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10.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호세아 9:1–17 (NKRV)
1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2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3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4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5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6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
7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8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
9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10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11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 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13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
14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15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16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17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호세아 9장의 말씀은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되지 않으면 새 번역 성경으로 읽을 것을 권면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정확한 표시가 없어 헷갈립니다. 본문은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 이스라엘 백성의 말을 인용하고 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하기도 합니다. 이것만 구분해도 본문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1)호/1-9절은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2)이/그 중간에 7절을 보십시오. ‘선지자’ 앞에 따옴표를 치시고 ‘큼이니라’뒤에 따옴표를 치시기 바랍니다. “선지가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이 부분은 이스라엘이 호세아 선지자를 비난하는 말입니다.
3)하/다음으로 10-12절을 따옴표로 묶으십시오. 이 부분은 하나님 하신 말씀을 호세아가 직접 인용한 것입니다.
4)호/다음으로 13-14절입니다. 이 부분은 호세아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5)하/다음으로 15-16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6)호/마지막으로 17절은 호세아의 경고입니다.
이렇게 구분하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명절과 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농사력을 따라는 절기가 있었고 이에 더하여 하나님께서 구원의 의미를 담아 주신 명절이 있습니다. 처음 보리를 추수하는 무교절이 있고 여기에 구원의 의미를 담은 유월절이 함께 진행됩니다. 무교절 후 50일이 되는 날 밀 수확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맥추절이 있습니다. 구원의 의미를 담은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농사철이 끝나고 곡식을 저장하는 것을 기념한 수장절이 있습니다. 이때 광야 생활 40년을 기념하는 초막절 또는 장막절을 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절기와 명절을 지키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에 대해 감사하도록 했습니다. 이때 제사와 축제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신명기 16:13–17 (NKRV)
13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절기를 어떻게 지키라고 하셨습니까? 1)“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성 중에 거주하는 레위인,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라고, 말합니다. 모든 백성이 즐거워하라고 해도 될 텐데, 굳이 노비, 레위인, 객, 고아, 과부를 언급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들은 당시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객은 오늘날로 외국인 노동자와 같습니다. 과부는 당시 남성 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남편이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게 되면 여성은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노예 신세로 전락하거나 인신매매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과부의 경우 사회적 돌봄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레위인은 기업, 즉 땅을 분배받지 않고 제사 업무를 전담했기 때문에 열한지파가 드리는 제물과 헌금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기업, 즉 땅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의 생계를 함께 책임져야 했습니다. 이것은 구제의 차원이 아니라 나눔의 차원으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3)택하신 장소에 모였습니다. 15절과 16절에 반복해서 택하신 장소에 모일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헌물이나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신명기 16:17 (NKRV)
17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하나님께 주신 복을 따라 힘대로 드리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지나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족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만큼 드리시면 됩니다.
이렇듯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온 백성이 지정된 장소에 모여 예배하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통해 이스라엘의 공동체성은 확고해지고 단단하게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상전과 노비,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자국민과 객들이 인종, 신분, 출신, 남녀의 차별 없이 하나님 안에서 기쁨의 축제를 지냈던 것입니다. 물론 축제 이후에는 각자의 신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한 해에 세 차례 명절만큼은 모두 평등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절기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는 신분과 인종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비록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에서 차별과 계급 신분에 묶여 서로가 온전히 연합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게 될 평등한 세상을 소망하며 절기를 보낸 것입니다.
이러한 절기 지킴의 모습은 경직된 의식이 아니었고, 축제였습니다. 물론 제사, 즉 예배는 정해진 질서 안에서 지켜졌기 때문에 엄숙하게 진행되었지만 이후 진행된 순서는 축제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즐거워하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16:14–15 (NKRV)
14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이러한 절기지킴이 흩어진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중요한 형식이었음을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러한 절기 지킴이 무너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정해진 장소에 모여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타작마당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호세아 9:1 (NKRV)
1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그들은 기쁨으로 제물을 드리지 않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호세아 9:4 (NKRV)
4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다는 것은 상가집의 올려진 제물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아니라 상가집에 돌려진 제물처럼,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드린 떡은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공동체성이 무너졌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호세아 9:5 (NKRV)
5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절기가 무너진 것은 이스라엘의 공동체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심겨주신 공의의 질서가 무너진 것이기도 합니다. 공의의 질서는 바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를 향해 조롱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호세아 9:7 (NKRV)
7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선지자가 어리석다, 신에 감동한 자가 미쳤다,’ 비난과 조롱을 퍼붓습니다. 그들은 호세아에게 분노했습니다.
