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2-11-15 10:39

39. 택하신 곳에서 드리는 예배 (2)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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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39. 택하신 곳에서 드리는 예배 (2)

 

신명기 12:11–29 

11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13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15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16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17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20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언제나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21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너는 여호와께서 주신 소와 양을 잡아 네 각 성에서 네가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먹되 

22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 

23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 

24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 

25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26오직 네 성물과 서원물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라 

27네가 번제를 드릴 때에는 그 고기와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드릴 것이요 네 제물의 피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위에 붓고 그 고기는 먹을지니라 

28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택하신 곳에서 드리는 예배 두 번째 시간입니다. 신명기 강해로는 39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의 최우선순위, 최상위가치는 예배입니다. 그것은 창조의 목적이며 또한 구원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통해 예배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하나님의 영은 충만하게 임재하시며 하늘의 신령은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오늘은 예배에 있어 두 가지 측명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예배입니다. 두 번째는 공동체로 모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개인적 예배는 내 자신이 제물이 되어 삶에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공동체예배는 이렇게 교회로 모여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개인적예배와 공동체예배는 우리 삶을 견고하게 세우는 두 개의 기둥입니다. 어느한쪽도 소홀함없이 균형있게 드려질 때 우리 삶은 영적으로 풍성할 것입니다. 이제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1.개인적 차원의 예배입니다/ 나를 제물로 드리는 삶의 예배

개인적 차원의 예배는 이렇게 모여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념은 제물에 대한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 제물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 자신입니다.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 한분 한분이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제물로 받으십니다. 그래서 참된 예배는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설 때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구약의 제사를 철저하게 지켰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세요.  

마태복음 15:8

8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것은 참된 예배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명확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마음이라는 표현은 인격의 중심입니다. 나를 나되게 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붙들려 있을 때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예배당에서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찬양대와 함께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감동적인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도 그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으면 콘서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허름한 예배당에 변변한 악기도 없어 무반부로 찬양을 드리고, 또 서툴고 어설픈 설교로 말씀이 증거되어도, 그 마음이 하나님께 붙들린 성도들의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예배는 본질상 드리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제물이기에 내가 살아가는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됩니다.  

 

로마서 12장에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적예배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인데, 즉 우리가 제물인데, 그것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하십니다. 

로마서 12:1–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가 제물이기에 호흡하여 살아가는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됩니다. 

이렇듯 예배와 삶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한 주간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다가 주일이 되어 예배드리면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물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제물이 거룩해야 하는데, 제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것을 분별하여 살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에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비록 부족하지만 한 주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며 살던 성도가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비록 그가 회사에서 출근하라는 상사의 명령 때문에 회사에 나가 일을 하더라도 그는 돈벌이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가 제물로서 합당하기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예배는 형식의 문제도 장소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것은 제물의 문제이고 마음의 문제입니다. 제물인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로 서 있고 내 마음의 중심이 어떠한가 하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3:16

16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우리가 세상 속에서 선을 행하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자신이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제물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삶을 살았기에 그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하면 주일에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만을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는 먼저 개인적인 삶의 차원에서 우리가 제물이 되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죽음을 직감하고 말년에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4:6–8 

6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전제는 제물을 다 드리고 마지막에 포도주나 기름을 부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주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삶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믿음을 지키는 싸움이었고, 마라톤 경주와 같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내가 제물이 되어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삶이 예배임을 알았다면, 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서12장 1절의 말씀처럼,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인가?

나는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합당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세상의 것들에 의해 물들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 속에 더러운 것들을 담지 마십시오.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을 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입술에 저주와 불평과 원망을 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이 있다면 주일 아침 예배하러 오셨을 때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죄가 없는지 살펴보시고 예수님의 보혈 의지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물로 드려지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때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게 됩니다.

 

2.함께 모여 드리는 공동체 예배

내가 제물이 되어 드리는 삶의 예배는 자연스럽게 함께 모여 드리는 공동체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 최근에 코로나로 인해 공동체 예배가 약화되었습니다. 개인적 차원의 예배의 강조는 좋은데 그렇다고 해서 공동체 예배가 중요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배에 있어 공동체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신명기 12:12

12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이 말씀은 다시 반복됩니다. 

 

신명기 12:18–19 (NKRV)

18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함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함께”에는 자녀와 노비 그리고 레위인이 포함됩니다.  

1)“함께”는 먼저 가족을 말합니다. 

신명기 12:7

7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또 자녀들과 함께 예배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저희 교회가 자녀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작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가족이 함께 하나님께 드려지는 날입니다. 그래서 함께 앉으세요. 남편하고 싸웠어도 주일에는 함께 앉으세요. 

가족이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그런 날이 우리 삶에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불신가정에서 나를 구원하셨어요. 그 구원의 기쁨 때문에 자녀들도 믿음을 갖길 원했고 그렇게 기도하고 양육했는데 세례받고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우리 자녀가 또 믿음의 형제 또는 자매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또 자녀를 낳아서 유아세례를 받게 되었어요. 그렇게 나와 자녀 손주 세대가 신앙으로 이어져 함께 하나님 앞에 선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가족이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관심은 나를 넘어서 우리 가족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나를 포함한 가족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은 나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내 가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31

31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이 우리 가족에게 임하였기에 그 은혜에 반응하여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가족이 이렇게 주님 앞에 있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구원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 담긴 것입니다.

 

2)“함께”에는 노비가 포함되었습니다.

