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13.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호세아 12 (NKRV)
1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2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3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7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8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9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10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11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12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13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 받았거늘
14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드러내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역사는 영어로 History입니다. 그의 이야기, 즉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에 개입하여 이루어진 이야기들이 역사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이해할 때 하나님을 배제하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합니다. 인간이 역사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이끄시고 주관해 가시는지를 이해야 합니다. 세계 역사, 민족의 역사 그리고 개인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중심적 시각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로부터,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일까지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사건들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역사가 책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때 그렇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오늘도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이 바뀌지만 사람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급속하게 변하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들은 달라집니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변하는 것을 형식이라고 한다면 불변하는 것을 본질이라고 합니다,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악한 본성은 100년 전이나 천 년 전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또한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전에도 사랑이었고, 지금도 사랑이며, 앞으로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전에도 죄를 미워하셨고, 지금도 미워하시며, 앞으로도 미워할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드러나는 형태는 달라져 나타나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가운데 일어난 반역의 역사를 통해 우리를 교훈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죄인인지, 그러한 죄인을 대하시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는 오래전의 역사지만, 현재의 우리 역사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0:6 (NKRV)
6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이러한 일은 구약의 역사를 말합니다. 구약의 역사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10:11 (NKRV)
11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성경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받고 실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너희는 성경의 역사를 통해 바른 진리를 깨우치라는 것입니다.
서론이 길었던 것은,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야곱 이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야곱과 같다고 하십니다. 오래전 야곱의 모습은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의 모습에서 재현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재현됩니다. 야곱의 삶이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어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칩니다.
야곱의 삶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합니다. 20년 동안 임신하지 못하던 리브가는 하나님께 간구하여 쌍둥이를 잉태합니다. 리브가는 태속의 두 아이가 계속해서 싸우는 것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하나님은 태 중에 두 민족이 있다고 하시면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해산 때가 되어 쌍둥이가 태어나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에서라고 이름하고, 후에 나온 아이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다 하여 야곱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은 ‘속이라는 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름에 걸맞게 자기 힘과 지혜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야곱의 연약함
성경은 야곱의 연약함과 연관된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권리를 가로챈 사건입니다. 야곱은 사냥하고 돌아온 에서가 굶주린 상태에서 자신이 만든 팥죽을 요구할 때 장자의 명분과 바꾸자고 요구하여 얻게 됩니다. 장자의 명분이라는 것은 가정을 대표하는 가장의 권위를 계승하고, 다른 형제보다 2배의 몫을 상속받으며,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을 전수하는 신앙 계승자의 특권을 말합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소중히 여겼지만 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기회를 노려 장자의 명분을 요구했고, 에서는 쉽게 포기한 것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주도한 일입니다. 그것은 언약 자손의 축복을 가로챈 일입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습니다.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태속에 있을 때 받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큰자가 작은자를 섬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은 태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할 자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았습니다. 두 번째는 에서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살아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장성하여 가나안의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것은 에서가 어릴 적부터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았던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이삭과 리브가에게 고통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6:34–35 (NKRV)
34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녀는 비록 에서가 첫째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둘째인 야곱을 통해 흘러가야 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노년에 언약을 계승하는 축복기도를 하려 할 때 야곱을 들여보냈던 것입니다. 이삭은 눈과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야곱은 그를 죽이려는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주합니다. 형의 분노가 가라앉으면 돌아가려고 했던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서 20년 이상을 거주하며 결혼하고 12명이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12지파로 발전합니다.
세 번째 그의 연약함을 드려낸 사건은 그가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그가 모든 가축을 포함한 재산을 가지고 고향 땅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형 에서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비겁한 행동을 합니다.
창세기 32:7–8 (NKRV)
7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그는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동행자와 재산을 두 떼로 나눕니다. 만일 형이 첫 번째 동행자들에게 보복을 하게 되면 도피할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염려와는 다르게 형 에서는 환대했지만 말입니다.
네 번째 사건은 그가 에서를 만나기 전날 얍복강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모든 가족들을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한 후 야곱은 홀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날 밤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오늘 본문을 4절을 보면,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입니다. 3절에는 ‘하나님과 겨루되’라고 했으니 하나님이 보낸 천사와 겨룬 것은 곧 하나님과의 대결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조금 후에 설명하겠지만, 이 대결은 속이는 자 야곱의 의지와 그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려는 하나님과의 대결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하나님과 싸워 이기려 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이에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고관절)을 쳐 싸움을 끝내십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야곱은 인생을 자기 힘과 지혜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쳤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하나님의 돌보심이었습니다. 자기 가족이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대결하여 끝까지 싸웠던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의지력이 강한 사람인지는 삼촌 라반의 집에서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보였던 모습에 드러납니다. 그는 7년을 일했고, 신혼 첫날밤 라엘의 언제 레아와 동침한 사실을 알고, 다시 7년을 일했습니다. 그가 삼촌 라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31:40–41 (NKRV)
40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호세아12:12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호세아 12:12 (NKRV)
12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의 인생을 정리하면, 그는 자기 삶의 평안과 축복을 자신의 힘으로 쟁취하려고 애썼던 사람입니다.
우리도 야곱과 같지 않습니까? 우리 삶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우리 가족이, 우리 자녀가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 가운데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이를 위해 얼마나 애쓰며 살아오셨습니까?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자녀들에게 좋은 것 먹여주고, 입혀주고, 누리게 하려고 얼마나 희생하셨습니까?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으면 내가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는 고관절이 부러져 절뚝거리면서도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창세기 32:26 (NKRV)
26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장면 하나가 야곱이 어떤 사람이며 그가 살아온 인생이 축약해 보여줍니다.