8절을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호세아 9:8 (NKSV)
8하나님은 나를 예언자로 임명하셔서 에브라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예언자가 가는 길목마다 덫을 놓았다. 하나님이 계신 집에서마저, 너희는 예언자에게 원한을 품었다.
그러면서 기브아 사건을 언급합니다.
호세아 9:9 (NKRV)
9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시 이스라엘의 타락이 기브아 시대와 같다는 것입니다. 기브아 시대라는 것은 기브아에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참혹한 역사 중 하나입니다. 이 사건을 이해해야 호세아 전체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브아 시대, 기브아 사건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기브아 사건은 사사기 19-20장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의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합니다. 레위인이 첩을 맞이했다는 것 자체가 불길합니다. 레위인은 우리가 알다시피 제사 업무을 전담합니다. 누구보다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할 레위인이 첩이 있는 것은 당시 시대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첩은 무슨 일 때문인지 화가나서 남편을 떠나 베들레헴의 아버지집에서 넉 달을 지내게 됩니다. 어머니가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보아서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성으로 추정됩니다. 그녀가 아버지 집으로 도피한 것은 아마도 남편의 폭력성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후 진행되는 모든 내용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사 개월간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레위인은 아내 데려올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는 여자의 마음을 달래서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장인은 사위를 기쁘게 맞이합니다. 그런데 딸과 사위를 돌려보내지 않고 지체합니다. 성경에는 사흘 동안 먹고 마셨다고 하는데, 아마도 진탕 술 파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흘째가 되는 날 레위인이 아내를 데리고 떠나려고 하자 장인은 또다시 붙잡습니다. 음식을 든든하게 먹고 떠나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또 다시 술파티를 벌입니다. 그래서 또 하루를 보냅니다.
다섯 째 날도 장인은 사위를 붙잡습니다. 장인은 무엇 때문에 레위인과 딸을 보내지 않으려고 할까요? 장인은 알았던 것입니다. 레위인의 폭력성을 말입니다. 그래서 붙들었던 것입니다. 레위인은 장인을 뿌리치고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향합니다.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한 시간입니다. 겨우 도착한 곳이 여부스입니다. 동행했던 하인은 이곳에서 머물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레위인은 이곳은 이방인들 사는 성읍이니 동족이 사는 기브아로 가자고 합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 성읍으로 들어갑니다.
날은 이미 저물었습니다. 이들은 성읍 광장 쯤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나느네가 성읍에 들어와 광장에 자리하고 있으면 누구든 그를 영접하여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들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공동체성이 무너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 19:15 (NKRV)
15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러던 중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 돌아가는 길에 이들을 발견합니다. 노인은 이방인입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은 아닙니다. 노인은 신속하게 이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먹을 것과 잠자기를 제공합니다.
사사기 19:20–21 (NKRV)
20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편안하게 쉬고 있을 때입니다. 갑자기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성읍의 불량배 들이 들이닥친 것입니다. 그들은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드리며 고함치기 시작합니다.
사사기 19:22 (NKRV)
22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레위인을 당장 끌어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는 것은 성폭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성애자들이 집단으로 성폭행하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인은 밖으로 나가 그들과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내 집에 들어온 사람에게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대신 내 처녀 딸과 레위인의 첩이 있으니 그들을 욕보이던지 맘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사사기 19:24 (NKRV)
24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불량배들이 듣지 않자,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붙잡아 끌어내어 그들에게 줍니다.
사사기 19:25 (NKRV)
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여인은 밤새 능욕을 당하고 새벽에 노인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죽을힘을 다해 기어 온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난 레위인은 집을 떠나려고 문을 엽니다. 그는 문 앞에 엎드려진 여인을 발견합니다.
사사기 19:28 (NKRV)
28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개역개정 성경이나 새번역 성경은 ‘그의 시체’라고 했지만 원문에는 시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녀라고만 표현되었습니다. 그녀가 아직 죽은 상태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레위인은 여인을 나귀에 싣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엽기적인 행각을 벌입니다. 칼로 여인을 열두 토막 낸 것입니다, 그리고 조각난 신체를 하나씩 포장하여 열두지파의 리더들에게 보냅니다.
이 소식은 이스라엘 전역에 삽시간에 알려졌고,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입니다. 그들은 레위 사람을 불러 어떤 경위로 이러한 일을 행했는지를 묻게 됩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가 속한 기브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 잘못은 숨기고 모든 것이 베냐민 지파의 소행이라고 둘러댑니다.
