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15.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님
히브리서 8:6–13 (NKRV)
6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7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오늘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이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8:6 (NKRV)
6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예수님은 더 아름다운 직분을 받으셨습니다. 그 직분이란, 더 좋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7절부터는 예레미야 31장 3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는 표현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를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개념이었습니다. 먼저, ‘언약’의 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1. 언약이란 무엇인가?
‘언약’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우리는 흔히 ‘언약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거나 ‘언약을 믿어야 한다’는 표현을 통해 성경 속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립니다. 언약이란 단어 자체가 ‘말로 하는 약속’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계약’(조약)을 뜻합니다.
성경 원어로 ‘디아데케’(διαθήκη)라고 하며, 영어 성경에서는 ‘Covenant(커버넌트)’, 공동번역에서는 ‘계약’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즉, ‘계약’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더 명확해집니다.
2. 성경 속 언약의 예시
‘언약’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6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가득한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1) 노아와의 언약 (창세기 6:18)
창세기 6:18 (NKRV)
18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만들고,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들여야 했습니다. 생명을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방주를 지어 생물을 들이라는 인간의 의무가 동시에 수반됩니다. 이것이 언약, 즉 계약으로 세워졌습니다.
2) 아브라함과의 언약 (창세기 12:1-3)
창세기 12:1–3 (NKRV)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고 그를 통해 큰 민족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에 들어가 거주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이를 언약으로 체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7:2 (NKRV)
2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언약을 맺으신 이유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 이유는 인류를 보존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이유 또한 인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언약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었습니다. 만일 사람이 이 언약을 충실히 이행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언약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려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언약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셨습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국가 간 혹은 부족 간에 조약을 체결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국가 간에 불가침 조약이나 상호 협력 조약을 맺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고대나 현대나 조약은 국가 간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를 어기면 군사적 대응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언약의 개념을 차용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이것이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법적인 계약임을 분명히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반드시 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확증하기 위해 당시 관습을 따라 언약식을 행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짐승을 쪼개놓으라고 하셨고, 캄캄한 밤중에 불꽃이 그사이를 지나갔습니다. 이는 당시 국가 또는 부족의 대표들이 짐승을 쪼개놓고 그사이를 지나며 만일 이 조약을 어겼을 시 쪼갠 고기처럼 쪼개져도 좋다는 것을 맹세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겠다는 확증이었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이후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모두 할례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몸에 새기고 기억했습니다.
5.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인간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성경은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첫 번째 행동이 포도주를 먹고 취한 후 가족 간에 벌어진 추한 결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자 마자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이주해 버립니다.
창세기 12:10 (NKRV)
10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곳에서 자신의 아내의 아름다움 때문에 생명이 위협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아내 사라는 바로의 눈에 들어 궁으로 끌려갑니다. 하나님은 바로와 궁에 재앙을 내리셔서 사라를 풀어주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지키고 축복하시겠다는 언약을 충실히 지키셨지만 아브라함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네 씨를 통해 큰 민족을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오랜 기간 아이가 없자 첩을 통해 아들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에 아들 이삭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야곱의 아들 가운데 요셉은 특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7년 동안 가나안 지역에 기근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굶어 죽게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미리 준비시키고자 요셉을 애굽을 총리로 세우십니다. 그 과정 가운데 요셉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요셉이 애굽이 총리로 있을 때 그는 형제들의 가족 70명이 애굽의 고센 땅으로 이주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번성하게 됩니다. 70명의 언약의 백성들이 200만명 이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제 이들을 가나안땅으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에 보내 한 민족을 세우고 그들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에서 2백만 명 이상으로 번성한 이스라엘은 이제 가나안땅으로 향해 갑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진행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거절하는 바로 왕에게 10가지 재앙을 애굽 땅에 내립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지도로 홍해를 건너 시내 산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것인 시내산 언약입니다.
6. 시내산 언약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사는 동안 요셉이 죽고 난 뒤로 애굽의 노예로 생활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 언약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맺습니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언약, 조약, 계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심으로 자신들이 앞으로 하나님과 어떤 관계로 묶이는지 이해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침략하거나 전쟁이 나면 하나님이 참전하여 진멸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19:5–6 (NKRV)
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것은 약속이 아니라, 조약이며 계약입니다. 하나님께서 법적인 양식으로 맹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조약의 내용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은 야훼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조약의 내용에 충실하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기게 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언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언한 것은 바로 축복과 저주가 언약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를 증거로 삼기 위해 두 돌판에 십계명을 새기셨습니다. 언약은 반드시 증거가 필요합니다. 노아의 언약에서는 무지개가 증거였고, 아브라함 언약은 할례가 증거였습니다. 시내산 언약은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이 증거입니다.
