명기 11:17
17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표현이 참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땅을 허락하셨고 축복을 예비하셨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멸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 이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며 비유가 시작됩니다.
임금이 아들을 잔치를 베풀었으니 얼마나 성대했을까요? 임금은 아마도 귀족들을 초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청한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합니다. 임금은 다른 종들을 보내 풍성한 잔치를 준비했으니 오라가 다시 청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밭일이 바쁘다고 가고, 어떤 이는 자기 사업으로 바쁘다며 거절합니다. 이에 임금이 길거리에 가서 만나는 대로 사람을 청해 오라고 합니다. 종들이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잔치에 손님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옵니다.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는 한 사람을 보고 말합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그가 아무말도 못하자 임금은 사환들에게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비유는 이렇게 결론집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복은 청함을 받은 자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삶의 태도나 자세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청함을 받았다면 그 나라에 합당한 삶의 태도와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안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은 자들이라면, 마땅히 예수님을 위해 살 것입니다. 그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몫이며 책임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분은 하나님이셨지만 바닷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몫이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몫입니다.
성대한 잔치에 초대한 것은 임금이지만 예복을 준비하는 것은 초대받은 자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지만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사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책임입니다.
4.하나님은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시고 선택하게 하십니다.
신명기 11:26–28
26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명령을 선택한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명령은 복종해야지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막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길은 강요된 길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사랑, 소망 이 모든 신앙의 길은 자발적인 헌신과 섬김이지 결코 강요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강요된 길에 기쁨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시켜서 하면 즐겁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서 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기뻐서 선택해야 그 길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을 제시 하시고, 우리에게 선택하게 하십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그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지, 내 의지와 욕망을 따를 것인지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의지와 욕망을 따르면 당장에는 유익한 것 같지만 평안도 기쁨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뜻 안에서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결코 잊지 말라고 이렇게 까지 당부하십니다.
신명기 11:18–20
18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20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너무나 중요하기에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해서라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여정중에 늘 선택의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당장 눈 앞에 이익을 따르지 마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멸망길로 인도합니다. 비록 손해보는 것 같고, 시간 낭비하는 것 같고, 내에 아무런 유익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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