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2-12-20 13:01

43. 너는 마땅히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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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43. 너는 마땅히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신명기 14:22–29

22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28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명기 강해 43번째 시간으로 십일조 규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십일조가 무엇인가? 

십일조는 생산물이나 소득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월급을 받기 때문에 달마다 드리지만 구약의 이스라엘은 어떻게 드렸을까요?

신명기 14:22 

22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매년 농사지어 나온 수확물의 십 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목축업의 경우 소나 양을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게 하여 열 번째 것마다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레위기 27:32

32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2.십일조의 기원

십일조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4장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북방 4개 연합군을 물리치고 얻은 전리품의 10분의 1을 살렘 왕 멜기세댁에게 바친 것이 그 기원입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야곱의 십일조 서원입니다. 그는 형 에서를 피해 밧닷아람으로 도망가던 중 벧엘에서 무사 귀환을 간구하며 하나님께 십일조 서원을 한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십일조를 명하셨습니다. 

 

3.십일조의 의미

아브라함과 야곱의 경우를 보면 무엇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그리고 도우심에 대한 보답의 의미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가 승리하여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옵니다. 승리에 대한 축하 차원에서였습니다. 이때 그의 공식적인 축하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4:19–20

19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멜기세덱은 너의 승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듣자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전쟁의 승리가 군사력이나 전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멜기세덱에게 주었을까요? 

그는 살렘 왕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제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4:18 

18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헌신된 자입니다. 따라서 제사장에게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야곱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는 벧엘에서 십일조 서원을 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28:20–22 

20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해 급하게 달아나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는 절박한 상태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막막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자신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앞날을 인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벧엘의 돌을 세워 그 증거를 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서원합니다. 

 

두 경우를 보면 한 사람은 십일조를 드렸고, 한 사람은 십일조를 서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경우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면 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서원이었습니다. 

잘 보시면, 십일조는 먼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대한 인정입니다. 그 주권과 통치는 다스리과 보호 인도하심으로 나타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나의 주권자이기에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4. 왜 10분의 1일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권자이기에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또 10분의 1을 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0분의 2 또는 3은 아닐까요?

 

그것은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대근동에서 보편적인 세금의 세율이 10%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주권자들에게 소득의 10%를 드려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고대의 주종관계에서 주권자들은 세금을 받고 그에 합당한 보호와 통치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때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이러한 승리를 통해 하나님이 나의 주권자이시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야곱 또한 그동안은 나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고 살았지만, 이제부터 내 삶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다스려 주신다면 내가 마땅히 10분의 1을 나의 주권자께 드린다는 고백입니다. 

 

5.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일조를 명하신 이유

아브라함이나 야곱은 스스로 십일조를 약속하고 드렸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십일조를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실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9:5–6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자신의 나라와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주신 규례 중의 하나가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주권자가 되사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즉 십일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너희를 다스리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명하셨다는 것은 그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우신 것입니다.  

 

사회에 안전사고가 생길 때마다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가의 책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세금을 부과하고, 세금을 냅니다. 이것은 주권자와 정부의 책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명하신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그의 백성으로 삼아 통치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에는 너희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와 양 등 가축을 소유하고 목축업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서 땀 흘려 노동하며 소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광야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고살았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일하여 그 소출로 먹고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농사지은 결실 중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고, 가축 중 10번째는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때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주권자로 통치하셔서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생계를 책임지셨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이스라엘이 자발적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약속, 즉 너희 삶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 담긴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유튜브에 나오는 대부분의 강의를 보았는데 이 설명이 빠져있습니다. 대부분 십일조를 구약의 율법으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십일조는 드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의무로 만들어 성도들을 옭아매고 있다 등,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입니다. 그래서 보고 나면 은혜가 안됩니다. 

 

이것은 십일조를 우리 편에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명하신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십일조를 내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명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해서 십일조를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소나 양이 먹고 싶으셔서 십일조를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고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니 그에 대한 확증과 보답으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십일조는 단지 율법으로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 이전부터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백성들이 드렸습니다. 율법으로 주신 것은 그 약속을 분명하게 하신 것입니다. 

 

6.십일조를 율법으로 규정하신 이유

그렇다면 왜 굳이 법과 규례로 주신 것일까요?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신앙의 자유에 맡기면 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율법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행해야 할 최소한의 행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단지 살인하지 말라는 것에 있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살인은 하지 말라라는 의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이 허락한 가정을 소중히 여기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타인의 가정과 너의 가정을 깨뜨리는 간음은 하지 말라라 라는 소극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십일조를 생각해 봅시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대한 약속과 이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너희 가족의 삶을 지키고 보호할 것이다. 네게 일터를 주고 지혜와 건강을 주어 소득을 얻게 할 것이다. 너희의 모든 소득은 모두 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너희의 것이 아니라 내가 베푼 은혜이다. 그러니 너희는 그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10분의 1을 내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0분의 1은 소극적 차원 즉 최소한의 보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에 최대한의 보답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언가 법을 세울 때는 최소한의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이것마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겠다는 것입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다스림과 보호하심에 보답하시겠습니까?