시내산 언약 이후 하나님은 언약에 충실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할 때 약속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가나안땅에 가려고 하지 않을 때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한세대가 다 죽을만큼 잘못된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므로 언약적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40년 후의 가나안땅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모든 전쟁에 참전하여 가나안의 족속들을 진멸시킵니다. 그들은 모두 가증한 우상숭배에 물든 자들이었습니다. 당시 가나안은 사람의 인권을 짓밟고 자기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자식들을 번제물로 드리며, 동성애가 창궐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전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을 때, 가나안의 죄가 가득 찼을 때 이스라엘 통해 그들을 진멸할 것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창세기 15:16 (NKRV)
16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아모리족속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 중 대표입니다. 그들의 죄가 차서 가득할 때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통해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출애굽 2세대들이 이룬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건축하지 않은 성읍을 얻었고, 자신들이 파지 않은 우울을 차지했으며, 심지 않는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축복은 언약에 충실할 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만일 불순종하게 되면 언약의 내용에 기록된 저주를 받게 됩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다음 세대부터 타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들은 언약의 백성답게 살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동화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누리는 세속 문화를 부러워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가나안화 되어져 갔습니다. 그러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까지 섬기게 됩니다.
사사기 2:10–12 (NKRV)
10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11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이들은 언약에 충실하지 못했음으로 하나님은 은혜의 손길을 거두셨습니다.
히브리서 8:9 (NKRV)
9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옛 언약은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 손길이 떠납니다.
그들이 침략당해도 참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고통 중에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긍휼과 인자하심으로 그들을 받아 주셨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가나안땅에서 반복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점점 추락하게 됩니다.
사사기 2:20–21 (NKRV)
20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러한 역사가 사사시대를 거쳐, 왕정 시대까지 계속됩니다.
7.옛 언약으로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러한 언약으로 과연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한 구원의 계획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 언약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옛 언약,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으로는 그의 백성을 온전히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악된 본성은 언약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순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지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언약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자기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인 자입니다. 신실했던 왕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하였고 그의 남편을 전쟁에 보내 죽게 만든 사람입니다.
구약성경은 그 어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언약에 충실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음을 보여 줍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그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셔도,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기보다 자기 유익을 추구하는 자들임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옛 언약으로는 연약한 죄인을 구원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언약을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구약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입증하셨습니다.
결국 구약의 언약, 옛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옛 언약으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자력 구원의 불가능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언약에 신실하셔도 우리가 언약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옛 언약을 통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는 유지되지 못합니다.
8. 하나님은 새 언약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이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보여주신 후,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레미야 31:31–34 (NKRV)
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날이 이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날을 주목합니다. 그들 이스라엘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집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말합니다.
32절. ‘그 언약은 조상들과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 시내산 언약입니다. 시내산 언약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언약은 마치 결혼과 같은데, 한편에서 깨면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33절. 새 언약은 1)하나님의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합니다.
시내산 언약은 어디에 기록했습니까? 돌판에 기록했습니다. 성문으로 된 조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문으로 된 조약은 한 편에서 깨면 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백성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보고 돌판을 깬 것입니다. 이 조약서를 들이대면 결국 그들 모두가 죽음을 면치 못하기에 깬 것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사람의 내면에 기록합니다. 마음은 인격의 중심입니다. 우리 인격 존재 안에, 우리 인격 안에 하나님의 법을 새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과 정서와 생각 안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신다는 것입니다.
2)‘다시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않을 것인즉,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구약에서 안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를 통해 아는 것입니다. 경험을 통해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며 이를 통해 구원을 받습니다. 아는 것은 믿는 것이고, 경험하는 것이고, 친밀한 관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즉 새 언약을 맺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경험하여 친밀한 관계 안에 거하게 됩니다.
3)‘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완전히 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언약은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 제물을 드려야 죄를 사함받아야 합니다. 불완전한 속죄, 일시적 속죄일 뿐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성도들은 반복적으로 짐승을 제물로 드려 죄를 용서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을 맺게 되면, 영원한 속죄, 완전한 속죄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9. 새 언약의 성취
하나님을 이를 통해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바로 새언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새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조금 후에 있을 십자가 사건이 구약성경에서 말한 새언약의 성취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19–20 (NKRV)
19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로 그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와 맺은 언약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새 언약의 중보자라고 할 때, 바로 그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죄인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고기를 쪼개놓고 맺은 언약처럼, 자신의 쪼개진 몸을 놓고 맺은 언약입니다. 언약을 어기면 피를 흘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흘리신 피로 언약의 모든 저주를 감당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범하여도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언약적 저주를 다 받아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이 우리의 죄를 완전히 영원히 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히브리서 9:15 (NKRV)
15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옛 언약이 할 수 없었던 일, 우리의 마음, 즉 존재를 바꾸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일을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것이 새언약이 약속한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긴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새 언약을 맺으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3 (NKRV)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를 위한 거처는, 하나님 나라에 우리가 살 집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할 거처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어떻게 거하십니까?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하십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16 (NKRV)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즉 하나님의 법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은,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의 존재가 바뀝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고후5:17).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3:6 (NKRV)
6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새 언약의 일꾼이란 새 언약을 맺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조문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님은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주하셔서 하나님의 법을 새겨 놓으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졌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을 통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큰 자로부터 작은 자까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던, 어른이던, 어린이던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속죄 제사를 통해 우리의 죄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함을 받았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그 주님을 더욱 의지하시고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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