사사기 20:5 (NKRV)
5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이에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각 지파에서 군인을 모집해 연합군을 꾸려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들을 징계할 것을 결의하게 됩니다. 베냐민 지파는 불량배는 내주라는 형제 지파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전쟁을 선포합니다. 베냐민 지파는 특수부대를 꾸려 출정합니다. 결국 동족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베냐민 지파는 전멸합니다. 성읍 안에 있는 여성과 아이를 비롯한 무고한 생명이 죽게 됩니다. 비극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11지파는 자신의 딸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지 않기로 결의하고 베냐민 지파를 완전히 소멸시킬 것을 결의합니다.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후에 이것이 얼마나 잔혹하고 잘못된 결정인가를 깨달은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의 존속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합니다. 그들의 미스바에 모일 때에 참석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을 쳐들어가 진멸하고 처녀 사백 명을 포로로 데려와 베냐민 지파에게 주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실로에 춤을 추러 오는 여성들을 보쌈하여 데려가라고 제안합니다.
사사기 21:23 (NKRV)
23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사사기 19-20장의 내용을 간추려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기브아 사건이었고,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기브아 시대란 마치 이러한 모습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무엇 때문에 성결해야 할 레위인은 첩이 있었던 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레위인의 장인은 자신의 딸의 불행을 알면서도 자기 딸을 보호하지 않았을까요?
무엇 때문에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사람들은 나그네를 영접하지 않았을까요?
무엇 때문에 기브아 사람들 가운데 동성애자들이 판을 치고 있었을까요?
무슨 이유로 노인은 레위인을 감싸고 대신 자신의 딸과 레위인의 첩을 동성애자들에게 내어 주려 한 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레위인은 자신의 아내를 불량배들에게 내어 준 것일까요? 그러고도 밤에 잠을 잘 수 있었을까요?
무엇 때문에 레위인은 밤새 능욕당하고 돌아온 아내를 죽여 열 두 토막을 낸 것일까요?
무슨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미스바에 모여 베냐민 지파를 전멸할 결정을 했을까요?
무엇 때문에 한 지파가 멸절될 상황에서 길르얏 야베스 사람들을 도륙하고 인질로 붙잡은 처녀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었을까요?
그것도 모자라 축제 때 춤추러 오는 여성들을 보쌈하여 베냐민 지파를 주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총체적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습니다. 여성을 물건 취급합니다. 약자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욕구를 채웁니다. 동족끼리 무고한 생명을 학살하면서도 도무지 죄책감이 없습니다. 이것이 기브아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당시 시대, 즉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대가 기브아 시대처럼 되었다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일어난게 된 것일까요?
사사기 19장을 펴 보시겠습니다.
사사기 19:1 (NKRV)
1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그리고 21장 마지막 절을 보겠습니다.
사사기 21:25 (NKRV)
25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왕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왕이 되셔서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삶의 기준이요 질서요 준칙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왕을 세울지라도 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의 수종자일 뿐입니다.
그때에 왕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성경의 진리를 무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더 이상 성도들의 기준과 원칙이 아니라 각자가 옳고 그름, 선과 악을 판단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러한 끔찍한 일들이 일상의 삶에서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한 유럽과 영미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간통죄가 폐지되고, 낙태죄가 폐지되고, 동성애를 합법화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2015년에 간통죄가 폐지되었고, 2021년 낙태죄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대법원은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했습니다. 이는 동성애 합법화로 가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불과 10년 사이에 가정과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해 준 법들이 신속하게 폐지되었습니다. 사회적 합의나 논의 과정도 없이 말입니다.
여러분! 법이 바뀌면 사회는 신속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법 제정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간통죄 폐지 후에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가정이 있는 남성과 여성들이 간통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산에 가도, 카페에 가도, 극장에 가도 불륜들이 있습니다. 애인이라고 말합니다. 36주 배 속에 아이를 죽이면서 그것이 살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묻지 마 살인, 시신 훼손과 같은 생명을 잔혹하게 죽이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제정되면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향상되고 존엄성이 높아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갖 난잡하고 더러운 죄들이 난무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법은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죄성을 통제하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이것이 하나하나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0:6–8 (NKRV)
6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우리 인생은 풀처럼 시들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흔들 수는 없습니다. 찬란한 문명도, 인간의 모든 지혜와 과학의 산물들도 시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설 것입니다.
그 말씀을 견고하게 붙드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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