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9. 광야에서 붙들어야 할 두 가지
히브리서 4:12–16 (NKRV)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1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오늘 본문은 성경을 강조할 때 주로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을 히브리서 문맥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문맥의 흐름에 맞지 않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4장은 안식의 땅에 들어가면 믿음과 순종이 요구된다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것도 중요하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못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처처럼, 세례를 받고 신앙의 출발을 한 우리가 광야 같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안식에 들어가려면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1 (NKRV)
11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음을 지키는 싸움을 해야 하고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다’라고 하십니다. 위의 내용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신앙의 여정을 시작한 우리가 광야 같은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믿음의 시련과 환난이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믿음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뜻은 모세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히브리서 4:2 (NKRV)
2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그들은 누구입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복음’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니’. ‘우리’는 일차적으로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고, 2차로 이 말씀을 읽는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어떻게 복음을 받았습니까? 복음 전하는 자들을 통해 받았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기록된 성경을 통해 받았습니다.
광야의 성도들은 안식의 땅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모세를 통해 받았습니다. 그들이 그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를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안식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습니다.
히브리서 4:6–7 (NKRV)
6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 광야의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듯이,
7절의 ‘그의 음성’ 누구의 음성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다고요? 성경을 통해. 즉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너희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1 (NKRV)
11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어서,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라고 말씀합니다.
안식을 향해 광야를 살아가는 너희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속성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 4:12 (NKRV)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는 1-4장까지 오면서 구약성경을 자주 인용합니다. 인용된 구절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4:7 (NKRV)
7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시편95;7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시편에 기록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이 다른 책들과 다른 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신비한 책입니다. 어떤 책은 한 번 읽고 덮는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두세 번 읽어야 이해되는 책들도 있습니다. <어린 왕자>와 같은 책은 중학교 때 읽었을 때와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때 이해하는 수준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수십 번 수백 번 읽지는 않습니다. 성경책은 수십, 수백 번 읽어도 늘 새롭습니다. 저는 새해부터 사무엘상을 읽고 있는데, 처음 발견하는 말씀도 있고 새롭게 이해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처럼, 장대한 분량도 아닌, 66권의 성경이 늘 새로운 은혜로 다가옵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기록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음성을 듣는 정당한 방법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 음성을 듣기 위해 신비한 체험을 기대하는 것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대학교 때 영적인 갈급함으로 인해 태백에 있는 예수원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목요일 저녁에 은사집회가 있었습니다. 둥글게 모여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으면 은사를 받은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손을 얹어 기도하며 예언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일어나 손을 들고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예언의 말씀을 주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제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제 어깨에 손을 얹고 해주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님과 함께 하십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제가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영적 갈급함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갈급해 할 때는 대부분 삶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진학을 앞두고, 취업을 앞두고, 사업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한 음성으로 지도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이 사람이 맞는지를 묻습니다. 어느 대학을 지원해야 하는지를 묻고, 이 사업을 시작해도 되는지를 묻습니다. 귀한 일입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는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음성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기 전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께 이끌려 광야로 내몰려 가십니다. 그곳에서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입니다. 배고픈 예수님에게 갈급한 것은 음식이었습니다. 마귀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광명한 천사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을 걱정하고 위로하며 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니,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고 기운을 차리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과연 그래도 되는지 안 되는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마태복음 4:4 (NKRV)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기록되었으되’, 어디 기록되어 있습니까? 신명기 8:3절입니다. 이미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떡을 돌로 만들어 먹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은, 목적을 위해 수단이나 과정에 편법, 불법을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어릴 적부터 읽고 묵상한 말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십니다.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편법, 불법을 통해 내 삶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분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려라.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천사들이 보호할 것이라’라고 합니다. 마귀도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에 대해 시험해 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보호하신다는 말씀을 지키시는지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과 신앙은 다릅니다. 산에서 미끄러워 떨어지면서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세요’하는 것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가 여기서 뛰어내릴 테니 나를 붙들어 주나 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4:7 (NKRV)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신명기 7:17절에 기록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해도 되냐고 묻지 않습니다.
