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24-09-10 16:18

6. 제사장 왕족 백성의 죄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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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강해 6. 제사장, 백성, 왕족들의 죄

 

호세아 5:1–15 (NKRV)

1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2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3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4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6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8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9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10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11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12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13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14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 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우리는 지난 시간 교회 안에 우상숭배의 문제에 대해 말씀을 나눴습니다. 성도들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이유는 인간의 욕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할 때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이 무엇을 욕망하는 것은 결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핍이 채워질 때까지 욕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식욕은 배부르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목마름의 갈증 물을 먹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욕망은 삶의 결핍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모든 사람은 근본적인 결핍이 있습니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항상 욕망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세상의 성공, 명예, 좋은 평판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것이 내 삶의 결핍을 채울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집, 좋은 차, 명품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도 그러한 것들이 허무한 내 삶을 채울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외모를 가꾸고, 사람들을 만나 즐기고, 재미를 찾아다니는 것도 내 삶의 외로움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것이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시적일 뿐입니다. 근본적인 결핍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더 허무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 뿐입니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호랑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먹고 자라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이 있으리라 판단한 애벌레는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섭니다. 애벌레가 발견한 것은 수많은 애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는 애벌레 기둥이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기를 씁니다. 이곳에는 밟히느냐 짓밟고 올라가느냐의 치열한 경쟁만 있을 뿐입니다. 호랑 애벌레는 결국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합니다. “여기엔 아무것도 없잖아.”라고 말하자 함께 그곳에 오른 애벌레가 말하지요. “조용히 해, 우리는 밑에 있는 애벌레들이 원하는데 올라왔잖아.” “그래도 이곳에 아무것도 없는걸.”

 

평생을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모으고도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근본적 결핍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남길 업적과 명예를 얻고도 자살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결핍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비로소 삶은 충만해지고, 만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을 채울 때 부족함이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방황하는 이유는 이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유는 이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우상숭배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 크고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현재의 삶이 풍요롭고 안락하길 원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처럼, 화려한 문명을 이루고 문화생활을 누리면서 삶이 풍요롭길 원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처럼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나안의 문화를 동경하고 부러워하다가 결국은 그들이 섬기는 신까지 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지 못하면 헛된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가 세속적 유혹 앞에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존재임을 아십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풍요함에 마음을 쉽게 빼앗길 수 있는 존재임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가깝게는 가족 확장되어 교회 그리고 국가라는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속에서 살면서 세속적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순결한 백성들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족, 국가, 교회에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게 되면, 우리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시는 대상이 언급됩니다. 

호세아 5:1 (NKRV)

1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그 대상은 제사장, 이스라엘 족속, 그리고 왕족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세 종류로 구분하여 소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아’라고 해도 될 텐데, 이렇게 세 종류로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의 사명이 있고, 왕족은 왕족으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명은 구별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사명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제사, 즉 예배를 주관하는 사명입니다. 

왕족들의 사명은 진리의 말씀 수호자가 되어 백성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을 계급과 계층으로 나누는 차별과는 다릅니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그러나 맡겨주신 사명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고 책망하십니다. 

왕족들과 백성들이 각각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기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졌다고 하십니다. 

 

1. 먼저, 제사장은 어떠했습니까? 

호세아 4:6–7 (NKRV)

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제사장들이 먼저 지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다”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한다”는 것은 제사장이 많아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사장이 많아질수록 범죄했다는 것입니다. 

 

제사 신학대학원에 들어갈 때, 5대1의 경쟁률이었습니다. 한 학년에 800명이 넘었습니다. 캠퍼스와 기숙사가 모자자 3학년 때는 서울 캠퍼스에서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건물을 증축하여 전 학년이 양지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1학년 때 교회사 교수님이셨던 박건택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학교에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기독교가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목회자가 많아진 것을 부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목사답지 못했고, 성도가 성도답지 못했습니다. 그 중심에 저를 포함한 목회자의 타락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을 빌어주고 권력의 편에 섰던 것입니다. 그런 교회일수록 사람들은 많아졌습니다. 거룩하고 순결한 삶,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 죄를 지적하는 교회들은 쇠락했습니다. 목회자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의 욕구를 채워줄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도입하였습니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강단의 타락은 성도의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모스 8:11 (NKRV)

11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오늘날 인터넷만 열어도 설교가 홍수처럼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생수와 같은 말씀은 찾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디모데후서 4:3–4 (NKRV)

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우리는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을 찾아다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인터넷을 통해 설교를 듣는다고합시다. 어떤 말씀을 듣습니까?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을 찾아 듣습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들으며 “아멘”이라고 할 때는 언제입니까?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언제 우리는 은혜 받았다고 말합니까?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을 들었을 때입니다. 

 

이 부분에서 설교자들이 유혹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성도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목사도 성도들도 진리의 말씀에서 떠나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영혼은 죽어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가 우상숭배에 물든 것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동안 교회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강단에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세워 간증하게 함으로, 예수 잘 믿으면 성공한다는 공식을 은연중 세웠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에게 패배 의식을 심어 주었습니다. 

 

교회 안에 심리학이 들어와 내적 치유라는 명목으로 죄를 상처라고 합리화하며 참된 회개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저와 같은 목사들의 잘못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엄하게 명합니다. 

디모데후서 4:1–2 (NKRV)

1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2. 왕족의 사명입니다. 

