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07-04 12:47

67.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joywoori
댓글 0

신명기 강해 67.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신명기 23:19–20 

19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20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이제 신명기는 이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반면 20절에 보면 “타국인에게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사회, 즉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사람에게서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성도들끼리는 이자를 받으면 안되는구나!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되는구나! 로 이해되어 집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다른 곳에서 이자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본문의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레위기 25:35–37 

35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36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37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형제 중에 가난하게 된 경우입니다. 이때 그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도와줍니까? 먼저 함께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잠자리를 주고 음식을 제공하여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한 것은 그에게 돈을 빌려준 것을 전제합니다. 돈을 왜 빌려주었겠습니까? 그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원금은 받을 수 있기만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자의 문제는 형제 즉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가까운 이웃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업 자금을 빌려주거나,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거나 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어 도무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경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가 일어설 수 있도록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고 이후 원금만을 받도록 했습니다. 

 

출애굽기 22:25–27 (NKRV)

25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6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는 경우입니다. 이때 채권자같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 돈을 빌려줄 때 담보물로 옷을 전당 잡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시 옷은 재산목록 두 번째에 해당할 만큼 귀했습니다. 그러면 해가 자기 전에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돈을 빌려줄 때 담보물을 전당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이자를 받지도 전당을 잡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18:5 (NKRV)

5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며

 

그러면서 정의와 공의의 행함을 언급하는데 여기에 이자에 대해 언급합니다.  

에스겔 18:7–8 (NKRV)

7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 주며 강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8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 주고, 변리를 위하여 꾸어주지 않고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여기서도 보면 그 대상이 주린 자, 벗은 자입니다. 즉 에스겔에서 말하는 정의롭고 공의로운 행위는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은 가난한 자들에게 이자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레위기, 출애굽기, 에스겔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말하는 이자는 예외 없이 가난한 자에게 빌려준 돈의 이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모든 이자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 빌려준 돈의 이자를 금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경적으로 이자가 무조건 금지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받는 이자를 금하고 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중세시대까지 이자를 악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카톨릭의 철학과 사상을 정립한 중세 신학자 토마스아퀴나스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명백한 죄로 여겼습니다. 그는 돈은 단순히 교환가치만 있으므로 돈을 빌려주고 더 많은 돈을 받는 행위를 돈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행위로 정죄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견해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자는 신령한 법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후에는 이자를 수용하는 쪽으로 바뀝니다. 

 

존 칼빈은 이러한 견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그는 이자는 본질적으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칼빈은 오늘 본문에 근거해서 선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방인과의 거래에서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허용했기 때문에 이자 제도 자체가 악한 것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겠죠. 이자가 악한 것이라면 이방인들에게도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했거든요. 이것은 이자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이자를 금지한 것은 이스라엘 사회의 가난한 자들에게 사랑과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이라고 해석합니다. 

칼빈은 이윤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보았던 중세 신학자들과 달리,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줘 이윤을 내서 가난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실천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달란트 비유에서 이윤의 개념을 긍정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이윤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면서 멀리 타국에 다녀오지 않습니까? 후에 종들과 결산할 때 자신의 자산으로 사업을 하여 남긴 종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십니다. 반면 잘 보관하였다가 원금을 돌려준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르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자산으로 성실하게 일하여 이윤을 내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칼빈은 돈에는 교환가치뿐 아니라 이용 가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돈의 주인이 자신의 이용 기회를 채무자에게 양도함으로써 채무자로부터 일정한 이용 가치를 받는 것은 형평성에 맞는 것으로서 윤리적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의 여윳돈을 빌려 사용해서 이윤을 남겨 돈을 빌려준 사람과 일부를 나누는 것은 자비롭고 공평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자율을 5%로 제시하는데, 이는 이자율이 너무 낮아 부자들의 지갑을 닫게 해서는 안되고 또 너무 높아 가난한 이들을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칼빈이 이자를 허용한 것은 상인들의 경제 활동에 제한돼 있었습니다. 그는 이자 제도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는 것이 더 좋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당장 생활비가 없어서 돈을 빌려야 할 경우에는 무조건 무이자로 돈을 빌려 주어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긴급한 도움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칼빈이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했고 또한 탁월하게 적용했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이자 자체를 죄악시 한 것이 아닙니다. 이자를 받지 않는 것은 잘 한 것이지만, 이자를 받았다고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돈을 누군가에게 빌려주어 이자를 받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물론 성도들은 돈을 빌려줄 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이율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의 양심의 문제입니다. 1%를 받던, 5%를 받던, 또는 받지 않던 그것은 각자의 신앙의 양심에 따라야 합니다. 돈을 빌린 사람 입장에서 “저 사람은 교인인데 이자를 받아?”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는 과도한 이자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각자의 양심에 적용할 수 있는 성경적인 원칙과 기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형제 중에 누군가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친 경우입니다. 그 어려움의 정도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가 나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때 나눔을 할지 돈을 빌려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1. 나눔

나눔은 아무런 댓 가없이 돈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구제금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나눔이라고 한 이유는 구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수도관을 통해 수돗물이 각 가정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웃의 어려움을 해결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이 흘러가는 통로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가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는 지속됩니다. 

