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08-29 14:11

73.성경적 재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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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73. 성경적 재판에 대하여

 

신명기 25:1-3 

1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2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앞에서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3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하나님은 재판은 반드시 공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힘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죄 선고를 받아서는 안 되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다고 해서 죄를 뒤집어씌워도 안 된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재판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법조인도 아닌데 이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법조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재판할 때가 많습니다. 재판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선악을 분별해야 할 때가 많고, 직장이나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이 선한지 악한지를 판단해야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재판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17 (NKRV)

17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재판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은 재판은 본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즉 재판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과 악을 판단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여론을 형성하고 “이것은 선입니다”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이것은 악입니다”라고 주장해도 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절대 권력자가 선과 악을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선과 악을 인간 스스로 판단할 때 그것이 죄입니다. 인간의 죄의 시작은 선악의 판단 기준을 스스로 정하기 시작할 때부터였습니다. 그 결과 세상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 국가와 정부와 법원에서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라고 주장합니다.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세계적 추세입니다. 여기에는 교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 영국 등 교회의 여러 교단도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목회자를 정죄하고 추방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 안에도 선과 악의 기준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 스스로 결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도 이에 편승하여 성경의 말씀을 왜곡 해석하여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의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재판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근거로 해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재판을 공의롭게 한다는 것은 법에 따른 판단을 의미합니다. 법치주의입니다. 모든 사람은 법으로 판단을 받는 것입니다. 그 법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법이 하나님의 법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런 사회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할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사안의 옮고 그름을 판단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법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죄의 시작은 하나님의 법을 무너뜨리고 인간 스스로 법의 집행자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에덴동산 중앙의 선악과는 하나님의 법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선악과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살 때 에덴의 자유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단은 인간을 유혹합니다. 너희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어 선과 악을 스스로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즉 선과 악의 판단의 주체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5 (NKRV)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여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처럼 되는 일이라고 속삭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된다는 사단의 속삭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는 단지 금단의 열매 하나를 따먹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의지와 결단이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법에 매여 사는 인생이 아니라, 선과 악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법에서 떠났습니다. 인간 스스로 선과 악을 규정하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사회는 죄악으로 인해 비참해졌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무차별한 살인사건을 보십시오. 대부분 자신이 악을 심판하겠다고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선과 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무서운 일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재판을 공정하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재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선악과를 심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재판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떠한 사안을 판단할 때 이것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모든 논쟁과 토론의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그랬다더라”가 아닙니다. “내 생각에는 이렇다”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가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 삶의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경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마음과 뜻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동성애가 죄입니까 아닙니까?라는 판단은 쉽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이 둘을 하나가 되게 하사 가족으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악입니다. 사형제도가 선입니까 악입니까 라고 할 때도 성경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가장 상위가치로 두기 때문에 인간생명을 상해하는 것은 사형으로 처벌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흉악범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이 또한 성경은 명확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는 선과 악을 명확히 분별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많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사안을 어떻게 보실까를 따져보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편의대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는 잘못된 것입니다. 너는 너대로 맞고 나는 나대로 맞는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만큼은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 성경의 권위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말씀을 끝내고 나서 결론적으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7:24–27 (NKRV)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삶을 세운 사람들만이 견고합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시고 그 권위에 온전히 복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관계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반드시 흔들리고 넘어집니다. 교회의 프로그램이나 모임이 신앙의 중심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넘어집니다. 그 무너짐이 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위에 삶을 세워가시는 분들은 흔들릴 수는 있지만 넘어지지 않습니다. 금새 회복되어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우리 삶의 선과 악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흔들림 없는 견고한 신앙의 집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2.공의로 재판하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9:15 (NKRV)

15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사람을 보고 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그의 편을 들지 말고, 권세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3 (NKRV)

3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간혹 법조인이 되려는 사람 중에 세상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법조인이 되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기특하지만, 법조인은 누구의 편에 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재판은 공의로 하는 것이지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이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재판은 반드시 공정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편에 섰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부한 자와 권력자들에게 항거한 것으로 보기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잘 보시면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편에 서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대할 때 공정했습니다.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않았지만 무조건 그들의 편에 서신 것은 아닙니다. 권력자 앞에서 위축되지 않았지만, 또한 적대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바라보셨고 항상 긍휼한 마음으로 다가가셨습니다. 

예를 들어 삭개오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삭개오는 여리고 성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여리고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세금액수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당시 세리장들은 유대인들에게 과한 세금을 부과하고 그것을 로마에 상납하고 일부를 착복하여 부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사회에서 세리장은 매국노 취급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삭개오를 찾아가십니다. 예수를 보기 위해 돌감람나무에 위에 오른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삭새오야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누구의 집에 머물겠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표현입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분노했습니다. 매국노 삭개오의 죄를 지적하고 심판하지 않고 친밀하게 대하는 모습에 분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준비한 만찬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삭개오의 부자 친구들이 참석했음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7 (NKRV)

7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으로 취급했지만 예수님은 그의 영혼의 가난함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고 판단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합니다. 재판에서 차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공정한 재판은 사실 여부를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법률 용어로 하면 ‘증거재판주의’입니다. 그 사람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여부를 증거를 가지고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의 말만 듣고 쉽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카더라 뉴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그러더라”, “그런 소문이 있더라”, “그런 의혹이 있더라”라는 것으로 쉽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카더라 뉴스’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에 판단해야 합니다. 사실로 확인되기 전까지 어떤 판단도 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뉴질랜드에 살 때 오클랜드 시내에 위치한 한 교회 주보를 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 주보의 맨 앞에 교회 비전을 써놓지 않습니까? 이런 식이죠.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교회가 되자’ 그런데 그 교회의 비전이 이것입니다. 1) 남의 말 금지 2) 정장 복장 예배 참석 3) 말씀대로 살아보자, 손해 볼지라도 살아보자. 

