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9–20 (NKRV)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어떠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구성을 해야 합니다. 서론, 본론, 결론의 구성이나, 연역법, 귀납법, 병렬법 등의 서술 방식입니다. 성경도 논리적 구성 방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신구약의 저자들은 수미상관법(인쿨로지오)을 자주 사용합니다. 메시지의 처음과 끝을 연관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의 처음인 창세기1장과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22장은 인쿨로지오입니다. 처음 창조가 계시록 마지막에서 회복됩니다. 히브리서는 독특한 논리구조인데, 이런 식입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앞의 주제를 물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형 구조가 히브리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1.구성
먼저 본문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1)확신(9절)
히브리서 저자가 확신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6:9 (NKRV)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렇게 말하나.” 어떻게 말했다는 것입니까?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너희는 구원에 속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2)확신의 이유(10절)
그 이유를 10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6:10 (NKRV)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예수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과거)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현재)도 섬기고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셔서 이러한 너희의 행위를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3)기대와 소망(11-12)
11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미래)
히브리서 6:11–12 (NKRV)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입니다. 어떤 기대입니까?
3_1)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
3_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는 것
3_3)그 결과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을 본받는자 되게 하려는 것
4)아브라함의 예(13-15)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 중에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맹세까지 하셨는데, 이것을 믿고 오래참음으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5)약속을 맹세로 확증하시는 하나님과 그 이유(16-20)
히브리서 6:16 (NKRV)
16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거짓말 할 수 없는 본성을 가지셨기에 약속만 하시면 되는데, 왜 맹세까지 하셨는가?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이다. ‘우리가 확고하고 믿고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6:18–19 (NKRV)
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7.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이것에 본을 보여 주시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히브리서 6:20 (NKRV)
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확신 – 약속 – 아브라함의 예 –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 –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논리의 연속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확신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무엇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9절의 “이보다 더 좋은 것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6:9 (NKRV)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더 좋은 것, 구원에 속한 것이 무엇일까요? 몇 가지 다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17절에,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과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는 두 개의 내용을 말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위해 살고 있는가?
두 번째는 예수님을 위해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고 있는가?
히브리서 6:10 (NKRV)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바울은 우리가 구원받았는가는 믿음으로 확신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야고보는 너희 행위를 보고 확신한다고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둘을 종합합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행위로 드러나야 하는데 그 행위는 예수님을 위해 살고 있는가? 예수님을 위하여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위해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고 있습니까?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질적인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구원을 확신해도 좋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숙한 분도 있고, 어린아이와 같은 분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4:7–8 (NKRV)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은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내 곁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10 (NKRV)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과거에도 성도를 사랑하고 섬겼고, 현재에도 사랑하고 섬기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를 향한 사랑과 섬김은 현재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그러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고 있다면 신앙이 퇴보한 것입니다. 사랑과 섬김은 더 깊어져야 하고 확장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심판 날에 이루어질 일에 대해 말씀합니다.
모든 민족이 보좌 앞에 서는데, 두 편으로 나뉩니다. 오른편에는 의인, 왼편에는 악인입니다. 의인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고 약속하신 축복을 받습니다. 악인은 영원한 심판에 처하게 됩니다.
오른 편에 있는 의인에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5:35–36 (NKRV)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랬더니 의인들이 묻습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실 때 음식으로 대접하고, 목마르실 때 마시게 했습니까? 나그네로 있을 때 영접하고 헐벗은 것을 보고 옷을 입힌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언제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습니까?
주님의 대답이 이것입니다.
마태복음 25:40 (NKRV)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입니까? 오른 편에 함께 서 있는 형제와 자매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내 곁에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한 것을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은 성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다면, 여러분 곁에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십시오. 예수님은 여러분의 섬김을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습니다.
어제 설교를 준비하고, 교회차를 청소하는데, 이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래, 내가 청소하는 이 차는 예수님이 타시는 차구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힘이나더라구요
이러한 섬김과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과거에 그러했다면 지금도 그러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일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사랑과 섬김을 실천할 때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누가 알아 주는 것 같지도 않고,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저도 수년 동안 물질로 섬긴 분에게 감사하다는 문자 한 줄 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마태복음 6:3–4 (NKRV)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러니 올 한 해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더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2.기대와 소망(11-12절)
히브리서 6:11–12 (NKRV)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너희가 주님을 위한 삶이 과거에도 잘했고, 현재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더 잘할 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네 인생이 끝날 때까지 그 일을 지속하라는 것입니다.