이미 묵상하고 암송한 말씀을 통해 대적합니다.
세 번째 시험은, 높은 산으로 데려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때도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태복음 4:10 (NKRV)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신명기 6:13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그 말씀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시험받은 장소는 광야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 시험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은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광야 시험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광야입니다. 이 광야로 누가 내모셨습니까? 성령님입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한 분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을 광야로 내몬 분은 성령님입니다.
마태복음 4:1 (NKRV)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우리도 성령님께서 광야의 삶으로 내모십니다. 광야는 시험의 연속입니다. 공중 권세 잡은 마귀가 우리를 유혹합니다. 목적을 위해 편법과 불의에 타협하라고, 네 삶을 하나님이 붙드시는지 시험해 보라고, 공중 권세 잡은 자 복종하여 권력을 잡으라고 시험합니다.
예수님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모든 시험을 능히 대적하시고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분의 능력으로 능히 이기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사단의 권세는 물러갑니다. 그러나 이 광야 시험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 시험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너희도 광야 같은 인생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 말씀으로 승리하라는 것을 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시 히브리서로 돌아와 봅시다.
히브리서 4:12 (NKRV)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활력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도다도 예리합니다. 마치 의사 손에 들린 메스처럼 우리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해부하고 통찰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지, 내 만족과 유익을 위한 일인지, 내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그렇게 합니다.
히브리서 4:13 (NKRV)
13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지으신 것은,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숨겨진 목적과 의도가 완전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든 시험의 상황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말씀 앞에 서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을 향해 가는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은 날 선 검이어서 사단의 모든 계략에 맞서는 무기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 보면,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이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정의의 가슴막이,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그리고 성령의 검입니다. 다른 것은 방어용인데 성령의 검만 공격용 무기입니다. 성령의 검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6:17 (NKRV)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올 한 해 우리를, 광야를 지나는 우리에게 시험과 환난은 있을 것이고 마귀의 공격 또한 계속될 것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암송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삶의 길을 밝히고 인도하며 승리하게 할 것입니다.
두 번째, 광야를 지나는 우리는 믿는 도리, 즉 신앙고백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4:14 (NKRV)
1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여기서 ‘믿는 도리’ ‘(호모로기아)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말합니다.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서 4:14 (NKSV)
14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늘에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지킵시다.
1장, 2장에 언급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창조주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주권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을 붙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등입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신앙고백은 이단들을 대항하기 위해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교육 특히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교회는 신앙 고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여부를 고백으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마태복음 16:16 (NKRV)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18 (NKRV)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신학은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기독론으로 분류했습니다.
신론은 하나님에 대한 교리, 구원론은 성령님에 대한 교리, 기독론은 예수님에 대한 교리입니다. 이 교리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빌립보서의 이 말씀을 초대교회 성도들이 했던 신앙고백이라고 봅니다.
빌립보서 2:5–11 (NKRV)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도신경은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매주 주일에 고백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 믿음의 요약이기 때문입니다. 10개의 신앙고백은 죽을 때까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우리의 믿는 바입니다. 사도신경은 기독론, 즉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중심입니다.
어떻게 고백합니까?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말합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임을 말합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역사적 사실임을 말합니다.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음을 말합니다.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이제 곧 재림하셔서 살아있는 우리를 완전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고, 믿지 않는 자들과 악한 영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론, 즉 예수님에 대한 교리의 핵심입니다. 이 도리를 굳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을 굳게 붙잡는 것은, 신앙고백의 대상인 예수님을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곳에 영으로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는 이곳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제가 하는 설교를 듣고 계십니다.
광야를 지나는 성도들은, 두 가지를 붙들고 안식의 땅까지 가야 합니다.
하나는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이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는 신앙고백입니다. 신앙고백의 대상인 예수님입니다. 지금도 살아서 우리 삶을 붙드시는 예수님을 신뢰하고 붙드시길 바랍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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