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85. 새 언약의 축복
신명기 29:1–9
1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2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4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5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7너희가 이 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8그 땅을 차지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9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29장과 30장은 모세의 세 번째 설교입니다. 신명기는 크게 모세의 세 번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가 1:1-4:43 절까지입니다. 두 번째 설교는 4:44-28:28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설교는 29~30장입니다. 31~34장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후계를 계승하는 내용입니다.
반복된 말씀
말씀의 주제는 단순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여 너희에게 준비된 축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단순합니다. 간략합니다.
이 말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신명기 29장까지 오면서 열 번 이상은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또다시 순종에 대해 당부하십니다.
신명기 29:9
9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같은 말을 자꾸 하는 것을 잔소리라고 합니다. 잔소리 좋아하는 사람이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마치 잔소리하는 듯 보입니다. 왜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 것일까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데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건강을 위해 음식조절하고 운동하는 것 모르는 분 없습니다. 이것만 잘해도 건강하고 장수할 것입니다. 병원에 가도 똑같은 말 합니다. 음식 조절하세요. 운동하셔야 합니다. 잔소리처럼 반복하지 않습니까? TV에서 하는 모든 건강 프로그램을 보면 결론은 같습니다. 음식조절과 운동입니다. 모르는 분이 없습니다. 방송, 인터넷, 책을 통해 각종 건강정보를 듣고 공부해도 결론은 같습니다. 음식조절과 운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종을 강조하시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닙니다. 그러나 안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해야만 하나님이 주신 형통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그 인생이 망합니다. 그래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순종하면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되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당뇨병 환자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식이요법과 건강을 통해 혈당을 조절하면 일상적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운동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거나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환자를 협박하거나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이와 같습니다. 너희는 지금 죄로 인해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영적으로 건강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돌봄 속에서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영적으로 병든 상태로 있으면 네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과 마음이 병들어 저주받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예비한 가나안 땅에서의 모든 축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말씀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설득의 말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잘 보시면 하나님은 명령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설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상관은 하급자에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 상관의 명령에 대해 항의 혹은 거부하게 되면 이는 항명죄로 전시의 경우 사형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명령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당연히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시면 명령하지 않습니다. 표현은 분명한 명령입니다. 이렇게 명하노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설득하고 계십니다. 신명기 전체가 어쩌면 하나님의 설득이기도 합니다. 그냥 명령만 하면 이렇게 34장까지 기록될 필요가 없습니다. 십계명을 비롯한 613가지의 ‘하라’, ‘하지 말라’의 명령만을 써 주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설득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읽은 2~8절을 보면 설득입니다.
어떤 내용인가 하면, 너희가 그동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고 듣고 체험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형통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신명기 29:2–3
2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출애굽 하여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너희와 동행하셨고 큰 시험, 이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대린 10가지 재앙을 말합니다. 이적과 기사는 홍해를 가르신 기적을 시작으로 하여 매일 만나로 먹이신 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일 등을 말합니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습니다.
또한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29:7–8
7너희가 이 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8그 땅을 차지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이러한 과거의 사건뿐만 아니라, 현재 너희의 모습을 보아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돌보심이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29:5
5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가 지금 입고 있는 옷, 신발을 보라는 것입니다. 낡아지지 않았고 헤어지지 해어지지 않았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옷이 지금처럼 좋은 재질이 아니었습니다. 신발도 가죽으로 만든 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옷이 낡아지지 않도록, 신발이 해어지지 않도록 보존하신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너희를 돌보심이 확실하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설득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보게 됩니다. 너희의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너희를 어떻게 돌보시고 인도하셨는가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존귀히 대하시는 하나님
왜 하나님은 이렇게 설득하시는 것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대상으로 여기시는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 말씀이 언약으로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 29:1
1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언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삼는 방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실 때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세상에 많은 민족이 있지만 그 가운데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십니다. 이스라엘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인 사랑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언약은 두 인격 대상자가 서로에 대해서 신실할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언약조항들을 세우고 이것에 신실하면 복을 누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 언약은 처음에 시내산에서 맺어졌습니다. 이것을 시내산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출애굽 2세대들과 모압땅에서 맺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모압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언약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9:13
13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여러분이 언약을 이해하려면 오늘날 결혼식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결혼식이 언약식입니다. 결혼과 결혼식은 다르지요. 결혼은 남녀 두 사람이 구청에 혼인신고하고 살면 결혼입니다. 그러나 결혼식을 왜 하는 것입니까? 남녀 두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서약하는 것입니다. 어떤 서약입니까?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부요할 때나 가난할 때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함께 하고 사랑할 것을 서약하는 것입니다. 목사 앞에서 서약했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증인으로 두고 서약한 것입니다. 이 서약에 충실하게 될 때 그 가정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서약을 깨게 되면 불행합니다. 모든 서약에는 복과 저주가 따르는 것입니다.
