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2.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리라
호세아 강해 2번째 시간입니다. 호세아서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 관계라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그들을 아내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남편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예전에는 남편을 알지 못하고 시집가는 경우가 있지 않았습니까? 마치 그런 것처럼, 하나님의 아내가 되었지만 남편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남편이다. 라는 말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여기시고 아내라고 부를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내로 삼으실 때 그만한 조건과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이스라엘인가? 왜 세상에 많고 많은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는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우수한 민족이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그분의 아내로 삼으신 것입니까? 우리에게 그 어떤 자격과 조건이 있어서 아닙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신명기 7:7–8 (NKRV)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시고 택하신 것은 다만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어떤 자격과 조건이 있어 사랑한다면 자격과 조건을 사랑하는 것이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대상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사랑합니다.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은 자들은 자랑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6 (NKRV)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9 (NKRV)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선택하신 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먼저 우리를 선택하시고, 그의 걸맞은 성품과 인격으로 빚어가십니다. 이때 하나님이 내 삶을 주관하신다는 면에서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를 양육하신다는 면에서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와 친밀하다는 면에서 남편입니다. 왕 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우리를 빚어가십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답게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신랑이 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신부답게 우리를 순결하게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격적 교제는 수준이 맞아야 가능합니다.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과 교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있는 교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인격체로 창조하셨습니다. 자기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모든 피조물보다 탁월한 것은 자율적인 사고와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조차도 자율적 의지로 섬길 것을 결정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신데 그분을 섬길지 아닐지를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조차도 그 결정을 막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살게 하실 때, 그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너희가 선을 선택할 수도, 악을 선택할 수도 있는 존재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무조건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가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과 의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악을 선택할 것도 알았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에 굴복하여 하나님을 섬길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인격적 교제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수준이 하나님처럼 높아져야 합니다.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하나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48 (NKRV)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러므로’는 앞의 내용을 받고 있는데, 이런 것입니다.
오른 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쪽 뺨을 돌려 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고,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 리를 동행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 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과 인격은 어떻다는 것입니까?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돌려댈 수 있는 인격과 성품입니다. 자신을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인격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성품과 인격의 사람들로 우리가 자라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이 이러한 성품과 인격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침 뱉고 뺨을 치는 자들에게 침묵하셨고, 십자가에 죽어가는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닮아가야 할 성품과 인격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온전함을 온전히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는 참으로 친밀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과 의논하셨고, 사역 중에도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5 (NKRV)
35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많은 사람을 치유하자 그 소문이 퍼져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찾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누가복음 5:15–16 (NKRV)
15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예수님의 놀라운 사역을 보고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을 때는 이렇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5–26 (NKRV)
25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 인격적인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역에 동력이었고 위로였고 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격 없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수님과 나누었던 친밀한 교제를 우리와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로서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유아기적인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이웃의 어려움과 아픔을 돌볼 줄 아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의 남편이 되셔서 세상 욕심을 추구하며 따르던 우리를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순결한 신부로 빚어 가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하시는 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 5:17 (NKRV)
1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빌립보서 1:6 (NKRV)
6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이 착한 일은, 구원인데 그 구원은 단지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격과 조건이 없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그분의 백성, 자녀, 아내로 삼으시고 그에 걸맞은 성품과 인격으로 빚어가시는 일을 의미합니다. (두 번 반복)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인생 속에 하나님의 구원, 즉 우리를 하나님의 온전하심처럼 온전하시게 하시는 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으로 빚어가시는 일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될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자기 백성, 자기 자녀, 자기 아내로 만들어 가실 때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연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삶에 시험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들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고 하나님의 아내답게 빚어 가십니다.
야고보서에서 이것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2–4 (NKRV)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믿음의 시련’ ‘유혹’ ‘테스트’입니다. 표현되는 방식은 세 가지지만 결국 우리가 당할 때는 고난이라는 형태로 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고난을 겪는데, 어떤 고난은 믿음의 시련일 때가 있고, 어떤 고난은 악한 사단의 유혹일 때가 있고, 어떤 고난은 내 믿음을 테스트 하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통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겠다, 즉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는 성품과 인격으로 빚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보다 더 큰 고난을 겪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가 고난 겪은 것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보실 때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의롭다고 하자 사단은 그에게 별다른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만일 고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욕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의 생명은 해하지 말고 그를 시험해 보라고 하십니다.
