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13.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이유
히브리서 7:1–4 (NKRV)
1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히브리서 7:25 (NKRV)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오른 본문의 내용을 간추리면, 예수님은 온전한 제사장이어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시고, 영원한 제사장이어서 항상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말씀드린 것처럼, 히브리서는 앞의 주제를 물고 다음 주제로 넘어갑니다. 6장 마지막절에서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7장은 이 주제에 대해 설명합니다. 멜기세덱은 어떤 존재인지? 그의 반차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영원한 제사장이 왜 필요한지?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멜기세덱에 대한 것입니다.
멜기세덱 대한 언급은 히브리서 5;6절에서 시작됩니다.
히브리서 5:6 (NKRV)
6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는 시편 110:4절을 가리킵니다.
시편 110:4 (NKRV)
4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하기 위해 시편110편의 말씀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시편110편 히브리서 5,6,7장을 이해함에 있어 중요합니다.
시편110편을 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10:1 (NKRV)
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다윗의 시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여기서 다윗이 ‘내 주’라고 부르는 분은 누구입니까? 왕이 ‘주’라고 칭할 수 있는 분은 메시아뿐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이 이 글을 쓸 때 성령에 감동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마태복음 22:43–44 (NKRV)
43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모든 성경이 그렇지만, 다윗은 시편110편을 쓸 때 성령에 감동되었습니다. 그는 보고 들었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장면은 하나님과 메시아 사이에 있었던 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주, 즉 메시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무슨 말입니까? 악한 마귀가 완전히 폐할 때까지 ‘하나님 오른 편에 앉아 있으라.’ 하나님이 오른 편에 앉는다는 것은 신적 통치를 의미합니다. 원수 마귀 세력이 완전히 진멸할 때까지 신적권능으로 통치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누구에게 말한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다윗이 주라고 부르는 분에게, 즉 메시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메시아가 예수님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이 말씀을 하실때는 언제일까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을 때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9 (NKRV)
19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베드로전서 3:22 (NKRV)
22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아직 원수 마귀가 진멸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멸하실 것인데, 그때까지 하나님의 권능으로 통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예수님의 왕적 통치를 보여줍니다.
시편 110:2–3 (NKRV)
2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다윗이 무엇을 봅니까? 주님께서 즉 예수님께서 ‘권능의 날’에 하늘보좌 우편에서 권능으로 다스리시는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까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즐거이 헌신하는 청년들은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어떻다고요? 새벽 이슬 같은 청년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눈을 뜰 때는 늙고 병든 모습이 아닙니다. 새벽 이슬 같은 청년의 모습입니다.
이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시편 110:4 (NKRV)
4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 장면을 머리에 그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승천하여 보좌 앞에 서신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원수가 너의 발판이 되기까지 하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됐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맹세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맹세까지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면 굉장히 엄중한 말씀인데,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제사장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워서 6장에서 보류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5:11 (NKRV)
11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이것을 7장에서 다시 설명하는 것입니다.
주제는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서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설명하기 위해 멜기세댁을 모형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즉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어떤 면에서?
세 가지로 말합니다.
1)그는 왕이며 동시에 제사장이었습니다.
히브리서 7:1 (NKRV)
1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두 개의 직분을 동시에 감당한 사람입니다. 두 개의 직분은 엄연히 구별되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지만,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제사 직무를 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삼상13).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지만 제사장의 일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살렘성의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었습니다.
2)의의 왕, 평강의 왕입니다.
히브리서 7:2 (NKRV)
2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살렘’은 평강이라는 말입니다. 멜기세덱이란 이름의 뜻은, 체덱, 의라는 뜻이고, 멜기, 말라크 ‘왕’이라는 의미로,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3)항상 제사장으로 있습니다.
히브리서 7:3 (NKRV)
3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창세기 14장에 보면 그는 신비스럽게 등장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마치 제사장 직분이 계속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아들, 즉 천상적인 존재라는 착각을 하게 합니다.
4)그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보다 위대합니다.
히브리서 7:4 (NKRV)
4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멜기세덱은 전쟁에 승리해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고,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당시 십일조는 주권자에게 내는 세금과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자기 왕이요, 제사장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비교할 수 없는 권위가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니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멜기세덱보다 위대한 인물은 없습니다. 다윗이 탁월한 왕이라고 해도 제사장은 아닙니다. 사무엘이 신실한 제사장이라고 해도 왕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평강의 왕, 의의 왕일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었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을 주목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왕이요 제사장으로 그가 아브라함에게 행한 일 때문입니다.
창세기 14:17–20 (NKRV)
17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라함이 가나안 북방 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돌 때, 살렘왕 멜기세덱이 그를 영접합니다.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입니다. 이어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은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자신이 가진 것 전부에서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장면을 중요히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멜기세덱은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모형인데, 그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했습니까? 축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히브리서에서 어떤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의 모형입니다.