제사에 있어 노비를 언급한 것은, 하나님의 공동체는 평등의 공동체임을 의미합니다. 비록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세상은 구조적으로 갑과을의 관계가 성립될 수 밖에 없지만, 원래 창조의 질서는 평등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의 자리, 예배의 자리만큼은 평등하게 서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앞에 서는 것이기에 높고 낮음, 갑과 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고대사회에서 굉장히 혁신적인 명령입니다. 노예는 가축과 같이 소유물로 여겨지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간 하나님의 백성들은 평등한 공동체를 이뤄야 했습니다. 물론 구조적으로 노비제도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인 열등한 존재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렇듯 예배를 드림에 있어 노비를 소외시키지 말라는 것은 평등의 공동체가 되어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3)“함께”에는 레위인이 포함되었습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당시 레위인은 제사의 직무로 구별된 지파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기업이 없었습니다. 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경작하거나 수확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제사직무만을 담당했고 제사에 드려진 십일조로 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은 각 지파가 서로 의존된 관계, 즉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레위인 직무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예배는 너무나 중요했기에 그 직무에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오늘날 신학교가 필요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목사가 성도들과 구별되거나 더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예배 사역, 특히 설교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입니다. 생업을 하면서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설교 한편을 준비함에 있어 많은 공부와 묵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은 레위인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활적 필요를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3.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리는 예배

이렇듯 가족, 노비, 레위인과 함께 드리는 예배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요?

신명기 12:12 (NKRV)

12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기쁨의 잔치이고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12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 할 것이요” 예배는 축제입니다.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셔서 가나안의 축복된 삶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기쁨으로 드려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이 찬양을 통해 표현됩니다.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중에 천상의 예배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들의 찬양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곳에서 천사들과 24장로들이 이렇게 찬양합니다. 

요한계시록 4:11

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찬양이 5장으로 넘어가면 이렇게 확장됩니다. 

 

요한계시록 5:9–10 (NKRV)

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구원자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찬양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왜일까요? 성령님은 스스로 찬양받기 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돌리십니다. 이 모든 예배를 주도하는 일을 성령님께서 하십니다. 즉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일을 성령께서 그 배우에서 역사하십니다. 

 

요한계시록 4:2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즉 예배는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성령에 감동되어 창조주 하나님을 높이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이러한 예배를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개인적인 삶의 예배를 기뻐하시지만 동시에 그의 자녀들이 함께 모일 때 기뻐하시며 충만하게 임재하십니다.

 

사실 저는 예배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주일예배에 깊이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가끔 노회나 시찰회때 목사님들과 함께 모여 예배할때가 있습니다. 찬양이 시작될 때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감동을 받곤 합니다. 앉아계신 목사님들의 뒷모습만 보아도 울컥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동일한 사명을 감당하며 그속에서 동일한 희노애락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동의 경험을 하는 공동체 함께 모일 때 새로운 감동을 느낍니다. 

 

저는 성도들이 한주일 동안 세상과 싸워가며 얼마나 지치고 어려웠는지 짐작은 하지만 잘 알지는 못합니다.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싸우는지, 험악한 세상속에서 자녀들을 믿음으로 세우기 위해 어떠한 고민과 처철한 분투를 하시는지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서로를 아실 것입니다. 성도로서 동일한 공동의 경험들이 여러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 힘들지 않은 분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 주어진 삶의 무게로 버티며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함께 모일 때 교류되는 영적분위기가 있습니다. 그 속에서 찬양하는 서로를 바라보면 채워지는 영적충만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으로 채워지기도 하지만, 또한 형제자매의 교제를 통해 채워지기도 합니다. 

 

4.성도의 교제

이러한 성도의 교제 때문에 함께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본문을 볼까요?

신명기 12:17–19

17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제물을 각 성에서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어디서 먹습니까? 택하실 곳에서, 즉 예배의 장소에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모여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 후에 있는 성도의 교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수고한 얻은 수확물을 함께 먹으라는 것입니다. 즐거움으로 기쁨으로 먹으며 교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교회에서는 떡을 떼는 성찬으로 이어집니다. 

 

여러분, 공동체가 모여야 하는 것은 단지 예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성도의 교제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밥 잘먹는 모습 보면 그것만큼 흐믓한 것이 없습니다. 맛있는 것 서로 나누어 먹는 모습 보면 그것만큼 보람된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먹으며 기뻐할 때 흐믓해 하십니다. 서로를 섬기듯, 자신의 것을 서로를 위해 내놓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원리가 신약교회로 흘러, 그들은 음식을 나눌 뿐만 아니라 드려진 헌금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의 교제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배하라는 것은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각자 자기 집에서 예배하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택하신 장소에서 노비와 레위인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제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즐거움으로 나누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 이후에 성교의 교제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예배 후에 공동체 식사를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성도님들, 그냥 돌아가지 마시고 조별로 모이든, 친한 분들이 모이든, 성도의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주일이 어렵다면 주중이라도 모이셔셔 교제를 나누셔야 합니다. 함께 음식을 드시고 즐겁게 교제를 나누세요. 그 시간은 즐거워야 합니다. 감사한 것 나누시고 주신 은혜를 나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함께 모이길 원하세요, 서로를 섬기고 약한 성도를 세워주고 그렇게 하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주일의 공동체 예배가 성도의 기쁨의 교제로 연결될 때, 우리 삶은 영적으로 살아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삶이 풍성해 질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제물이 되어 드리는 삶의 예배와 주일에 함께 드리는 공동체 예배 그리고 이어지는 성도의 교제가 어우러져 우리 삶을 복되게 할 것입니다. 참된 예배자들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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