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44. 일곱 해에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신명기 15:12–18
12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13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14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15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
16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17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
18그가 여섯 해 동안에 품꾼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2019년 미국 최악의 입시비리 사건을 일으킨 윌리엄 릭 싱어의 판결이 얼마 후 결정된다고 합니다. 미연방수사국은 2011-2018년 사이 30여명의 학부모에게 자녀의 명문대 입학 대가 등으로 321억을 받은 혐의로 그를 기소했습니다. 함께 기소된 학부모들은 유명 배우, 의사, 금융사 최고경영자, 부동한회사 대표, 로펌 대표 등으로 화려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직 장관과 그의 교수 부인이 딸의 스펙을 허위로 조작해 고려대학교를 거쳐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이유는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그리고 결과의 정의를 주장한 정부의 고위층 인사가 일으킨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기회가 얼마나 평등하지 않은가를 보여주었고 그 과정이 얼마나 공정하지 못하며, 그 결과도 정의롭지 못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입시비리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왜 권력과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비리를 해서라도 자신의 자녀를 명문대학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떤 대학을 나왔냐가 그 사람의 계급 또는 계층을 결정하고, 그것이 결국 인생을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사회는 그러한 듯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계급적 인식 또는 계층적 인식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출신지역에 따라(강남이냐 강북이냐, 서울이냐 지방이냐), 직업에 따라 또 직급에 따라 나눕니다. 출신대학으로 나누고 또 그것도 학과에 따라 나눕니다. 사는 집이 아파트인지 주택인지에 따라 나누고, 또 분양아파트인지 임대아파트인지 따라 나눕니다.
사람을 클래스로 구분하여 그가 어느 클래스에 속하는지를 구분하고 그를 대합니다.
나보다 높은 클래스면 자신을 낮추고 낮은 클래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목회 사회도 클래스가 있더라고요. 대형교회 목사님들은 비슷한 규모의 목사님들과 어울립니다. 개척교회 목사님들은 개척교회 목사님들과 어울려요. 노회 때도 보면 큰 교회 목사님들의 발언이 힘을 갖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자녀가 높은 클래스에 속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듯 보입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력이 세습되어 지켜지기를 바라는 것 또한 당연한 듯 보입니다.
그러니 불법으로라도 자녀의 클래스를 만들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종을 대우하는 법입니다.
고대사회는 노예제가 있었습니다. 주인이 있고 노예가 있습니다. 노예 중에서도 직급이 높은 노예부터 직급이 낮은 노예가 있었습니다. 분명한 계급과 계층이 존재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이러한 계급사회에서 과연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떠한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신명기 15:12
12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고대사회에서 노예들은 주로 전쟁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되거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노예로 전락하는 경우, 또는 포획에 의해 노예가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주인의 아이들을 돌보고, 요리하고, 청소하는 것과 같은 가정적인 일을 했습니다. 몇몇은 정원사이거나 마구간에서 일하는 일꾼이었습니다. 당시 노예들은 주인의 소유로 매매되거나 교환하거나 빌려줄 수도 있었습니다. 노예가 자녀를 낳으면 그 또한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는 노예가 그 주인의 소유재산이라는 관념에서 생긴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일단 노예가 되면 거기에서 벗어날 희망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하나님은 노예들을 7년째 해방시키라고 명하십니다. 그가 빚이 얼마가 남았던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주인의 측면에서 보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받아야 빚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음에도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예의 입장에서는 굿뉴스이지만 주인의 입장에서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 제도는 우리의 사고로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이 마치 약자들의 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명령을 하셨을까요?
이 명령을 통해 하나님께서 뜻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1.이 명령, 즉 노예를 7년째 해방시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명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 것이 이 말씀을 이해함에 있어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녀들로 보십니다.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자들이기에게 그들의 생명을 해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극적 의미입니다. 적극적 의미는 생명을 사랑하되 사람의 생명을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존엄한 존재입니다. 시편8편의 말씀을 지난 주에 읽었는데요 이런 시구가 등장합니다.
시편 8:4–5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고 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로 그렇게 바라보십니다.
스바냐 3:17
17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마치 어미가 품에 안은 아이를 바라보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손주들은 더 이쁘다면서요. 내 자식이 낳은 자식이라 너무 이쁘고 귀하대요. 저는 육아 스트레스로 이러한 기쁨을 가끔만 느낍니다. 그러나 손주들 바라보시는 우리 성도님들 보면 입이 귀에 걸려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식을 바라보실 때의 그 마음, 손주들을 바라보실 때 그 마음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2.이 명령은 인간들이 만든 계급질서를 하나님이 허용은 하지지만, 하나님이 원치 않는 질서이며 비록 너희가 그 질서안에 있더라도 노예를 존중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계급구조는 죄인들이 만든 죄악된 질서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훼손됩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전쟁이나 채무로 인해 노예가 되기도 하고, 또 부모가 노예라는 이유로 노예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노예들은 인권이 없었습니다. 물건이나 가축으로 취급됩니다. 이러한 질서는 죄인들이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계급이나 계층으로 구분되어 취급당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것은 죄인들이 만든 악한 인식이며 질서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노예제 자체를 폐지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7년에 한번 노예를 해방하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완전하게 임하기 전까지 이러한 계급사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는 여전히 죄인들이 득세하고 그들이 만든 질서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출신과 학력 그리고 재산과 직업으로 클래스를 만들어 대우하는 일들은 계속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여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지속될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비록 세상의 질서는 그러하지만, 너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질서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 즉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자녀로 보는 그 마음으로 7년째 노에를 해방시키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사는 세상에 어떤 이는 주인이 되고 어떤 이는 노예가 되는 일들이 어쩔 수 없지만, 너희는 노예를 노예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가 6년 동안 일하는 동안에도 노예처럼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유물이나 물건처럼 다루지 말고 존엄한 사람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 법이 있음으로 주인들은 노예들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노예의 신분이지만 7년 후면 자유인이 되어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법이 얼마나 탁월한 법입니까?