그는 절뚝거리면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자신의 삶을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의지력을 불태워 잘살아 보려고 합니다. 성실하게 일하여 내 삶의 풍요와 안정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는 분이라면 그 분과 싸워서라도 나와 가족 그리고 자손들의 삶을 복되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주도권은 하나님께서 있고, 하나님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며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내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지 않거나 내 책임이 간과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의 자녀들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은혜로 주어집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기에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내려 주십니다.
야곱은 이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 리브가도 만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큰자가 작은자를 섬길 것이라고 할 때, 그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에서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있었다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야곱을 장자로 세워주시고 언약의 축복을 부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의루기 위해 불의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과정과 절차를 통해 선한 뜻을 이룹니다. 리브가는 에서가 이방여인과 결혼했을 때 조급했던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이 흘러가서는 안되는데, 여전히 하나님은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을 속여 야곱이 언약적 축복을 받게 한 것입니다.
야곱 또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에서를 만나기 전 동행자와 재물을 두 떼로 나누어 뒤에 숨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았던 인생이 자기 능력과 지혜로 살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물론 중간중간 한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었지만, 자신의 믿음은 항상 결정적일 때 드러납니다. 그는 에서를 만나기 전에 자신의 불신앙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서 12장에서 야곱의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은 야곱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살려고 합니다.
호세아 12:7–8 (NKRV)
7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8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이스라엘은 야곱처럼, 자기 수고로 재물을 얻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드리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생을 삽니다. 내가 내 인생을 주도해 갑니다. 모든 판단과 결정을 내가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상관없이 내 소견이 옳은 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삶의 방향키를 쥐고 운전해야만 안전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삶이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은혜로 산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이룬 가족과 소유한 모든 재산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지혜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가 내 인생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인생이 피곤합니다. 조급하고, 두렵고, 걱정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책임감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책임져야 하고, 자녀들도 내가 책임져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바로 서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거든요. 점점 건강도 무너지고, 판단력이나 분별력도 예전만 못합니다. 조급하니까 더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피곤합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주도해 가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 삶의 역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역사입니다. 내 인생에 일어난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에서 벗어난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었던, 안좋은 일이었던, 성공한 일이었던 실패한 일이었던, 실수로 한 일이든, 고의로 한 일이든,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때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붙드시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연로하신 부모님도 연약한 자녀들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얍복강가에서 고관절에 상처를 입은 야곱은 절뚝이면서도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당신에 내게 축복하기 까지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의 처절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32:27–28 (NKRV)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은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을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까요? 이 말은 야곱을 칭찬하거나 인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야곱아! 지금껏 하나님과 사람과 씨름하듯 살아온 인생이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 삶을 주관하시고, 은혜로 모든 것을 허락하셨는데, 너는 하나님과 사람들과 싸우듯 살아온 인생이었다’라는 것입니다.
너는 이미 축복을 받았고, 지금도 축복 가운데 있으면 앞으로도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담대하게 형 에서를 만나라는 하나님의 격려이기도 합니다.
다음 날 야곱은 그토록 두려워했던 형 에서를 만나게 됩니다. 에서는 야곱을 환대했습니다.
그렇게 형과의 상봉 이후 가족들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요?
야곱이 세겜에서 살 때입니다. 딸 디나가 세겜의 딸들을 보러 갔다가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게 됩니다. 이 일을 알게 된 야곱의 아들들은 추장 세겜과 성읍의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혼인을 허락하겠다고 제안하고, 그들이 세겜의 남자들이 할례를 행하고 통증상태로 아파할 때 쳐 들어가 세겜의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게 됩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야곱은 두려워하게 됩니다.
창세기 34:30 (NKRV)
30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야곱은 이때 알았을 것입니다. 내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 순간도 평안할 수 없음을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35:1–5 (NKRV)
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라 하십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으라 하십니다. 벧엘이 어떤 곳입니가?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주할 때, 머물렀던 곳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습니다.
창세기 28:14–15 (NKRV)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야곱을 떠나지 않고 지키시며 그의 삶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동안 벧엘의 하나님, 그곳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믿었지만 그 하나님이 자신의 삶의 주관하시며 은혜로 이끄심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딸 디나의 일로 결국 세겜 땅에서 가족 모두가 위험에 빠진 상태에서는 그는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라 하십니다. 그때의 약속을 기억해 보라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씀을 들은 야곱에 했던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는 자기 집안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렸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야곱의 가족은 어느 순간부터 이방신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섬기면서 동시에 이방신도 섬긴 것입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는 것은, 이방인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예배자로 서라는 것입니다.
야곱과 가족들이 예배자로 서서 벧엘을 향하여 갈 때, 하나님은 사면 고을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셔서 아무도 야곱 가족을 추격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호세아 12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호세아 12:6 (NKRV)
6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야곱처럼, 하나님께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있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인애와 정의 지키며, 하나님 말씀을 생명의 도리로 붙들고, 너희 마음에 긍휼과 사랑을 채우고 하나님만을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것들을 소망하지 말로, 하나님 만을 바라라는 것입니다.
에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1:28 (NKRV)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을 주셨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결같은 은혜로 함께 하셨습니다.
호세아 12:13 (NKRV)
13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 받았거늘
야곱을 지키고 인도했던 선지자,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보호한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께서 우리 삶을 붙드시고 인도하십니다. 그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주님께서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벧엘에서 야곱에게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키신 것처럼, 우리 삶도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우상을 버리고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호세아 12:6 (NKRV)
6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