 

이게 벌써 20년 전에 본 것인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무슨 교회 비전이 남의 말 금지냐?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민 사회를 겪어 보니까 남의 말 하는 것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교회가 분열되고 그렇습니다. 대부분 카더라 뉴스입니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거예요. 그리고 아니면 말고 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더라 뉴스에 희생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카더라 뉴스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이 모였을 때 남의 말도 하지 마세요. 우리 교회도 남의 말 금지입니다. 성경적 재판에서 카더라는 없습니다. 반드시 사실 여부, 증거여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힘있는 사람의 말이라고 무조건 믿어서는 안됩니다. 나와 친한 사람의 말이라고 믿어서도 안 됩니다. 성도들은 팔이 안으로 굽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진실이라고 주장해도 그 주장이 사실에 근거하는지를 따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판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였지만 그들은 비웃었습니다. 사실 여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7:24 (NKRV)

24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죄에 대해서는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5:2 (NKRV)

2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앞에서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죄를 처벌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죄를 덮어주거나 없던 일로 하는 하는 것은 성경적인지 않습니다. ‘용서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라는 개념도 죄를 인정한 자에게 베풀어지는 것이지 죄를 인정하지 않는데 무조건 용서하거나,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7:3–4 (NKRV)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용서는 회개한 자, 즉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자에게 베풀어집니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신명기서의 내용이 이것을 확인해 줍니다. 중한죄는 중벌로 약한 죄는 태형으로 처벌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처벌을 명하셨을까요? 작은 죄들은 말로 경고하는 수준에서 끝나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벌을 명하신 것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는 다스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억압되고 억제되는 방식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죄를 처벌하지 않게 되면 죄를 짓는 것에 무뎌져 반복해서 짖게 되고 그 강도는 더해질 것입니다. 아이들 키워보면 압니다. 혼나고 큰 아이들이 잘삽니다. 오냐오냐 키운 자식들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애들 기죽이지 않는다고 처벌하지 않게 되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잠언 13:24 (NKRV)

24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22:15 (NKRV)

15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언 23:13–14 (NKRV)

13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성경은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죄는 다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식당에서 뛰어다니면 불러다 야단쳐야지요. 그 자리에는 편안하게 외식하려고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자식 기죽이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편안함을 헤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내가 아이들 체벌하면서 이런 말 하더라구요. “희수아, 네가 오줌 마려우면 참잖아. 똥 마려워도 참잖아. 만일 참지 않고 싸게 되면 어떻게 돼? 더럽잖아. 피해를 주잖아. 마찬가지야. 더러운 말은 참아야 해, 더러운 행동은 참아야 해. 오줌을 참고 똥을 참듯이 참아야 해. 그런데 네가 참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가 때리는 거야.”

 

죄는 억압하고 억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처벌하는 것입니다. 처벌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40대까지만 때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재판장 앞에서 처벌받게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감정적으로 처벌하거나 과도한 처벌을 받는 것은 사람의 존엄성을 헤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함으로 과도한 처벌을 받지 않게 했습니다. 

 

처벌의 목적은 교정이며 예방입니다. 또한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공정한 처벌은 필요합니다. 

 

저는 최근 무차별적으로 시민을 폭행하고 살인했던 청년들의 경우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죄성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서 죄짓는 것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처벌이 무서워서라도 죄를 다스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벌은 단호하고 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권한을 재판관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을 처벌권을 집행할 권한을 사람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부모, 학교의 교사, 국가의 정부에게 처벌권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권한을 가진 사람의 권위가 강하고 살아있을 때 그 사회는 안전합니다. 이런 면에서 가정의 부모, 학교의 교사 그리고 국가의 공권력은 강해야 하고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그 사회가 안정됩니다. 학생의 인권, 아이들의 인권, 시민의 인권을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사회의 질서가 무너져 흉악범죄는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적 재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죄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죄인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갈등과 충돌은 불가피합니다. 교회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허물이 큽니다. 실수도 잦지만, 고의적인 잘못도 자주 행합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회를 정화시키시고 위해 재판이라는 제도를 주셨습니다. 재판이 공의롭게 시행되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재판이 공의롭게 시행되는 교회가 거룩합니다. 재판이 공의롭게 시행되는 가정이 성숙합니다. 그러기 위해 내 판단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잘못이 있을 때 인정하고 응당한 처벌을 받고 다시는 동일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답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눈 성경적 재판의 원리를 마음에 새기시고 우리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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