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07-20 13:39

69.긍휼을 베풀되 지나치지 말라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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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69. 긍휼을 베풀되 지나치지 말라

 

신명기 23:24–25 

24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25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하나님의 법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겨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희 자녀들은 차를 타면 반드시 카시트를 해야 합니다. 처음 카시트를 하게 했을 때 때에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저와 아내는 단호했습니다. 저는 부모로서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희 가정의 카시트 법은 제가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카시트에 묶여 있을 때 가장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정의, 긍휼, 선하심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법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정의도 담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말하고,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정의를 말합니다. 이 두 개의 논리를 함께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안에서 균형을 가지고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 마음대로 포도를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릇에는 담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가 손으로 이삭을 따먹어도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낫을 대어 추수하지는 말라고 하십니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말하고 또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은 이웃의 포도원이나 곡식밭에 들어가는 경우를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웃의 포도원이나 곡식밭에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당시 사회적 약자들 또는 여행객들이 먹을 음식이 없어 이웃의 과수원이나 밭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우리가 베푸는 긍휼의 한계를 지정하십니다. 어느 선까지만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들로서는 이웃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유재산권을 주셨고 이것에 충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사유재산권을 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는”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의 포도원이 있고 너의 포도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땅과 너의 땅의 한계가 분명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을 부여받았습니다.

신명기 19:14

14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먼저는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분배의 방식은 제비뽑기였습니다. 먼저 땅의 경계를 측량하여 정하고 나서 지파의 대표들이 나와 제를 뽑아 할당받았습니다. 이후 각 지파는 자신의 땅에서 각 세대에게 땅을 분배했는데 이때도 동일하게 땅을 측량하고 경계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각 세대주가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기업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각자의 기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사유재산권을 주었습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진보적인 기독교인들 가운데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셨습니다. 십계명에서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사유재산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신 재산을 강제로 침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유재산을 인정합니다. 사회의 모든 경제활동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내 것이 있고 네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사회 경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공산주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간을 너무 낭만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공동생산하고 공동 분배하면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이 해결되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기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기업은 단지 땅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산을 포함하여, 타고난 건강, 능력, 지혜 등을 포함합니다. 또한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 기회 등이 있습니다. 성경은 자녀들도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127:3 

3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허락받기도 하고 어떤 분은 50년, 어떤 분은 20년이란 시간을 부여받기도 합니다. 또 타고난 능력도 다릅니다. 어떤 분들은 공부를 잘하고 어떤 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건강하게 태어나고 어떤 분은 약하게 태어납니다. 어떤 분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분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 충성하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여받은 인생이라는 기업을 일구면서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충성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를 알고 있습니다.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며 종들을 부릅니다.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줍니다. 여기서도 주인이 각자에게 다른 달란트를 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업이 다릅니다. 그것은 주인의 마음입니다. 누구에게 얼마의 달란트를 줄 것인가, 누구에게 어느분량의 기업을 줄 것인가는 주인의 마음입니다. 

후에 주인이 돌아와 결산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맡은 자는 그것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맡은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25:21

21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를 맡은 자도 결산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25:24–25

24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는 그것을 그대로 보관하였다가 돌려주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기업을 일구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인을 향해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즉 완고하고 목이 곧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로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이라는 것은, 정의롭고 공평한 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정의롭다면 심는 대로 거두고 뿌린 데로 모아야 하는데 당신은 그런 분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다른 종들은 많은 달란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비해 자신이 받은 달란트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1달란트는 6천 드라크마입니다. 1드라크마가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 품삯을 10만 원이라고 보았을 때 6천일의 임금, 6억입니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일하지 않고 보관만 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기업과 비교하면서 불만이 쌓인 것입니다. 주인의 불공정한 처사에 분노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밭은 기업에 대한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 돈으로 충분히 사업하여 기업을 불릴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인이 그의 말과 태도에 화가 났습니다. 

 

마태복음 25:26

26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서 만약 내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공정한 주인이라면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았겠느냐고 하시고 그의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라에 주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5:30 (NKRV)

30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중에 하셨습니다.

즉 무슨 말입니까?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달란트는 예수님께서 그의 종인 우리에게 맡기신 기업입니다. 그 기업은 각자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업의 분량이 크냐 작으냐가 아닙니다. 맡기신 기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냐 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평가는 충성인 것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십니다. 반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불만과 불평이 가득했던 종 그리하여 자신의 기업을 일구지 않은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자”라고 책망하십니다.

 

고린도전서 4:2 (NKRV)

2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이러한 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신 기업이 다릅니다. 우리의 관심은 내가 받은 기업의 분량이 아닙니다. 타인의 기업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내가 받은 기업에 감사하며 충성하는 것입니다. 

