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24-08-28 17:32

4.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습니까?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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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강해 4. 진실, 인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습니까?

 

호세아 4:1–10(NKRV)

1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4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8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9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10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호세아서는 총14장입니다. 1-3장은 서론, 4-13장은 본론, 14장은 결론입니다. 4장부터 본론에 해당합니다. 본론은 총 8개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론에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를 다루었다면 3장부터는 이스라엘의 죄와 그 징계에 대해 말씀합니다.

 

4장은 마치 법정의 진술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시면서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신다’고 합니다. ‘논쟁하신다’는 것은 고소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세 가지로 요약하십니다. 

1절에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한 결과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윤리적 타락입니다. 

호세아 4:2 (NKRV)

2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두 번째는 생태계의 재앙입니다.

호세아 4:3 (NKRV)

3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하나님께서 없다고 하신 세 가지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성도들에게 있어야 할 중요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성도들은 진실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인애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바라보실 때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찾으십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가지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면 사회는 윤리적으로 타락하고, 생태계가 파괴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보시면서 이 세 가지가 있는지를 보셨습니다. 

마태복음 23:23 (NKRV)

2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표면적으로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지만, 더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정의, 긍휼, 믿음과 평행을 이루는 것이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 가지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1.진실 “에메트”

먼저 진실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 ‘에메트’라고 하는데 ‘바름’ ‘진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이 바른 것이고 무엇이 진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캐논이라고 하는데, 캐논은 바름, 기준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건축에서 측량줄을 캐논이라고 합니다. 바꾸거나 변형되어서는 안 되는 기준입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입니다.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이 아닙니다. 영원한 진리, 영원한 바름, 영원한 기준이 바로 진리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진실입니다. 성경이 진리입니다. 영원한 진실,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 진리에서 벗어나면 사회는 윤리적으로 타락하고 생태계가 파괴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도리로 붙들고 살아야 했습니다. 

모든 권위와 질서는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모든 리더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달하고 그 말씀에 따라 백성들을 인도해야 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사사들 그리고 왕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나님 말씀의 수호자요 집행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리더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1:7–8 (NKRV)

7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은 또한 모세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가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여 세우게 될 때 그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7:18–19 (NKRV)

18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이를 통해 우리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진리를 수호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진리를 알고 지키며 백성들이 진리를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지난 20일 ‘성수협’이 창립되었습니다. ‘성수협’이라 함은 ‘모든 성경의 신적권위 수호 운동협회’의 줄임말입니다. 신학교 교수, 목사, 법조인을 비롯한 19명이 1기 운영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각계 전문가 200여 명이 발기인으로 뜻을 함께했습니다. 

 

성수협이 주로 펼치려는 운동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반성경적인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저지하고, 이른바 ‘성경 고등비평 신학(성경비평신학)’의 해악을 알리는 일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인간의 작품으로 보고 오류가 있다고 전제하는 성경비평신학이 성경의 신적 권위를 무너뜨린다고 지적합니다. 

성수협은 서구 사회와 교회가 성경비평신학에 영향을 받아 성경에 대한 믿음, 성경의 신적 권위를 잃어버린 결과 반성경적 성혁명·차별금지법 확산 운동을 막아 내는 힘을 상실하게 됐다고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성경적 교훈을 따르려는 서구교회 신자들이 사회로부터 반성경적인 동성애, 성전환, 낙태 등의 수용과 지지를 강요받게 됐다는 취지입니다. 

 

저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재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엠폭스(일명 원숭이 두창)이 확산하고 있습니닥. 유럽을 넘어, 필리핀, 태국까지 확산하였으니, 우리나라에 오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4일 엠폭스 감염이 확산하자 최고 수준 보건 경계 태세인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원수이 두창의 확신자들은 대부분 남성이며 동성애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었다고 합니다.

서구의 교회가 진리를 수호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현재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생태계 파괴또한 인간이 진리에서 떠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자연의 질서와 생태계를 보호해야 할 우리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 여성이 36주 된 아이를 낙태한 과정을 영상에 담아 인터넷에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 이것을 본 사람들은 조작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한 생명을 죽이는 과정을 올릴 수 있는지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경찰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낙태죄가 사라진 상황에서 어머니 배 속의 태아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현행 판례상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 중론입니다. 