이로써 전혀 관계없던 두 사람이 결혼을 통해 한 가정이 됩니다.
입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약을 통해 남이었던 아이가 친자녀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기 백성 삼으실 때 언약을 맺으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종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신부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 그들의 남편이 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아내는 어떤 아내였는가 하면, 더럽고 추악한 삶을 살았던 창녀와 같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기품 있는 왕이 추악한 창녀와 결혼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만큼 사랑한 것입니다. 사랑할 만해서가 아닙니다. 왜 사랑했는지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왕은 그 신부를 귀하게 여깁니다. 존중합니다. 창녀였다고 해서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왕비로서의 품위와 실력을 갖추기 위해 이것 저것을 명합니다. 그러나 명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랑하는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명령할 수 없지요. 그래서 명령으로 표현은 하지만 그를 설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억지로 끌고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종이지 신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이 아닌 자녀로 신부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부터 이 땅에 내려오는 장면을 기록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2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이 신부가 누구입니까? 성도들입니다.
요한계시록 21:9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누구라고요? 성도들입니다.
여러분과 저입니다. 우리의 남편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은 신부들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언약을 맺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최후의 만찬석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22:20
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떡을 떼어 주시면서 내 몸이라고 하시고 또 포도주를 나누시면서 내 피로 세우는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약이라고 했으니, 너희를 내 자녀, 나의 신부로 삼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제자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떡과 잔에 참여하는 모든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떡과 잔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우리 죄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는 모든 자를 말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통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시고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십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죄사함이 최종 목적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그리스도와 연합’이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복입니다.
이것은 이미 구 약 때부터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62:2–5
2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5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헵시바는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뜻이고 쁄라는 신부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새언약을 통해서입니다.
시내산 언약이나 모압언약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속죄 제사 제도를 통해 죄를 처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흠없는 소나 양을 자기 죄를 대신하여 드림으로 짐승의 핏값으로 죄를 처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 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짐승을 드려야 우리 죄의 문제가 해결될까요? 짐승의 살과 피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 다시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를 통해 깨닫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니 구약 전체를 통해 깨닫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문제는 결국 죄의 문제인데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시적 속죄의식으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율법을 주셨지만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본성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한계성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신명기서를 통해 내 백성, 내 자녀, 내 신부 답게 살아라고 하시지만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십니다.
신명기 31:16
16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불가능성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범죄할 때 비록 진노하시지만 또 한편에서는 긍휼히 여기십니다. 불쌍히 여기십니다. 죄를 범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의 옛언약이 아닌 새언약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이 새언약은 옛언약의 모든 한계성을 극복하고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예레미야 31:31–34
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새 언약을 통해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전해질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라’고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약속이 성취된 것이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으면 여러분의 죄가 영단번에 사해집니다. 그것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자라에서 죄 값을 치루셨음으로 그것을 믿는 모든 자들의 죄는 영단번에 사해집니다. 여러분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말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시기에 그 분 안에서 사함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를 자신의 신부로 삼으십니다. 죄로 물든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의로운 옷을 입히십니다.
스가랴가 본 계시입니다.
스가랴 3:3–5
3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이렇게 정결한 신부의 옷은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의의 옷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헵시바요 뿔라. 나의 기쁨이요 나의 신부라고 부르십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를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아가서는 그 사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가 2:10
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명령하지 않습니다.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함께 가자고 우리를 초청합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 우리의 구원자께서 만유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그래서 새언약의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순종합니다. 저주가 무섭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자를 신부로 삼으신 그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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