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5-01-31 10:58

11. 완전한데로 나갈지니라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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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 11. 완전한데로 나갈지니라

 

히브리서 5:11–6:12 (NKRV)

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사역을 언급하다 잠시 멈춥니다. 이유는 수신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5:11 (NKRV)

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먼저 이들의 영적상태를 진단합니다. 12-14절의 내용입니다. 영적으로 어리다는 것입니다. 

이어 처방을 6:1-3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하며 완전함을 목표로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지 경고합니다. 6:4-8입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영적으로 성장하자고 권면합니다. 6:9-12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1. 진단/ 영적으로 미성숙하면 하나님의 깊은 말씀을 경험할 수 없다

먼저 영적 상태에 대한 진단입니다. 

성경은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 영적으로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5:13 (NKRV)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이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5:12 (NKRV)

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신앙이 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단단한 식물 즉 좀 더 깊은 차원의 말씀을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인의 영적 상태를 구분합니다. 어린아이, 청년, 어른입니다. 

요한1서 2:13–14 (NKRV)

13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어린아이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1–2 (NKRV)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바울이 말하는 어린 아이의 신앙은 세상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버리지 못한 성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신령한 자들과 육신에 속한 자들을 구분합니다. 신령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님이 거하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신령한 자들은 신자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불신자입니다. 바울은 신자 가운데 불신자와 같은 자들이 있음을 경고합니다. 어린아이 신앙은 바로 이러한 신앙인을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3:3 (NKRV)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제 국민일보를 보니까 무속인으로 있다가 회심한 부산 제2영도교회 심선미집사님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무속인 시절 찾아온 손님의 40%가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청년이나 장로 권사 사모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성도지만 세상적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4 (NKRV)

4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고린도교회가 속한 지중해 주변 도시들은 그리스 철학이 유행했습니다. 철학자들은 지역을 순회하며 장터나 극장에서 자신의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에 깨달음과 감동을 한 사람들은 스승을 선택해 그 가르침을 따르며 살았던 것입니다. 나는 소크라테스파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파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가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바울에게 성경을 배운 사람은 바울파라고 했고, 베드로에게 성경을 배운 사람들은 베드로파, 아볼로에게 배운 사람들은 아볼로파고 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의견 충돌을 일으키게 되면, 갈등을 넘어 분쟁으로 간 것입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인 이것은 불신자들과 같은 모습이며 어린아이의 신앙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듯 어린아이 신앙은 불신자들의 삶의 방식, 문화,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처음 신앙에 입문한 사람들은 당연히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안타까워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5:12 (NKRV)

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세례를 받고 10년 20년 지났음에도, 세상의 삶의 방식과 문화 그리고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면 영적으로 어린 것입니다. 

 

2.경고/ 영적 미성숙함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6:4–6 (NKRV)

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음에도 여전히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강하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욕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3장에서는 이들이 교회의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고린도전서 3:3 (NKRV)

3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예수님을 욕보이는 삶을 살고 있고, 공동체적으로 시기와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3.원인/ 영적 미성숙의 원인은 말씀데로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도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듣는 것에 둔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5:11 (NKRV)

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듣는 것에 둔하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에 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에 둔한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립니다. 씨는 길가, 돌밭, 가시덤불 밭,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가 와서 먹었습니다.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오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랐습니다. 가시덤불 밭에 떨어진 씨는 처음엔 자라다가 가시덤불에 기운이 막혀 죽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풀어주셨습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들었지만, 악한 자가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간 것입니다. 돌밭은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았지만,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 곧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그 말씀이 자라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 상태입니다.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네가 상태 모두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열매 맺지 못한 밭의 공통점은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데 있습니다. 말씀이 뿌리 내리지 못했다는 것은 말씀이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감동도 있고, 기쁨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3:20 (NKRV)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문제는 그 말씀이 자기 삶과 분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깨달음의 감동도 있고 정서적으로 설득은 되었을지 모르지만, 현실의 삶에 그 말씀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3:22 (NKRV)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 속에서 말씀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내 현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들을 때 둔한 상태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히브리서 5:13 (NKRV)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씀대로 살아본 경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말씀, 은혜로운 말씀으로 듣기는 했으나, 현실의 삶에 적용해 보려고 분투해 보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좋은 말씀을 많이 들어도 성장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말씀을 검색하고 많이 듣는 것이, 신앙 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그리고 졸업해서도 영어를 공부하지만 실제로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로 말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외우고 공부했는데, 실력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영어 실력은 영어를 말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늡니다. 신앙은 말씀대로 살아봐야 성장합니다. 

