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2-11-08 10:51

38. 택하신 곳에서 드리는 예배 (1)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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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38. 택하신 곳에 드리는 예배 (1)

 

신명기 12:1–12

1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2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3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4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5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8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9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여러분은 그동안 신명기 말씀을 배우시면서 어떤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까?

아마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시기에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2장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성경은 예배라고 말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며, 하나님을 경외함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예배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예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예배는 창조의 목적이며 구원의 목적입니다. 

신명기 12:5–7 

5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해야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시 반복됩니다. 

신명기 12:10–12 

10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1)예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출애굽 사명을 받습니다. 그는 애굽왕 바로를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출애굽기 5:3

3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바로는 거절했고 이후 모세는 바로에게 계속에서 동일한 요구를 합니다. “이 백성을 보내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받기를 원하신다.” 바로는 그럴 수 없다고 저항합니다. 제사를 지내려면 이곳에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타협안을 제시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애굽이 아닌 광야에서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8:25

25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출애굽기 8:27

27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목적은 그들을 통해 예배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2)예배는 또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해가 빛나는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의 빛을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2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사야 43:21 (NKRV)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 우리가 하나님 찬양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찬양을 하는 자들이 아니라 찬양을 받는 자가 되길 원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아니라 예배를 받는 자들이 되길 원했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구원하셔서 다시금 찬양의 자리에 세우십니다. 구원의 목적은 창조의 회복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읽었던 이사야 43:21절의 앞절 말씀이 이렇습니다. 

 

이사야 43:19–21 

19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새 일은 구원을 말합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신다는 것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광야의 물과 사막의 강을 마신다는 것은 구원의 은혜를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구원을 통해 이루실 창조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예배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신명기 12장은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우선순위와 최상위가치를 말합니다. 

그것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너희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은 결국 예배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2.예배는 내 안에 우상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신명기 12:2–3

2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3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상을 파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우상을 파멸해야 합니다. 

우리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우상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너무 사랑해서 경배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아닐 때 우상입니다. 어떤 이는 성공을, 어떤 이는 돈을, 어떤 이는 권력을, 어떤 이는 외모를, 어떤 이는 쾌락을, 어떤 이는 능력을, 어떤 이는 학위를, 어떤 이는 자녀를 경배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그 어떤 것도 우상입니다.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가장 많이 돈을 쓰는 것, 가장 많이 시간을 사용한 것, 그것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아닐 때 우상입니다. 

이러한 내 안의 우상들을 파멸해야만 참된 예배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두 마음을 갖고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성공을 함께 섬길 수 없고, 하나님과 권력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저도 한때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없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목회자가 이것을 고민한 듯 보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고지론이고, 기복신앙이고 번영신학입니다. 예수 잘 믿어서 세상에 성공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자는 것입니다. 말은 좋지만, 진실은 신앙을 수단 삼아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원 청취의 수단으로 삼을 때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며 심판자이시기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믿으면 잘돼야지. 그래야 믿지, 하나님 믿는 사람이 그렇게 계속 아프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난하게 사는데 나보고 하나님 믿으라고?”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십니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창조하셨기 때문이야.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셨기 때문이야. 

만일 당신이 하나님 믿지 않으면 창조주를 믿지 않은 죄와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은 모든 죗값을 받게 될 거야. 하나님은 사랑하시지만, 또한 공의로우셔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두려운 분이셔.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분께서 허락하신 구원의 길인 예수가 구원자임을 믿지 않으면 지옥 심판을 받게 돼. 

 

여러분, 가나안의 모든 종교는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람이 만들었어요. 자신들을 위해 만든 신입니다. 대부분 풍요와 안정을 보장하는 신이거든요. 이 땅에서 더욱 풍요롭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인간 스스로 만든 신입니다. 그러니 그 신들은 당연히 우리를 건강하게 해야 하고, 부유하게 해야 하고, 성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사람이 만들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세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 삶을 섭리하시기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즉 나를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있을 때 참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가 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요. 우리는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를 드리고, 나의 예물을 드리고, 나의 시간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를 축복하세요. 

