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1. 말씀하시는 하나님
히브리서 1:1–3 (NKRV)
1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오늘부터 히브리서 말씀을 강해하겠습니다.
배경
히브리서는 핍박받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기독교는 시작부터 핍박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을 때, 성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로마, 에베소, 갈라디아 등으로 흩어져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핍박은 예루살렘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박해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종교적 이유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메시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처형당해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형으로 죽은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었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랫동안 지켜온 율법과 성전제사를 더 이상 수행하지 않고 예수가 부활한 날을 기념하여 성찬을 하고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신분과 계급을 초월해 서로가 형제, 자매라 불렀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근친상간한다는 이상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또한 성찬식을 거행하며, 이것은 ‘예수님의 살입니다. 예수님의 피입니다.’라는 것을 오해하여 인육을 먹는 불법 집단으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적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정치적 이유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고 주님이라 고백하며 숭배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거부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주님이라 고백했던 것입니다. 황제가 주관하는 우상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한 것과 같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탄압은 1~4세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네로의 박해는 유명합니다. 그는 로마 대화재의 방화범을 기독교인의 소행으로 몰아갔고, 들끓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로마 시내를 밝히는 횃불로 태웠고, 원형경기장의 사잣밥이 되게 했습니다. 네로는 로마인들의 분노를 그리스도인들에게 풀게 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었습니다. 신앙을 지키는 것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상황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저자는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신자들의 상황은 히브리서 곳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2–34 (NKRV)
32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비방과 환난을 받았습니다.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한 것도 처벌을 면치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11:35–37 (NKRV)
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심한 고문, 조롱, 채찍질, 돌로 치는 것, 톱으로 켜는 것, 칼로 죽임을 당하는 것 등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을 지키는 것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이러한 상황에 있었다면 신앙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히브리서를 통해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을까요? 그 중심 주제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것입니다. 너희가 믿는 예수님이 이런 분이시며 그분을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 (NKRV)
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은 핍박과 고난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의 무게는 늘 버겁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힘겹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의 위로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자녀들이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현실은 여전히 두렵고 절망적입니다. 무엇이 절망 가운데 있는 나를 소망으로 이끌어 주겠습니까? 그 누가 캄캄한 동굴에 갇혀 있는 나에게 빛을 비추어 주겠습니까? 히브리서는 그 해답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믿고 신뢰하게 될 때, 그 모든 절망적 현실에서 벗어나 담대하고 당당해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히브리서 11:38 (NKRV)
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그들은 참혹한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고백하며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나를 죽인다 해도 죽음을 통하여 더욱 더 큰 승리를 거두리라. 펠리시타스(104년, 일곱 아들과 함께 순교)
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게만 된다면 화형이나 십자가나 사나운 짐승의 공격도 참고 견딜 것입니다. 이그나티우스 (111년, 사자에게 뜯어 먹힘)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반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습니다. 폴리캅 (156년, 화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문을 당하는 것보다 더 귀중한 일이 없습니다. 저스틴 마터 (165년, 참수형)
이러한 배경지식을 머리에 담고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히브리서 1:1 (NKRV)
1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1.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로 시작합니다. 오래전부터 하나님은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진술이지만 이 진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어떤 에너지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빅뱅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언어를 주셨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언어가 있습니다. 언어는 말씀의 일부분입니다. 하나님은 교제의 수단으로 언어를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게 하셨습니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언어만이 말씀이라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언어는 말씀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창조하신 사람들과 교제하며 소통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에게 말씀하길 원하십니다. 누구에게 말하고 싶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와 말씀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맺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면서, 어떤 원리와 질서로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이며 우리에게 다가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뜻 안에서 살길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언어를 주셔서 우리의 뜻을 전달하게도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생각을 다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 입술을 열어 언어를 통해 하나님께 우리의 뜻을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것은, 초월주이시며 전능하신 분임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인격적이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초월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와 말씀하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는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쉼이 없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우주만물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깃들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무한광대한 우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우주보다 크신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자연의 광대함과 아름다움을 보며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도 자연의 광대함과 아름다움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우리 심령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에 살 때 새해 뜨는 해를 보러 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북섬 끝인 케이프링가에 도착해 차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늘을 바라본 순간 땅에 주저앉았습니다. 별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남태평양을 바라보는 절벽 위에 있었기 때문에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평선 위에도 있어서 온통 별천지였습니다. 그때의 경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내가 서 있는 지구가 우주의 먼지처럼 여겨졌습니다. 그 먼지와 같은 지구에 먼지만도 못한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한 나를 하나님은 바라보시고 사랑하시는구나, 깨닫고 감격했습니다.
꽃 한송이만 보아도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분이구나, 하나님은 완벽한 질서와 조화 가운데 계신 분이구나, 그런 하나님이 내 삶도 아름답게 하시는구나 깨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자연으로 가야 합니다. 인간이 세운 도시 문명이 아니라, 산으로 바다로 들로 가십시오. 그곳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공부시킨다고 학원으로만 보내면 안 됩니다. 자연으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야 합니다. 자연 속에 깃든 하나님의 질서, 이치, 조화, 아름다움을 배워야 합니다.