 

2.하나님은 우리가 일군 기업의 열매를 사회적 약자와 나누길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웃이 너의 포도원이나 곡식밭에 들어가 포도 열매를 먹고, 곡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네가 일군 기업의 열매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누구와 나누라고 하십니까?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사유재산권보다 더 중요한 권리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생존권이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로 하면 생존권이 앞섭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것을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고 나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여러분, 이 중요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도 중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좀 하찮고 사소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라는 대의를 구하면서 일용할 양식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중 누구도 일용할 양식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서 일용할 양식을 함께 구하라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존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목사의 이중직 문제가 화두입니다. 저는 목사의 이중직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목회에 온전히 충성하기 위해서는 목사가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시는 이유는 일용할 양식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개척하고 나서 제 아내가 일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있어야 목회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감당해 줄 수 있으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는 일용할 양식을 채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생존권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일단 먹고 살아야 하나님 나라를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고 나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길게 하십니다. 

하늘의 새를 보아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지 않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얼마나 아름답지 않느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 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결론적으로 이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6:33 (NKRV)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시고 또 한편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채우시겠다고 하십니다. 한편에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시고, 한편에서는 내가 채우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말씀을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니 믿고 나가자”라는 무책임한 태도여서는 안 됩니다. 

또는 일용할 양식에 매여 주의 사명에 충성하지 못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제가 최근 만난 사모님은 남편이 교회 개척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일용할 양식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5년 전에도 똑같은 고민이었습니다.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존권, 즉 일용할 양식을 어떻게 채우실까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기업을 일구어 그 열매를 채우십니다. 그러나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은 불평등과 불공정 차별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을 도우라고 하십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방법은 나눔입니다. 우리의 기업을 그들과 나누게 하십니다. 즉 내 기업의 일부분은 사회적 약자의 몫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 내 소유의 땅에 들어와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우리 기업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에서 이런 비유를 하십니다. 이 비유도 종말에 대한 말씀 중에 하신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2:42–44 

42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주님께서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청지기가 무엇입니까? 주인의 것을 맡아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종들은 우리들입니다.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는 누구입니까? 종 중에서도 주인의 뜻을 잘 알아서 때를 따라 종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는 종입니다. 그가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입니다. 

 

그러한 종이 복이 있다고 하시고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긴다고 하십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주님의 지혜롭고 진실한 종이 되시길 원하시면 여러분의 물질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나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실 때 그 양식은 나의 일용할 양식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입니다. 나의 일용할 양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러면 이 기도를 하시면서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일용할 양식이 없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도를 진정으로 드리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나는 일용할 양식이 있으니 나의 내일의 양식을 오늘의 양식이 없어 주린 자들과 나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기도를 잘못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나의 기업의 열매를 일용할 양식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과 나누라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 기업의 땅에 들어와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포도와 곡식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가 나누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들이 마음껏 내 땅에 들어와 먹을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 그들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방식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구걸하고 돕는 식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 많으니 나누는 것이 마땅하다는 자세여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의 비유는 이렇게 결론 맺습니다.

누가복음 12:48

48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은 성도에게는 그만큼의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적게 받은 자에게는 적게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것은 물질만은 아닙니다. 내가 가진 지식을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돈을 받지 않고 과외를 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참 귀한 나눔입니다. 물고기를 주는 것도 귀하지만 물고기 잡는 방식을 가르쳐주는 것도 지혜입니다. 인생의 좋은 멘토가 되어주는 것도 나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제, 즉 코이노니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나누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계속해서 축복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4:29 

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시편 37:25–26 

25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3. 우리의 나눔에는 지혜가 필요하고 한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그러나”라는 문구입니다. 

신명기 23:24–25 

24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25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그러나”는 어떤 의미입니까? 이렇게 해도 좋다. 그러나 경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배불리 먹을 수는 있다. 그러나 수확하여 가져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곡식을 손으로 따서 먹어도 된다. 그러나 낫으로 추수하여 가져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포도원이나 곡식 주인의 재산에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이러한 귀한 나눔에는 지혜가 필요하고 경계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베푸는 사랑과 긍휼에는 지혜와 경계선가 필요함을 말합니다. 어려운 이웃들이 도움을 청할 때도 어느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선이 무엇입니까? 

나누는 사람에게 있어서 부담되는 선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돕고자 할 때 여러분의 경제적 여건에서 부담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을 한번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려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에서 부담을 주는 선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동양철학의 기본 개념 중에 “중용”이 있습니다.  

“중용(中庸)”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

나에게 맡는 중용을 찾는 것이 지혜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우려 할 때 “중용”은 무엇인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중용”은 무엇인가? 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기업은 우리의 소유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청지기로서 맡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뿐입니다. 내 인생 전체가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이 기업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속에는 사회적 약자들의 몫이 있습니다.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도하시면서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나를 위해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이웃의 어려움을 돌아 볼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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