 

그런데 우상숭배는 어떻습니까? 무언가를 받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다.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봉사를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소원하는 것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예배를 공로 삼아 하나님의 호의와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 삶에 목적인데 예배를 수단 삼아 내 소원을 성취하길 원합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파멸시키라는 것입니다.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마음의 변화를 말합니다. 마음은 인격의 중심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 인격의 중심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참된 예배는 시작됩니다. 그동안 내 마음의 중심에 내가 있었는데 그래서 하나님조차도 나를 위한 하나님이었는데, 이제 하나님을 마음에 중심에 두고 우리는 종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성경은 영적예배를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 몸을 드리는 예배, 즉 우리 자신이 제물되어 드리는 예배입니다. 너희 자신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합당한 제물, 거룩한 제물이 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거룩한 제물입니까?

첫 번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하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돈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세상의 삶의 방식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하십니다. 마음의 중심에 자기를 두는 자기 중심적인 마음에서 하나님 중심의 마음으로 변화하라는 것입니다. 네 삶의 주인을 하나님으로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소원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신 말씀하신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이 온전하다고 하신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적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를 위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마음의 중심에 여전히 내가 있고, 소원성취를 위해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그 예배에서 드리는 찬송과 기도 그리고 헌금 등, 모든 것은 결국 우상숭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안타깝고 두려운 일입니다. 내가 그동안 드렸던 수많은 예배가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입니다. 

 

마태복음 5:23–24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무슨말입니까? 형제와 화목하지 않은 상태에서 드려진 예물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 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사실 우리의 제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받으시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제물입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제물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4:5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그가 즉시 분노한 것으로 보아 이미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못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이지 우리의 제물이 아닙니다. 

반면, 예수님은 과부가 헌금함에 동전 두 개를 넣는 것을 보시면서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로 서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나”라는 우상을 제거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십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종의 자리에서 서서 왕 되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있습니다. 

 

3.참된 예배는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드려야 합니다. 

신명기 12:5

5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예배의 장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신명기 12:11 

11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신명기 12:13–14

13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신명기서 뿐만 아니라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이 택하신 곳의 중요성은 구약 전체를 통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 택한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창세기 22:2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절에서는 내게 일러 준 산이라고 말합니다. 3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갑니다. 4절에서 아브라함이 그곳을 멀리 바라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이 지정하신 특정한 장소가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22: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에 이릅니다. 

창세기 22:9

9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이후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단에 올리고 칼을 들어 잡으러 합니다. 이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단에서 내립니다. 주변을 보니 숫양이 수풀에 걸려있는 것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과 함께 그 숫양을 잡아 번제로 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22:14

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산이 어디입니까? 모리아산입니다. 2절에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산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후 하나님은 예배의 장소를 항상 지정하십니다. 본시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드려야 옳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예배의 장소, 실로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곳은 천막으로 지어졌기에 성막 또는 성소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하나님께 건물로 된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년에 인구조사를 한 것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전염병 재앙을 내립니다. 이때 다윗이 여부스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화목제사를 지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고 재앙이 그칩니다. 이때 다윗은 그곳에 하나님의 전을 지을 것을 계획합니다. 그러나 이루지 못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그곳에 성전을 짖게 됩니다. 

 

역대하 3 

1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이곳에 어디입니까? 예루살렘입니다.  

모리아 산. 즉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렸던 곳입니다. 이곳에 예루살렘 성전에 지어집니다. 이후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러한 성전제사는 신약시대까지 지속되었고, 유대인들은 성전이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곳이기에 지극히 거룩히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을 바라 보시며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세우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나중에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증거로 채택되어 십자가 형을 받게 된 이유가 됩니다. 

당시 성전모독은 신성모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성전은 하나님이 택하신 지극히 거룩한 곳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바라보이는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십니다. 이때 제자들은 이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세우겠다”는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요한복음 2:19–22

1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성전,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예배의 장소는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장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기 위해 예표로 모형으로 사용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말했던 여호와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것도 결국 하나님의 택하신 장소에서 하나님의 구원자가 준비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 구원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즉,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드려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장소에 대해 궁금해 하던 사마리사 여인에게, 

예배의 장소는 사마리아산도 아니고 모리아산의 예루살렘도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4:23–24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과 진리는 영이신 성령과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참된 예배는 반드시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려져야 됨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예배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 예배가 참되고 진실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예비하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허락하십니다. 

그 예배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의지하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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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 마음을 돌이키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30:1-20 2023.12.10
85 85. 새언약의 축복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29:1-9 2023.12.03
84 84. 순종할 때 복을 누린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28:1-14 2023.11.26
83 83. 복과 저주를 선포하라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27:11-26 2023.11.12
82 82. 말씀중심의 삶 영상보기 새창 심지형 신명기 27:1-10 2023.11.05
81 81.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26:16-19 20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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