 

법과 원칙은 대부분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주어집니다. 법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법은 의미가 없습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에게 살인하지 말라는 법은 의미가 없습니다. 십일조는 신앙이 좋은 분들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초보, 약한 분들을 위해 주신 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성도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최소한 10분의 1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고 그분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군에 가면 유격훈련 때 레펠(강하)훈련을 해요. 높은 곳에서 줄을 매고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헬기나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리기 위해 지상에서 하는 훈련입니다. 그 높이가 11m부터 시작합니다. 왜 11m인가? 사람이 가장 공포감을 느끼는 높이라고 합니다. 11m에서 뛰어내릴 수 있으면 그 이상에서도 뛰어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이와 비슷합니다. 십일조를 드릴 수 있을 때 그 이상의 것을 드릴 수 있습니다. 십일조 조차 못 하면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생활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난 추석에 오랜만에 어머니댁에 갔어요. 명절엔 아이들이 신나지요. 용돈을 받기 때문입니다. 희수가 받은 돈이 14만원이예요. 집에 와서 엄마가 말합니다. 

“희수야 용돈에서 10분1 그러니까 1만4천 원은 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리는 거야.” 

희수가 눈을 뚱그렇게 뜨고 말합니다. 

“아이 엄마, 내 돈인데 왜 헌금을 내” 

자기가 노력해서 받은 것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그 돈 다 가져가도 할 말이 없어야 해요.

만약 우리 아이가 이 훈련에서 실패하면 앞으로 헌금 생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십일조는 훈련이거든요. 초신자 때 훈련하지 않으면 신앙이 자라도 하지 않게 됩니다. 

 

신명기 8:17–18 

17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이 무엇입니까? 시내산 언약을 말합니다.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다스리고 인도하고 보호할 것이라는 언약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얻은 모든 소유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그들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일조가 아니라 자신의 집과 땅을 교회에 드렸어요. 

사도행전 4:33–35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이들은 십일조가 아니라 소유 전체를 공동체를 위해 드렸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있었던 일이라 우리에게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그 이상으로 드렸습니다. 

 

유튜브 보니까 대부분 십일조를 부정적으로 말하더라고요. 한국 목사님들이 폐기된 율법을 강요한다. 십일조는 교회가 재정관리가 수월하여서 강조한다. 등. 유럽이나 영미 국가에서 십일조는 의무가 아니다 그런 내용입니다. 

여러분, 목사님들이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이런 차원에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열정과 헌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럽과 영미권의 교회들이 무너지고 있지만 한국교회는 여전히 세계선교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지 않으니까 우리도 하지 말자고요? 아니요. 그들이 한국교회의 열정과 헌신을 배워야 합니다.

 

주일성수 하는 성도가 나머지 6일을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어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성도가 종일 기도할 수 있어요.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요.

이러한 것들을 다 율법이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는 분들은 과연, 하나님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 궁금합니다. 

 

부모 중에는 자녀에게 이런 요구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너희가 결혼하여 출가하면 매월 용돈으로 얼마를 보내라”

부모가 돈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이것을 통해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묵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해질까 염려해서입니다. 이런 요구는 대부분 효도하는 자녀에게 하지 않아요. 알아서 잘하거든요. 그렇지 않은 자녀들은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부모와의 관계는 멀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요구들은 대부분 이런 차원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묶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이 설교는 필요가 없어요. 대부분 잘하세요. 십일조를 드릴 뿐만 아니라 감사헌금으로 구제헌금으로 힘에 지나도록 드리세요. 

저는 유투브에서 십일조가 구약의 의무이니 폐기되었다고 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7. 십일조의 용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는 곳에 쓰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1)레위인입니다. 

신명기 14:27

27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민수기 18:26

26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레위인들은 땅(기업)을 분배받지 않고 11지파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들은 제사의 직무만을 감당했습니다. 이들은 십일조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도 십일조를 드렸는데 아론의 자손들인 제사장에게 드렸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9:13–14

13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따라서 오늘날 십일조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 된 사역자를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2)성전 내의 기구를 수리하고 잔치 준비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신명기 12:6–7 

6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신명기 14:23 

23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는 함께 예배드리고 이후 잔치를 했는데 이때 십일조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성전기물들을 수리하고 보수할 때 필요한 재정을 십일조를 통해 충당했다고 봅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교제와 연합을 위해 십일조가 사용되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교회의 운영을 위해 쓰여질 수 있음을 말합니다. 

 

3)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신명기 14:28–29

28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해마다 드리는 십일조뿐만 아니라 매 3년 십일조를 드렸는데, 이것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십일조는 배분적 정의, 즉 많이 거둔자가 적게 거둔자의 필요를 채우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섬겼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약한 자녀에게 흘러가듯, 하나님의 마음은 사회적 약자에게 흘러갑니다. 이 사회가 존속하는 한 사회적 약자들은 항상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먼저 교회 내의 약자들을 섬기며 나아가 이웃을 섬깁니다.

 

결론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삶을 주권자가 되사 다스리심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왕이 되사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실 것을 보장하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 십일조입니다. 옛 언약 아래 있던 구약의 성도들이 십일조를 드렸다면, 새 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그 이상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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