왕의 사명은 지난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정제도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왕정제도라는 것은 단순히 왕이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사회는 피라미드 계급 구조가 형성됩니다. 왕이 세워지면, 주변에 귀족 계급이 형성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평민 계급이 됩니다. 왕과 귀족을 섬길 노예들도 생겨납니다. 이 계급을 견고하게 지탱할수록 사회가 안정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계급 질서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문화를 부러워하여 왕을 세우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왕을 세워야 하고, 그 역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신명기 17:16–17 (NKRV)

16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은, 군사력을 말합니다. 보통 국가의 안보는 군사력에서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국가의 안전을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은, 당시 가나안의 왕들이 지방의 부족장의 딸과 결혼하여 중앙집권적 왕권 체제를 강화했던 것입니다.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는 것은, 왕으로서 재물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왕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7:18–20 (NKRV)

18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하나님 말씀을 곁에 두고 그 말씀을 청종하고 그 말씀의 수호자요 집행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의 백성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왕 대부분이 군사력을 키웠고, 아내를 많이 두었고, 재물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수호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 전체가 우상숭배에 물들게 되었습니다. 

호세아 5:10 (NKRV)

10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경계표를 옮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준 기준을 흔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학교에서 통지서가 왔습니다. 양성평등주간이라고 해서, 남자아이들에게 핑크색 옷을 입고 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는 이후 양성 자체를 부정하는 성평등으로 진행되고 이후 동성애를 인정하고 동성애 교육으로 나가는 과정 가운의 첫 단계입니다. 이미 유럽과 서구 사회가 이러한 과정으로 현재 학교에서 동성애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초등학교에서 항문성교의 방법을 가르친다면 어떻겠습니까? 현재 추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평등법이 바로 이러한 것을 법제화하려는 시도입니다. 

 

금번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된 안창호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창조론을 지지한다고 하여 청문회에서 온갖 인격모독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무자격 보수 기독교 탈레반 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뉴스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상을 보니까 진화론은 가설이니 학교에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그의 신앙을 조롱하는 영상들입니다. 

 

기독교인 정치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평판을 의식하거나 표를 받기 위해 신앙을 타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기독교 신앙을 쉽게 타협합니다. 여론에 편승하여 진리를 타협합니다. 

 

저는 두 아이가 가져온 양성평등주간 안내문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가나안땅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구나”라 것을 피부에 와닿게 깨달았습니다. 과연 가나안의 문화에 우리 아이를 집어넣을 것인가? 라는 고민에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족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권위와 권력을 잘 못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모든 권위와 권력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수호하고 집행하는 대리 기관입니다. 

“희수야 남녀는 평등하지만,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은 구별돼. 남자는 남자의 역할이 있고, 여자는 여자의 역할지 있어, 그리고 지금은 여성이 차별받는 조선시대도 아닌데 네가 왜 굳이 핑크 옷을 입고 가야 해?” 그랬더니 희수가 반항적인 자세로 “그러면 엄마는 교장 선생님한테 따질 거야? 대통령한테 가서 따질 꺼야? 라고 합니다. 

 

”교장이나 대통령보다 더 높은 분이 누구야? 하나님이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야.“

여러분, 세상의 권력과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을 비롯한 모든 권력과 권위는 하나님 말씀의 수호자요 집행자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 또한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부모로서 말씀의 수호자요 집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것이 흔들리면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입니다. 온갖 음란과 더러운 죄에 빠지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법에 대하여 불복종의 자유가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의 법이 제정되어 집행되었을 때, 신앙의 선배들은 불복종했습니다.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면 인권 감수성이 없다고 조롱과 비난을 받겠지만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지켜 가야 합니다.

 

3. 이스라엘 족속의 사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신명기 6:4–7 (NKRV)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의 대학진학을 위해 부지런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2:7 (NKRV)

7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사사기 2:10 (NKRV)

10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은 신앙 전수에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전혀 다른 세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는 부모세대와는 전혀 다른 세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된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사사기 2:11–15 (NKRV)

11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14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15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우리 부모님 세대가 실패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교육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녀들을 세상에서 성공시키기 위해 공부시켰습니다. 그 결과 좋은 대학에 갔을지는 모르지만, 교회를 떠나게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 전수에 실패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성공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학교 성적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안식월에 매주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첫 번째 주일에 간 교회는 시골교회였는데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뉴질랜드에서 흔치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들도 열정이 있어 보였습니다. 교회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아이를 보았습니다. 우리 의성이와 연령대가 비슷해 보였습니다. 바로 곁에는 아이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예배 후 먹을 다과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늘 해오던 모습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신앙의 전수는 교육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자녀들과 손주들과 함께할 때 신앙이 전수됩니다. 

 

저는 어릴적 토요일에 할머니와 함께 예배당 청소를 했습니다. 군대에서도 예배당 청소를 했고, 신학교에서도 예배당 청소를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예배당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할머니와 함께 주보를 접었습니다. 지금도 주보를 만들고 접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토요일은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토요일에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하지 않고 주일을 준비 합니다. 

 

신앙은 전수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은 자녀와 손주들에게 전수됩니다. 주일을 지키는 모습, 헌금하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여러분의 말과 행동 모든 것은 자녀에게 전수됩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빠진 것은, 제사장, 왕족, 백성들이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저는 과연 목사로서 하나님 말씀을 잘 수종 들고 있는가를 돌아보겠습니다. 나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권위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할 때 하나님의 진리 말씀의 수호자로 있는가를 돌아봅시다. 나는 부모로서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일을 전수하고 있는가 돌아봅니다. 

그리고 부족했다면 앞으로 이 사명 잘 감당하도록 기도하시고 순종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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