 

가난에 대한 근본적인 구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사회가 아무리 평등을 외치고,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들을 펼치지만, 가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을 나눔으로 일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가난한 자들에게 물질이 흘러가게 하십니다. 이러한 나눔이 잘 이뤄질 때 그 공동체는 활기가 있고 건강합니다. 

초대 교회는 이러한 나눔이 활발했습니다. 

사도행전 4:32–35 (NKRV)

32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당시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부자들도 있었고 가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자인 사람들은 자신의 땅과 집을 팔아 교회에 헌금으로 드렸고 사도들을 이것을 가지고 각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정부의 역할 중에 중요한 것은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국민에게 세금을 받아 사회적 약자를 돕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세금을 좀 더 많이 내서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도와 양극화를 막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들이 많이 진보했습니다.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기는 하지만, 긴급한 경우 정부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가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기 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달랐습니다. 가난의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보았습니다. 개인적인 무능과 게으름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취약계층을 보호하기보다 그들의 가난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신약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가난의 문제를 교회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자기 재물을 조금도 자기의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 4:32 (NKRV)

32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자신의 물질을 하나님의 것으로 믿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이기 보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수익 전부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내가 애쓰고 노력한 것도 있지만 그럴 수 있는 건강과 지혜 그리고 기회를 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내 물질이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우리를 이것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따라서 내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나눔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헌금을 통해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그들이 헌금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8:2–3 (NKRV)

2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때 고린도 교회는 풍성한 연보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힘에 지나도록 자원함으로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8:13–15 (NKRV)

13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당시 고린도 교회가 드린 헌금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요한 사람들이 많이 드려 가난한 사람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도들 안에 경제적인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정부가 실현하려고 하는 분배적 정의가 이미 초대교회에서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면서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25–27 (NKRV)

25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당시 예루살렘 교회도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선교여행을 하면서 들린 마게보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헌금을 모아 바울에게 준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합니다. 이를 통해 비록 흩어진 교회였고, 또 서로 모르지만,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공동체에는 가난한 자들을 향한 적극적인 나눔들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나눔은 교회의 헌금을 통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2. 빌려줌

이 경우 돈을 돌려받을 것을 전제로 빌려주는 것입니다. 나눔이 아니라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해 내 돈을 빌려주는 경우입니다. 

목적은 어려움 당한 성도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서는데 있습니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때는 정확하게 돈을 빌려준 것이라고 말하고 그 증거를 남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도들끼리 무슨 차용증인가? 라고 하수 있겠지만 실제로 이렇게 해서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좋은 마음으로 빌려주기 때문에 차용증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도 간에 금전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좋으나, 만일 불가피할 경우 차용증을 써서 남겨 이후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때 원금만을 받을 것이지 아니면 이자를 받을 것인지는 빌려주는 사람 몫입니다. 빌려준 사람의 목적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것에 있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이자를 설정하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돈을 빌려준 목적입니다. 그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자를 통한 이윤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죄가 됩니다. 

 

또한 돈을 빌린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원금을 갚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눔이나 기부로 받은 것이 아닌 이상은 갚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빌려준 사람이 원금만을 갚으라고 할지라도 그 이상을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돈을 빌려준 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시편 15편에는 여호와의 장막에 머물 수 있는 자는 정직하게 행하고 공의를 실천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시편 15:1–2 (NKRV)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편 15:5 (NKRV)

5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이자를 받으려는 목적으로 돈을 꾸어준 것은 하나님 백성의 정의와 공의가 아니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돈을 빌려주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 목적이 형제가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지 이자를 받아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이 말한 것처럼 돈은 단지 교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용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이용하여 충분이 재산을 증식할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빌려준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합당한 이자를 받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합당한 이자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기준이 될 것입니다.(현재 3.5%) 

 

 

3.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신명기 23:20 (NKRV)

20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즉 가나안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이루는 성도들을 축복하여 더욱 그분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구절을 보면 대부분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사용한 경우입니다. 

신명기 14:29 (NKRV)

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레위인과 사회적 약자를 물질로 섬기면 이것에 대해 범사에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신명기 15:9–10 (NKRV)

9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면제년에 빚을 면제해 주어 가난한 형제를 도우면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은 모든 일에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신약성경을 볼까요?

디모데전서 6:18–19 (NKRV)

18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사도행전 20:35 (NKRV)

35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여러분! 주는 자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평생을 베풀며 살 수 있는 물질의 풍성함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신명기

목록
번호 제 목 이 름 성경구절 날짜
89 89.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33:29-34:7 2023.12.31
88 88. 모세의 노래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31:30-32:12 2023.12.24
87 87.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31:1-8 2023.12.17
86 86. 마음을 돌이키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30:1-20 2023.12.10
85 85. 새언약의 축복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29:1-9 2023.12.03
84 84. 순종할 때 복을 누린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28:1-14 2023.11.26
83 83. 복과 저주를 선포하라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27:11-26 2023.11.12
82 82. 말씀중심의 삶 영상보기 새창 심지형 신명기 27:1-10 2023.11.05
81 81.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신명기 26:16-19 2023.10.22
게시물 검색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