암 환자가 산에서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도 자연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생명력이 몸의 조화가 깨진 우리를 바로잡아 줍니다. 우리를 치유하는 약의 원료가 자연에서 온 것은 자연 속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8편은 자연 속에 임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시편 8:1 (NKRV)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편 8:3–4 (NKRV)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두 번째,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자연을 통해 하시는 말씀은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분명하게 말씀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기에 어둠인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소멸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식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죄인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는 모세였습니다. 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신명기 18:16 (NKRV)
16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모세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큰 불가운데 임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계속해서 선지자들 택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담아 주셨습니다.
구약 39권중에 선지서만 17권입니다. 그들은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꿈을 통해 받기도 하고, 환상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직접 음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떤 선지자는 희미하게 보았고, 어떤 선지자는 선명하게 구체적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같은 경우를 보면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들었는데, 예수님을 직접 본 것처럼 그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고 세밀했습니다.
이사야 53:3 (NKRV)
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에스겔은 환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환상은 꿈과는 다릅니다. 현실과 구분이 안될 만큼 실체적입니다. 또, 한번 체험하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에스겔이 그랬습니다. 그가 본 마른 뼈의 환상은 어떻습니까?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즐비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마른 뼈가 붙고 살이 붙고 근육이 붙어 군대가 되지 않습니까? 에스겔은 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현실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말씀들은 모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자신이 본 꿈과 환상,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록하였습니다. 모세의 경우는 특별했습니다. 그는 첫 번째 선지자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들과 인간이 어떻게 해서 타락했는지, 에덴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고, 노아시대 죄악이 관영하여 물로 심판하신 일 등. 당시 전설이나 신화로 파편화된 이야기들의 실제 역사를 알려 주시고 기록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알려 주셨는지 모르지만, 모세는 인류의 시작과 타락의 과정을 하나님에게서 들었고, 또는 보았고,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창세기입니다.
이렇게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말씀이 구약성경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이 기록되기 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구약성경이었습니다. 성경을 벗어나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만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기록되어 정경으로 검증된 것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자연계시,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특별계시, 구원계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계시만으로는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에스겔의 환상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니엘이 본 하늘로부터 내려온 인자는 누구인지, 이사야 선지자가 본 고난 받는 메시야는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 39권의 하나님 말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2 (NKRV)
2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구약의 모든 말씀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2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이라는 것은, 옛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를 열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 날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시대가 끝나고 신약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와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 (NKRV)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구약시대에는 자신의 말씀을 선지자에게 담아 전달하게 하셨다면, 신약시대에는 아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시대의 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의 3중직이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바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전에 이것을 예언하셨습니다.
호렙산에서 모세가 ‘하나님 내가 너무 두려워서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8:18 (NKRV)
18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선지자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유대인들은 약속하신 선지자를 기대했습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세례요한의 사역을 보면서 혹시 세레요한이 약속하신 그 선지자인가 라며 묻기도 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21 (NKRV)
21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6:14 (NKRV)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셨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요한복음 8:28 (NKRV)
28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전했습니다. 스스로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 형벌까지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들은 구약의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 성취된 것을 보았습니다. 선지자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성취의 여부로 판가름 됩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모든 일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기록한 모든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이를 통해 구약성경이 하나님 말씀임을 입증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것인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로 지으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7:14 (NKRV)
14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우리는 이 말씀이 성취됨을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메시야는 어떤가요?
이사야 53:5 (NKRV)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이 또한 성취됨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이는 구약성경이 하나님 말씀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관념적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우리에게, 각자가 주관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실제적이고 인격적인 분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온전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한 이들을 통해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선택받았고, 3년의 사역 기간 함께하며 예수님을 통해 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이 하신 일들도 곁에서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만났습니다. 이들을 우리는 사도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의 중요한 역할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체험한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록이 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입니다. 그리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몸을 가지신 예수님과는 다르게 영이십니다. 인격이시지만 또한 영으로 계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온 세상가운데 전파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그 생생한 성령님의 역사를 또한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을 비롯한 나머지 서신서들입니다.
히브리서 또한 성령님의 특별한 임재 가운데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책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진 것은 15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 전에 이 땅은 흑암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성경이 전해지고 이 땅에 빛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이 임했습니다. 세계 역사 가운데 기적과 같은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은 열방 가운데 영적인 제사장 나라가 되었습니다.
유럽과 미국 호주 캐나다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잃어버리고 교회가 무너지고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 시대에 마지막 보루가 되어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붙들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장로교, 감리교, 오순절, 성공회, 구세군 등 모든 교단이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 가운데 한국 성도들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의 생명력으로 세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그 말씀을 붙드십시오.
흔들리는 세상 속에, 무너지고 부서지는 세월 속에 영원한 진리인 말씀만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자연을 통해 그리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말씀 안에서 영적인 생명력을 얻으시고 담대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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