12절의 ‘게으르지 아니하고’는 5장 16절에 ‘듣는 것이 둔하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일관성 있게 번역하려면 ‘둔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듣는 것이 둔한 것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에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현실의 삶에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쉽지 않은 것은 대부분 사람이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지만,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삽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삽니다.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손해 보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헌금을 내면 헌금을 낸 만큼 손해입니다. 하나님이 몇 배로 부풀려 주신다는 것은, 잘못된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낸 만큼 경제적으로 손해입니다. 여러분이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성도를 위해 시간을 쏟고 마음을 쓰는 만큼 손해입니다. 주님을 위한 삶,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삶에는 반드시 손해가 따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믿음과 오래 참음입니다.
히브리서 6:12 (NKRV)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무엇을 믿고 무엇을 오래 참아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반드시 갚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오래 참으라,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성도를 섬기는 삶을 살 때 상처받고 넘어지는 일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굳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의구심이 들 때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믿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그 모델로 아브라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6:13–14 (NKRV)
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아브라함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입니다.
약속을 기업으로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것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은 자들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믿고 오래 참음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만,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너희는 아브라함처럼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그 약속을 기업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15 (NKRV)
15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이 내용을 성경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처음 약속하신 장면입니다.
창세기 12:2–3 (NKRV)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굳게 믿었을까요? 처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은 그렇게 믿음이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아버지 집에서 우상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복을 주시겠다고 했고, 그 복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나님 백성의 씨로 삼으시고 그의 씨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구성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물론 약속을 받을 당시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자식이 없었을 때 첩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신실한 사랑과 긍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22장에서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치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약속을 받은 때가 75세였습니다. 이삭을 바칠 때의 나이는 120세 전후로 추정됩니다. 약45년 동안 하나님의 신실함을 경험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위해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는 믿음과 인내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으로 반응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2:16–18 (NKRV)
16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약속만 하시면 되는데,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믿고 인내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히브리서로 돌아와 봅시다.
히브리서 6:16–17 (NKRV)
16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끝까지 믿음으로 경주하고 인내하도록, 약속을 맹세로 확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이 맹세로 우리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두 개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피난처와 닻입니다.
히브리서 6:18–19 (NKRV)
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거짓말할 수 없다는 것과 맹세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그 말씀은 실행되고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맹세를 하신 이유는 연약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앞에 있는 소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얻게 하시려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이 맹세를 피난처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믿음이 약해지고 인내하지 못해, 주님을 위한 삶,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삶에서 멈추고 싶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맹세를 피난처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피난처가 무엇입니까? 잠시 쉬는 곳입니다. 힘들고, 낙심되어도 하나님의 맹세를 기억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가야 할 길을 가야 합니다. 그것은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맹세를 기억하고 믿는 것은 영혼의 닻과 같습니다.
닻이 무엇입니까? 배를 항구에 묶어 두는 것입니다. 바람에 풍랑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묶어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항해에서 여러 가지 고난과 역경에 떠내려고 갈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맹세에 너희 영혼을 묶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맹세에 우리 믿음을 묶을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이나 평판에 기대서는 안 됩니다.
자기만족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맹세, 우리에게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넘어서는 맹세를 붙들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19 (NKRV)
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휘장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전 안에는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곳이기에 대제사장만 1년에 한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것이 휘장입니다. 휘장을 지나면 지성소가 나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장소를 상징합니다. 이곳은 오직 하나님이 선택하신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에 우리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번 말씀드렸던, 하나님의 기쁨과 소망인 동시에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아무런 만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은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어 이루신 일인데, 예수님이 이루신 그 놀라운 축복을 누리가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을 위해 사는 일에 더욱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님의 맹세를 기억하십시오.
반드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믿고 인내하며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이 길을 끝에 휘장을 지나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