이후 그가 당한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있는 고통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하나님을 욕하라고 죽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단이 욥을 시험할 때 그것을 허용하셨습니다. 비록 사단에 의해 고난을 겪었지만,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욥의 고난을 통해 성경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가 마침내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었고 친밀한 교제 가운데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욥기 42:5 (NKRV)
5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전에도 하나님을 섬겼던 욥이었지만, 시험과 연단을 통과하며 마치 하나님을 눈으로 뵙는 것처럼 깊은 교제 가운데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욥이 고통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욥기 23:10 (NKRV)
10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자신이 비록 고통 가운데 있고, 하나님은 고난을 막아주지 않고 계시지만, 이 고난은 나를 단련시켜 마침내 순금처럼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성장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은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1:4 (NKRV)
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신성한’은 원어로 ‘데오스’ 즉 하나님을 말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왜요?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나요?
어릴 적 아버지가 사 주신 자전거 때문에 행복했나요?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에 골인했을 때가 행복했나요? 자녀들이 선물해 준 꽃다발을 받고 행복했나요? 물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 있는 것은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과 친밀하고 깊은 교제를 나눌 때입니다. 그 장소가 화려하지 않아도, 앞에 놓인 음식이 별 볼 일 없어도, 함께 있었던 그 순간이 행복이었습니다. 특별한 대화가 아닐지라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그 순간은 우리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내로 삼으셨다는 것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 기쁨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세상적인 것들에 마음이 뺏겨 다른 것으로 기쁨을 삼을 때 하나님은 질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며 10가지 계명을 주실 때 그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20:3 (NKRV)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나 외에는’이라고 번역했지만 ‘내 앞에’라는 말이 원문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 아내로 삼으시는 언약을 맺으시면서, 그 첫 번째 명령이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마치 결혼식과 같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섰습니다. 그들이 언약을 맺습니다. 언약식에서는 서약하지 않습니까? 앞에 있는 사람을 건강할 때가 병들었을 때나, 부활 때나 가난할 때나 사랑하겠다고 서약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부인 우리에게 어떤 서약을 요구하십니까?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너와 나 사이에 다른 것을 두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부인 우리에게 나와 너 사이에 다른 무엇도 두지 말자는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무엇으로도 기쁨을 삼아서는 안 되고 오직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그 무엇도 끼어들길 원치 않으십니다. 오직 우리에게 직접 다가오시고 친밀하게 만나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얼마 전 형원이가 앨범을 넘기면서 신혼 때 아내랑 끌어안고 찍은 사진을 보더니 엄마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저 사진들 다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려!” 형원이는 엄마와 자신 사이에 그 사진조차도 보기 싫은 것입니다. 형원이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입니다. 엄마를 대체할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엄마만이 형원이에게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0:4–6 (NKRV)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제 이 말씀이 이해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우리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방해받고 싶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삼사 대까지 죄를 갚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는 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천대까지 복 받고 우상숭배 하면 삼사 대까지 벌을 받는다고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는 그의 아내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기쁨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질투가 바로 호세아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질투의 표현입니ᄃᆞ.
호세아 2:2–13 (NKRV)
2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3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4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5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6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 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8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9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10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그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11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12그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에게 먹게 하리라
13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질투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그리고 다시 그 분의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호세아 2:14–23 (NKRV)
14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이 아버지를 통해 부성적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을 극대화하면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어머니를 통해 모성적 사랑을 받으셨다면, 그 사랑을 극대화하면 하나님의 모성적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남편이나 아내를 통해 친밀한 사랑을 경험했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그 친밀한 사랑의 극대화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통해 희생적 사랑을 체험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그 사랑의 극대화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시위한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혀 있는 죄의 담을 치우셨습니다. 내 앞에 다른 것을 두지 말라 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할 수 없어 하나님이 대신 치우셨습니다.
우리가 자주 이런 말 하지 않나요?
“하나님만 바라보자”. 어떤 의미인지 이제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다 치우십시오. 하나님은 그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시험과 연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시험과 연단은 우리가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들을 치우는 과정이거든요. 내가 붙잡은 것들을 치우는 과정이 고난과 연단을 방식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동안 많이 치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 치우는 과정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와 너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말자.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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