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4. 신앙의 길에서 떠내려가지 말라
히브리서 2:1–18 (NKRV)
1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위로와 소망은 무엇일까요?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성도에게 위로와 소망은 무엇이겠습니까? 치료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에게는 경제적 자립과 안정일 것입니다.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성도들에게는 관계의 회복일 것입니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에 대한 불안 탓에 고통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은 불안의 요소가 제거되어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대안과 해결책은 일시적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우리는 질병에서 치유돼도 또다시 아플 것입니다. 경제적 자립을 한다 해도 또다시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반복됩니다.
우리가 찾는 대안과 해결책은 일시적 방편일 뿐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고통 중에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주목할 것은, 위로나 격려의 메시지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신뢰가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절망 가운데 성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으로 위로하고 소망을 주겠습니까? ‘좋은 곳에 가셨습니다’로 안 됩니다. ‘그분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외에는 없습니다. 이는 기대나 소망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죽고 부활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근본적인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히브리서 예수님에 대해 말씀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을 때 위로를 얻게 되고 소망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장에서는 예수님의 신적 권능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다. 천사보다 뛰어나셔서 천사들조차 경배하는 위대한 분이시다. 그분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말씀의 능력으로 만물을 다스리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현실적 위로가 소망이 되려면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그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하나로 묶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나의 예수님이 되게 하며, 그분의 사랑이 나에게 임하게 하며, 예비하신 은혜와 축복을 나의 것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사실이라고 해도 믿지 않으면 나에게 아무 유익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속해서 말씀할 뿐만 아니라, 그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현실에 닥친 고난을 견디게 할 뿐만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살피게 될 2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들에 대한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먼저 1~4절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2:1 (NKRV)
1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는 1장 전체를 받습니다. 히브리서 1장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가에 대한 압축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시며, 창조한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입니다. 특히 14절은 그 예수님이 천사들을 보내 우리를 섬기게 하셨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지금 우리 곁에 천사들이 호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만큼 나를 아끼시고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길에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길에서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성경 말씀을 유념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받은 큰 구원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내게 주신 은혜와 성령님의 선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1.성경 말씀을 유념해야 합니다.
1절을 다시 보시면,
히브리서 2:1 (NKRV)
1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여기서 들은 것은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2절에는 구약성경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히브리서 2:2 (NKRV)
2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천사들은 하나님 계시의 수종자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은 모세, 이사야, 다윗과 같은 인간 저자가 썼지만, 그 계시가 실제로 성경 저자에게 임해 글로 옮기는 과정 가운데 천사들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 3:19 (NKRV)
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여기서 ‘율법’은 모세가 쓴 모세 오경을 말합니다. 모세 오경은 천사들을 통해 한 중보자의 손을 베푸신 것, 중보자는 모세를 말합니다. 즉 모세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말씀을 쓸 때 천사가 하나님 말씀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했음을 말합니다.
율법서만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천사들을 중재자로 하여, 성경 저자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요한계시록 1:1 (NKRV)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시의 근원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알리셨고, 이를 기록한 것입니다. 신구약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유념하라는 것은 굳게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굳게 간직하는 것은, 읽고,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 (NKRV)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경을 배우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머리를 채우는 말씀이 아니라, 생명의 도리요, 삶의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 신앙의 길에서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굳게 간직해야 합니다. 1절에서 ‘들은 것에’라고 한 것은, 당시 성경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 손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있지 않습니까? 축복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평상시에 성경책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주일에 모여 예배드리며 설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봉사나 여러 가지 활동이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평상시에는 이런저런 책들을 읽습니다. 소설, 수필, 인문학책들을 함께 읽습니다. 그러다 힘들 때는 성경책만 읽습니다. 다른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책을 읽으면, 힘든 만큼 위로를 받습니다. 불안했던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속상했던 마음이 위로받습니다. 어려움을 견딜 힘이 생깁니다.
<찬송가 205장>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주시오, 나 항상 듣던 말씀 또 들려주시오
저 뵈지 않는 천국 주 예수 계신 곳, 나 밝히 알아 듣게 또 들려주시오
아침의 이슬 방울 쉬 사라짐 같이, 내 기억 부족하여 늘 잊기 쉬우니
잘 알아듣기 쉽게 늘 말해주시오, 날 구속하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주 예수 나를 위해 이 세상 오셔서, 날 구속하신 은혜 말하여 주시오
나 같은 사람 위해 주 보혈 흘렸네, 이 복스러운 말씀 또 들려주시오
이 세상 헛된 영화 날 미혹할 때에,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들려 주시오
천국의 빛난 영광 내 눈에 비칠 때,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나 항상 듣던 말씀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신앙의 길에서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성경 말씀을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마지막에 하셨던 비유를 알고 있습니다.