 

이러한 윤리적인 타락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진리의 말씀이 타협되거나 무시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무너지게 되면 사회는 급속하게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말은 좋아 보입니다. 인권을 강조하고, 포용과 관용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끔찍합니다. 

 

관용과 포용을 강조했던 파리 올림픽을 보십시오. 개회식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하면서 여장 남자를 다수 등장시켜 동성애를 미화했습니다. 여자 복싱대회에서는 알제리의 칼리프와 대만의 린위팅이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XY 염색체를 가진 남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혼란한 현실과 타락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저들을 탓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수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말씀의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흔드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2. 인애. ‘헤세드’

인자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헤세드는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불변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자비, 인자, 호의, 친절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가 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인간 서로 간의 친절이나 동정, 긍휼, 자비, 이웃사랑 등을 의미합니다. 

 

인애와 진실, 인자와 진리는 구약성경에서 짝을 이뤄 자주 등장합니다. 

시편 25:10 (NKRV)

10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시편 40:11 (NKRV)

11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잠언 3:3 (NKRV)

3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언 16:6 (NKRV)

6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인애(인자)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인애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하나님의 인애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애는 어떻습니까? 간음한 아내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진 그의 백성들을 안타까워하시며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애,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다윗이 간음죄를 범하고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받은 후 그가 했던 기도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편 51:1 (NKRV)

1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기대어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자한 분이 아니라면 죄인에게 소망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셔서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인자한 분이셔서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를 범했지만 이렇게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자하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인자할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받았다면 너희도 이웃에 대해 인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자함에서 나오는 것이 대표적으로 용서입니다. 용서는 무조건 죄를 덮는 것이 아닙니다.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손해를 입힌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 마음이 인애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불쌍히 여기고 안타까워하면서 품어주는 것이 인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인애를 나타낼 것을 원하십니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 이라면 인애가 필요할 리 없습니다. 인애가 필요한 것은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사람들이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실망합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도 나 때문에 상처를 입고 실망합니다. 이때 우리 마음에 인애가 없으면 분노하고 정죄하고 갈라서게 되는 일이 반복될 뿐입니다. 

 

인애는 마치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연약함”을 이해하고 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면서 자신을 향해 침뱉고 종롱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인애하심입니다.  

누가복음 23:34 (NKRV)

34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은 지금도 인애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인애를 요구하십니다. 

마태복음 5:44 (NKRV)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러한 인애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가 인애로 사람들을 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인애를 받아야 합니다. 인애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죄인인지를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인애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나를 어떠한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하셨는지를 깨달을 때 생깁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인애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나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애가 있는지를 보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평가 기준은 학력, 능력, 재력이지만 하나님은 인애를 보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도 인애가 자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고 품어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한 사람까지도 품게 될 때 인애가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애를 보십니다. 

 

3,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다릅니다. 누군가에 대해 아는 것과 누군가를 아는 것은 다릅니다. 누군가에 대해 아는 것은 그 사람의 정보를 아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아는 것은 그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체험적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치면 이순신 장군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은 우리 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은 이순신장군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아는 것은 그의 부모와 아내와 자녀들입니다. 또는 그의 친밀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지식을 안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지식이 많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밤낮으로 연구한 신학박사 보다 글씨도 읽지 못하는 시골교회 할머니가 하나님을 더 많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인격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고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것이고, 경외하는 것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서 예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2:19 (NKRV)

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이 우리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압니다. 그들은 믿고 떨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 결론부에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7:21–23 (NKRV)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여 주여 했다는 것은 교회다니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했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지의 여부를 판단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내면적인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는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고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설교와 묵상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멈추게 되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생명의 도리로 붙잡고 순종의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말씀의 진리를 몸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게 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자라게 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그 말씀을 믿고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치판단의 순간에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호세아 4:6–7 (NKRV)

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보다 세상의 번영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영화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로 인해 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영화가 욕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6:6 (NKRV)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졌습니다. 

진리를 붙잡고 진리의 수호자가 되십시오. 

이웃들을 인애로 대하십시오.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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