히브리서 6:13–15 (NKRV)
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자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약속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한 것입니까? 멜기세덱이 축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북방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영접하는 멜기세덱을 만났을 때, 승리의 이유가 자기 소유 군대의 군사력이나 전술 때문이 아니라,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당시 십일조는 주권자에게 바치는 세금과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친 것은 멜기세덱이 의와 평강의 왕으로서 그리고 제사장으로서 자신을 축복하는 자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멜기세덱의 통치와 그를 향한 기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의 통치와 기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예수님은 우리의 왕이며 온전한 제사장이어서 우리 죄를 온전히 사하셔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영원한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그리하여 약속을 기업으로 받게 하십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의 온전성, 영원성을 강조합니다. 온전성, 영원성을 강조하는 것은 구약의 언약 백성들에게 있었던 모든 제사장들은 온전하지도 영원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워 제사의 업무를 감당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7:18 (NKRV)
18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전에 있던 계명은 구약의 제사제도를 말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연약하고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폐하여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 연약하고 무익합니까? 우리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데 연약하고 무익합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길 원하시는데, 우리에게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제거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길 원하셨습니다. 그 방법으로 제사를 지정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할 짐승을 죽여 그 피를 뿌리고 고기를 태워 드림으로 우리 죄를 제거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전담하는 직분이 제사장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제사는 일시적인 방편이라는데 있습니다. 짐승의 피가 어떻게 우리 죗값을 대신하겠습니까? 우리가 죄를 지은 만큼 짐승을 드려야 한다면 도대체 이 세상에서 남아있을 짐승이 있겠습니까? 구약의 제사는 일시적 속죄의 방편일 뿐입니다. 죄가 어떻게 사해질 수 있는지를 모형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죄는 생명이 죽고 피를 흘림으로 사해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연약하고 무익한 제사 제도를 세우셨을까요? 그 이유는 마침내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 제사가 있을 것을 소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7:19 (NKRV)
19(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하나님께서 무언가 불완전한 것을 주실 때는 완전한 것이 있음을 소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프다는 것은 음식을 먹음으로 배가 부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목이 마른다는 것은 목마름을 해결할 물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배고픈 상태에서 밥을 한 숟갈만 먹었다고 합시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제발 밥 좀 충분히 먹었으면 좋겠다. 목마른 상태에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고 합시다. 무슨 소망을 갖습니까? 물 좀 충분히 먹었으면 좋겠다. 결핍이 있다는 것은 충만한 상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제사에 결핍이 있었다는 것은 완전한 제사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무엇을 소망했을까요? 이렇게 짐승의 제사를 계속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우리의 죄를 제거하고, 영원히 제거할 수 있는 제사를 기대한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지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짐승을 죽이고 피를 흘려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죄를 사하는 제사를 기대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제사를 소망한 이유는 죄 사함 자체도 귀하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영원히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며 하나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입니다. 결혼 전에는 아무리 좋아도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무엇을 소망합니까?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임재를 간헐적으로 체험했던 이스라엘은 그것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시편 84:10 (NKRV)
10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날마다, 그리고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고 싶은 것입니다. 더 이상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일이 없는 그날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 온전히 거하는 그날, 죄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막힘없이 부어지는 그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충만히 거하는 날을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어떻게요?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삼아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을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히브리서 7:20–21 (NKRV)
20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왜 하나님이 맹세하신 것입니까? 이 일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보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자꾸 넘어지고 두려워하니까,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하고 완전한 제사장입니다.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하고, 온전히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7:22 (NKRV)
22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구약의 언약도 물론 좋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언약, 즉 예수님과 우리가 맺은 언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함 받습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님과 이 언약을 맺었습니까?
누가복음 22:20 (NKRV)
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그의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이 언약을 세우십니다. 일상적으로 먹는 떡과 포도주에 자신의 십자가의 의미를 담으셨습니다. 너희가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나의 십자가 죽음을 믿게 되면 생명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우리와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 죄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하는 제물이라는 것을 언약으로 보증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12 (NKRV)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래서 더 이상 우리에게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천주교처럼, 여러분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 사제들에게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7:23–24 (NKRV)
23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제사장들이 많은 것은 그들이 죽기 때문이 아니냐? 그들의 연약함과 무익함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 제사장이 우리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황이, 신부가, 사제가, 목사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죄인이 죄인의 죄를 용서합니까? 죄가 없는 제사장만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15 (NKRV)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히브리서 7:25 (NKRV)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여러분을 위해 아무도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입니다. 승천하시어 하늘 보좌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셔서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이 기도는 쉽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붙들어야 하겠습니까?
히브리서 7:26 (NKRV)
26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이러한 대세자장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의지하고 붙드십시오.
예수님은 자기 피로 맹세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하시겠다고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영원한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8–39 (NKRV)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반드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맹세하셨습니다.
이것의 가능한 이유는,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통치하고, 위하여 항상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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