두 개의 집이 있습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보기에는 같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창수나 나고 바람이 불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마태복음 7:24–27 (NKRV)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열심히 신앙생활 하던 성도님이 작은 일에 넘어지는 경우를 봅니다. 말씀 위에 신앙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은 지식을 아는 것이나, 지식에 대한 동의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알고 굳건하게 신뢰하는 것, 그래서 순종하는 것까지가 믿음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2:1절에서 말하는, 들은 것에 유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신앙의 길에서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받은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2:3 (NKRV)
3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우리가 받은 구원은 큰 구원(great salvation)입니다. 그냥 ‘구원’이라고 하지 않고, ‘큰 구원’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큰 죄 가운데 있어서, 심판이 크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러한 비참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큰 대가가 치러졌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큰 구원은 아닙니다. 장기 이식으로 여러 사람을 살린 것도 귀한 일이지만 큰 구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은 큰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고, 그러한 우리를 위해 치르신 대가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치르신 대가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큰 죄를 위하여 독생자를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내어줄 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구원입니다.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간혹 아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렇게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잘못해서 혼낼 때입니다.
“만약 네가 다쳐서 눈을 잃었다고 해봐. 그럼, 엄마가 한쪽 눈을 빼 줄 수 있어”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어요. 그런 상황이 돼봐야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아내는 확신 있게 말합니다. “엄마는 심장도 줄 수 있어”. 자식을 위해 눈을 빼 주고, 심장을 내 줄 수 있는 것은, 눈보다 심장보다 아이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부를 주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 (NKRV)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이것을 믿으십니까? 이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믿었으면 합니다. 이 믿음이 지금은 작을 수 있어요. 그러나 점점 커지길 기도하세요. 아이일 때는 부모의 사랑을 잘 모르다가 철들면 아는 것처럼, 영적으로 아이일 때는 이 사랑의 크기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하면 더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왜 날 이렇게 사랑하시는가? 이 사랑의 크기가 너무 커서 다 알 수도 이해할 수도, 마음에 담을 수도 없지만 계속해서 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3:17–19 (NKRV)
17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큰 구원에 담긴 예수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사랑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독교 교리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활동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기가 태어나 엄마에게 애착되는 과정과 같습니다. 생후 36개월까지 아기는 엄마의 전폭적인 돌봄과 사랑을 받으며 애착 돼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성인 된 이후 불안장애를 겪거나 자존감이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에 애착 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며 겪는 갈등과 어려움을 잘 극복하지 못합니다. 신앙의 여러 위기 앞에 주저앉게 됩니다.
우리가 큰 구원 안에 담긴 하나님의 큰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큰 사랑을 알게 될 때 우리 신앙이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한때 열심히 예배도 드리고, 봉사활동도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신앙의 길에서 떠난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실망하거나, 목사나 성도들에게 실망한 경우가 많습니다. 상처를 받고 실망한 나머지 다시는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라 결심한 분들이 많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 점검해야 할 것은 할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애착 되어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큰 구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큰 사랑에 붙들려 있는가입니다.
마치 배가 항구에 있는 계선주에 묶여 있을 때 떠내려가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묶여 있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내 삶에 주신 은혜와 성령님이 주신 선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2:4 (NKRV)
4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이런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큰 구원을 기록된 구약성경을 통해서 증언하셨을 뿐만 아니라, 표적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으로 큰 구원을 증언하셨고,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 성령님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이 두가지가 큰 구원이 너희에게 임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은 신구약 성경만 증언한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 일어난 신비하고 놀라운 일들 가운데 있고, 성령님을 통해 주신 은혜, 성령님의 선물로 입증됩니다.
큰 구원의 흔적은 우리의 삶 전체에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실수했고, 죄를 지었습니다. 이기적이었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실패했고, 절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넘치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순간순간들이 큰 구원이 내게 임한 증거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망하고 상처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당장에 받은 상처가 아니라, 과거에 그 사람에게서 받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을 향했던 서운함과 감정들이 누그러집니다.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이전보다 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합니다.
관계를 견고하게 묶는 것은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 삶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견고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환난과 시련의 사람이 불어도 흔들리거나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또, 내게 주신 성령님의 선물, 성령님의 은사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큰 구원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확신하는 내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 중 하나는 받은 선물을 세어보는 것입니다.
이OO, 방OO 집사님의 큰딸 혜진자매는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갈 때 아버지께서 사 주신 피아노를 싣고 갔다고 해요. 요즘 피아노가 애물단지로 취급됩니다. 중고로 내놓아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그 크고 무거운 피아노를 미국까지 가져간 혜진자매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그것은 피아노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내가 큰 구원을 받았다는 내적인 증거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NKRV)
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는 성령님으로부터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구원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신뢰할 때 신앙의 길에서 떠내려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삶을 흔드는 고난과 역경의 순간이 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우리는 더 견고한 신앙으로 주님께 나갈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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