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03-06 21:02

52. 중보자를 통해 누리는 하나님의 임재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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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52. 중보자를 통해 누리는 하나님의 임재

 

신명기 18:15–22 

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20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21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1.우리의 간절한 소망 "하나님의 임재"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웅장하고 화려한 장소가 아닙니다.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비록 초가삼간일지라도 하나님이 임하시면 하나님 나라입니다.

 

최근 저의 관심은 미국 켄터키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에즈버리대학교의 부흥소식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것보다, 현장에 다녀온 류응렬목사님을 통해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류응렬목사님은 총신대신대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시다 현재는 미국 워싱턴 장로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사역하고 계십니다. 저와는 인연은 분당에서 사역할 때 협동목사님으로 계셨습니다. 당시 참 신실하셨던 교수님이자 목사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0분 정도 되는 영상인데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PMxSPJLdec

 

에즈버리의 부흥이 저에게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그곳에 웅장한 악기도 없고, 유명한 찬양인도자도 설교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집회에 참여한 한 청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최근 몇 년간은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도요. 그런데 주님께서 쓴뿌리와 분노로부터 저를 자유케 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짐들로부터요. 심지어 어떤 부분들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경험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저에게 정말 깊은 치유의 경험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청년의 고백을 들으면서 이 시대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면, 또한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쓴 뿌리와 분노에 매인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도 하지만, 어둠의 권세에 짓눌린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과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찬양은 공허한 울림이 되었고 우리의 기도는 허공에 떠돌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2.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겸손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구했던 것은 세상의 것들이었습니다. 세상의 성공, 사람들의 인정, 건강, 노후의 안정된 삶, 자녀들의 대학 진학과 취업. 문제가 없는 평탄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도 선교, 구제, 다음 세대의 신앙교육, 투명한 재정구조 등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3년 동안의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갈 무렵,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21세기에 전쟁이라니,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어느덧 적응돼 갔습니다. 그러다 튀르키에와 시리아에 대지진이 일어나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역대하 7:13–16

13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14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15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16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하나님의 눈과 귀는 성전을 향해 있습니다. 단지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귀는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합니다. 

그들은 악할 길에서 떠나 겸손히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땅을 고치시겠다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백성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무리 수만 명이 모여, 찬양과 기도를 드려도 그 얼굴이 세상을 향하고 있다면, 그것은 공허한 울림과 외침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악한 길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향한 채 드리는 찬양과 기도는 악한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이 길에 서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전염병과 같은 재앙의 때에 악한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고 말입니다.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말입니다. 

세상을 향했던 얼굴을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에즈버리의 부흥은 그냥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닥터 홍 교수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수사역으로 평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풀타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고 이에 순종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회개하라. 예수님을 믿으십시오.”라는 간판을 달고 다녔습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에즈버리의 부흥을 위해 기도했던 다른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흥은 이렇게 기도하는 몇 사람들로부터 시작됩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시대의 소망은 이렇게 기도하는 분들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민족의 소망은 이렇게 기도하는 분들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의 소망은 이렇게 기도하는 분들에게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소망은 이렇게 기도하는 분들에게 있습니다. 

세상을 향했던 얼굴을 돌이켜 회개하고, 겸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은 그들에게 소망을 갖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의 영적임재를 가능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다 죄인이어서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그 자체가 심판입니다. 이것은 마치 빛이 임하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어둠은 빛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실 때 시내산에 임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산 아래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불과 구름으로 시내산에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양도 형상도 없으시기에 상징적인 방식으로 임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주로 불과 구름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처음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을 때도 하나님은 떨기나무에 불로 임재하셨습니다. 시내산에는 거대한 불로 임하셨습니다. 주위에 구름이 가득했고 천둥소리가 진동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리는 천둥소리를 뚫고 나올 만큼 장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요청합니다. 

신명기 18:16

16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하나님의 임재는 죄인들에게 두려움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시편 73:28 (NKRV)

28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그러나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는 두려움이 됩니다. 

창세기 3:9–10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은 범죄한 이후 자신의 죄를 자각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최상의 기쁨이었던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두려운 것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불로 임하신다는 것은 모든 어둠의 권세, 죄의 권능을 불사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불 가운데 계속해서 말씀하신다면 자신들은 태워져 죽게 될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요청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으니 당신이 중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신명기 5:27

27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이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임재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를 세워 말씀하셨고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달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중보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요구를 하나님께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의 백성들이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을 때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도 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있을 때 산 아래 있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애굽기 32:11–12 

11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출애굽기 32:14

14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이러한 중보자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도 없습니다. 중보자가 없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대낮의 태양을 30초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우리 입이다. 그러한 우리가 빛 되신 하나님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줄 중보자,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멈추게 할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구약에서는 모세를 비롯한 선지자들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선택하셨고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고 전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잠시뿐이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죄인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모세 또한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을 때, 중보자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알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모세는 분명 하나님께 참된 중보자를 세워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4. 참된 중보자는 누구인가?

우리에게는 참된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참된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만족하여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첫째, 참 인간이고 의로워야 합니다. 둘째 참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왜 중보자는 사람이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반드시 죄인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죗값을 다른 피조물을 통해 치루길 원치 않으십니다. 내 죗값은 내가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인이 죄인의 죗값을 치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죄인이 심판받는 것은 마땅한 것이지 이를 통해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살인범이 사형받았다고 해서 그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죗값을 치를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습니다.

 

또한 참된 중보자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모든 죄인의 죗값을 짊어지고 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얻으신 의와 생명을 죄인들에게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된 중보자는 참사람이며 참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참된 중보자를 구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와 같은 중보자를 세우겠다. 

신명기 18:15 

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신명기 18:18 

18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너와 같은 선지자”는 모세가 했던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리라는 것입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세와 같은 중보자, 참된 중보자를 기다렸습니다. 

 

세례요한은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그의 사역은 많은 당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고 죄에서 돌이키게 했습니다. 예루살렘 공회도 이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들은 몇 명의 대표를 요한에게 보냅니다. 그들이 궁금했던 것은 이것입니다. 

요한복음 1:21

21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그 선지자냐”라고 물은 것은 신명기에 기록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은 그의 길을 준비하는 것일 뿐, “그 선지자” 참된 중보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이 나옵니다. 성전에 있던 사람들이 이 사실에 놀라 베드로와 요한을 붙들어 솔로몬 행각에 세웁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능력으로 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3:20–22

20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치유하고 회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모세가 말한, 너희가 그토록 기다린 그 선지자, 참된 중보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중보자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5

5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는 참 사람이며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참 사람으로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참 하나님이셔서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와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예수를 믿으면 여러분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와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의 의가 아닙니다. 중보자 예수님의 의로 하나님 임재 앞으로 나갑니다. 

중보자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금도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모든 어둠의 권세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질병을 깨끗하게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고난 중에도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쓴 뿌리와 분노를 제거하고 우리 영혼을 회복시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그 얼굴빛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십시오.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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