 

신앙교육을 잘 한다는 교회에 등록하여,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을 듣는다고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지식이 늘었다고 해서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현실의 삶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부단한 싸움이 없다면 영적 미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4. 목표/ 영적성숙의 목표는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는 것이다

우리 신앙은 성장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될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4:13–15 (NKRV)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신앙 성장의 목표와 방향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야 합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에까지 자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라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순종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지식과 이해가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삶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둘이 분리되면, 위선이 되는 것입니다. 알기는 아는데 그렇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그렇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해 배우고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부족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단히 이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는 온전한 사람이며 이는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위대한 목표를 말씀하십니다. 완전함입니다. 

히브리서 6:2 (NKRV)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완전함이라는 단어 ‘텔레오테스’는 ‘온전함’ ‘완벽함’ ‘성숙’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우리 신앙은 온전해져야 하고, 완벽해져야 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자라지 않으면 병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48 (NKRV)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처럼 온전해져야 한다, 완전해져야 한다, 성숙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것은 이 앞에 있는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인지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38절부터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38–39 (NKRV)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악한 자가 오른 편 뺨을 치면 왼쪽 뺨을 내밀라는 것입니다. 유대문화는 수치 당하는 것을 굉장한 치욕으로 여깁니다. 뺨을 맞게 되면 어두운 저녁 몽둥이로 뒤통수를 때리는 문화입니다. 

보복을 정당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악한 자로 인해 수치를 당할지라도 보복하지 말고 오히려 왼쪽 뺨을 내밀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40–42 (NKRV)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당시 옷은 재산목록 두 번째에 해당합니다. 속옷은 일상복이고 겉옷은 두꺼운 도포와 같아서 이불로 사용하고 짐을 옮기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겉옷이 귀했습니다. 악한 자가 내 재산을 갈취하려고 소송을 거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당연히 고소하고 재판을 해서 내 재산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손해보고 끝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41 (NKRV)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당시 로마의 식민지 법은 식민국가의 시민에게 강제로 노역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한계가 오리입니다. 억울한 일입니다. 갑질을 당해 본 사람들은 이 억울함이 어떤 것인지 알 것입니다. 그런데 기꺼이 당하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요구한 것 이상을 행하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5:43–44 (NKRV)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는 원수를 갚아야 속이 시원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원수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 실제적인 피해를 준 원수입니다. 피상적인 원수가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고 위해 기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래서 학자 중에는 산상수훈이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말씀하는 것이니, 천국에서 이러한 삶을 살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 원수는 없습니다. 천국에 우리의 뺨을 때리거나, 억지로 재산을 갈취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이 땅에서 악한 자를 대할 때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5:46–48 (NKRV)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땅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향해 침을 뱉고, 뺨을 치는 자를 향해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면서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가 성장해야 할 목표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 신앙의 실체는 결국 악한 자를 대하는 모습에서 드러남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피해를 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나의 영적 성숙도를 가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교회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직접적인 피해와 손해를 깨친 자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우리 신앙의 실력이고 실제입니다. 

 

저는 목사였던 아버지가 무능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유난히 친구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친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집을 담보로 보증을 섰습니다. 친구분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제 가족은 한순간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원망할 만도 한데, 아버지는 그 친구가 교회에 나오기로 했다면서 용서하고 받아 주었습니다. 바보 같았습니다. 친구분의 딸이 결혼한다고 해서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호텔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했다고 합니다. 친구분은 강남 청담동에서 산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다였습니다. 우리 가족이 어렵고 살아가는 동안 아버지 친구는 잘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 눈에 그런 아버지는 무능하고 바보 같았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

많은 시간 법정 소송에 시달렸을 것이고, 그 사이 마음은 지옥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자책하는 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분노와 우울감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주 하셨던 말씀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손해 보시지 않아”. 저는 이 말로 아버지가 위안을 삼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손해 보지 않으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부족함이 없도록 돌보아 주셨습니다.

 

여러분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 신앙이 성장했을 때은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입니다. 억울한 일을 참았을 때입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분노와, 속상함을 참으면서 인내했을 때입니다.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손해를 감수하기로 했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장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은 사람들로 세우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게 하시고,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내 힘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내 삶을 흔들게 하십니다. 그 속에서 우리를 연단하고 단련하여 성장시키십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평가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얼마만큼 예수님처럼 살았는가?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예수님의 일곱교회를 향한 칭찬과 책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평가하시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8–19 (NKRV)

18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네 사업’은 ‘행위’를 말합니다. 나의 행위, 사랑, 믿음, 섬긴, 그리고 인내. 주님의 평가 항목입니다. 이것이 처음보다 더 많다, 즉 성장했다고 칭찬하십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들은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도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성장해야 합니다. 인내도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악한 자들을 대할 때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계속해서 이 싸움과 경주를 멈추지 말고 예수님처럼 완전한 데로 나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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