당시 고대근동의 문화에서 이 법은 이해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시행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가능한 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면제년 제도를 살피면서, 우리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의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러기에 7년째에는 빚도 탕감해 주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한다면 손해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물질을 내 소유로 주장하지 못하듯이 내 집안에 노예를 내 소유로 주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로서 물질과 사람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이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신명기 15:13–14
13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14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사람들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년 후에 그들을 해방시킬 때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노예의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먼저 주인의 일을 할 때 자기 일처럼 해야 합니다. 노예로 고용되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일처럼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7년 후 해방될 때 주인으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인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힘들고 지치겠지만 7년 후에 해방되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생각이 열심히 일할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입니다.
3.이 법은 하나님의 백성은 계급제 안에 있더라도 계급을 초월하여 한 형제자매임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5:16–17
16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17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구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그같이 할지니라
종이 주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고대 노예제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7년째 해방하는 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노예가 자유인의 신분을 거부하고 주인 곁에 머물려고 하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그것은 주인이 노예를 인격적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소유물로 짐승처럼 대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존엄하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인이 노예를 형제로 대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노예가 주인을 형제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노예가 평생을 주인 곁에 머물고자 할 때 주인은 송곳을 가져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영구히 그 주인과 노예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행여 주변에서 왜 당신은 당신의 노예를 해방하지 않습니까? 라고 할 때 그 증거가 귀를 뚫은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노예가 원한 것이지 주인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이 법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주인과 노예라는 계급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질서를 초월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주인과 노예로, 회사측과 노동자로, 주인과 종업원으로 갑과 을의 관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의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지만, 하나님 나라 질서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사회적으로 주인과 노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형제와 자매로 있는 것입니다. 평등하고 존엄한 가치로 서로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장이니 부장이니 말단사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형제와 자매로 만나는 평등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신약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20–24 (NKRV)
20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고 합니다.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던 주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던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종이 자유인이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규정한 자유인의 신분이나 종의 신분이 너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인도 노예도, 사장도 말단 사원도, 주인도 종업원도 모두 주의 종이기 때문에 그러한 신분의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계급으로 계층으로 보는 시각은 완전히 세속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노동윤리를 발견합니다.
에베소서 6:5–9
5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너희가 노예 신분일지라도 성실하게 일하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상전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이라면 주인의 마음에 쏙 들도록 성실하게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일은 그리스도께서 맡겨주신 일이고 우리의 주인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곧 주님께서 맡겨주신 주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장님의 회사에서 사장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상전들은 어떻습니까? 위협을 그치라고 말합니다. 권위적으로 종들을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무슨 말입니까 너희도 종들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사람을 외로 취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다는 하나님은 외적인 계급이나 계층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입니다. 가정에서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하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룩합니다. 목사나 선교사들의 일만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일은 거룩합니다.
이러한 일을 수행할 때 세상이 규정한 주인, 노예, 회사 측, 노동자 측, 주인, 종업원 등의 계급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아닙니다.
비록 세상은 그럴지라도 너희는 그것을 초월하여 맡겨진 일을 주인 의식을 가지고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클래스로 구분하여 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들로 대해야 합니다. 그들이 비록 내 밑에 사람일지라도 귀하게 대하셔야 합니다. 내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성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붙여주신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일자리를 허락해 주었고 생계에 필요한 월급을 주는 사람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적인 사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대할 때 우리는 그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세속적 사고로 계급적 인식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노동을 천박한 것으로 여기면 우리 삶을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방학 때 섬김사역원에서 그룹홈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후원해 주셔서 풍성하게 아이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때 보령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김기숙집사님께서 샤브샤브로 저녁식사를 근사하게 대접해 주셨습니다. 또 감사했던 것은 종업원으로 일하는 자매분이 아이들을 섬기고 싶다면 헌금을 한 것입니다. 그 자매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큰돈을 헌금했고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자매가 그런 선한 마음을 가진 것이 김기숙집사님이 운영하는 식당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집사님과 교제하면서 종업원들은 얼마나 사랑하고 존중하는지를 보았습니다.
만일 그들인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간다면 아마 김집사님은 후히 주어 보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15:13–14
13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14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더 큰 복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신명기 15:18 (NKRV)
18그가 여섯 해 동안에 품꾼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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