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5. 인생길에 엎드러졌을 때
호세아 14:1–9 (NKRV)
1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2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3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4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5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7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8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9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호세아 강해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는 14번의 호세아강해를 통해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전반적인 내용은 이스라엘을 질책하시고 책망하시는 내용입니다. 때로는 설득하고, 경고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우상을 섬기고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진노는 엄중하고 무서웠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설득, 경고, 책망, 진노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가 시작되는 1-3장에서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을 음란한 아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인격적 친밀함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또 아버지와 아들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평범한 자녀가 아니라 음란한 자녀입니다.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아 음란한 자녀를 낳습니다. 음란한 자녀는 고멜이 바람피워서 낳은 아이입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바로 우리가 그러한 자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음란한 아내이고, 음란한 자녀와 같습니다.
음란한 아내, 음란한 자녀같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떠나려고 합니다. 세상 쾌락과 재미를 찾아 하나님을 떠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결한 신부, 거룩한 자녀의 자리를 이탈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이 호세아서의 주제입니다.
어린 자녀를 키우다 보면 책망하고 훈계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잘못에 대한 지적입니다. 사랑하는 만큼, 기대하는 만큼, 질책은 길어집니다. 호세아서 대부분이 질책과 책망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무섭게 경고하시는 그 말씀에서 애타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긴 책망이 끝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내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호세아 14:1 (NKRV)
1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결국 네가 엎드러지지 않았느냐? 아버지 품을 떠나 비참한 신세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경고했건만,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 엎드러졌습니다. 엎드러졌다는 것은 실패했다는 것이고, 고통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바라보시면서 안쓰럽고 불쌍한 것입니다. 거봐라! 네가 하나님 말씀 안 들어서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느냐?는 질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상하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불의함’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함으로 엎드러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실패하고 고난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났기 때문에 겪는 고난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인 분들은 스스로 깨닫습니다. “아! 내가 불의함으로 엎드려졌구나” 압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아 이 고난을 겪는구나” 압니다.
이때 기를 쓰고 일어서려고 할 것입니다. 내가 붙잡고 의지할 것들을 찾을 것입니다. 내 주변에 나를 도울 사람이 있는가? 인맥을 의지할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자산은 얼마가 되는가? 돈을 의지할 것입니다. 그 동안의 내 경험, 나의 판단력, 분별력, 나의 지혜, 나의 능력을 의지할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호세아 14:3 (NKRV)
3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앗수르의 구원은 외교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을 타지 않는다는 것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의미합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것, 우상입니다. 우상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우상은 내가 의지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아무런 의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이 넘어짐은 불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을 잘못짚었고, 따라서 그 해결책도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생긴 인생의 문제는 다른 것을 의지하여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붙들었던 것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더 이상 그 고통에서 헤매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예레미야애가 3:33 (NKRV)
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하나님께서는 속히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이사야 55:7 (NKRV)
7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예레미야 3:12 (NKRV)
12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요엘 2:12–13 (NKRV)
12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의 품을 떠나 엎드려졌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됩니다. 비록 불의한 자들이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우사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우리에게 내릴 재앙을 거두어 주십니다. 아무리 못나고 잘못해도 돌아가면 받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만합니다. 고집도 셉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봅니다. 내가 붙들 수 있는 것들을 다 붙듭니다. 어떤 분들은 무당을 찾기도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악한 영들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어려움이 생기면 자신의 아이를 몰렉 신에게 바치기도 했습니다. 인신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말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일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돌아가야 할까요?
호세아 14:2 (NKRV)
2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첫 번째 말씀을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돌아간다는 것은 내가 의지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고 내 삶의 질서와 원칙으로 세우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임하시는가? 성령님으로 임하십니다. 성령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영이시지만 인격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하실 때 말씀 가운데 말씀을 통하여 임하십니다. 말씀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성경에 담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그 말씀을 이해하게 하십니다. 그 말씀에 감동하게 하십니다. 그 말씀을 신뢰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순종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진리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 생각, 뜻은 대부분 세상 풍조에 영향을 받습니다. 주변 사람, 주변 환영, 전문 서적, 미디어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며 우리의 사고, 생각, 뜻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잘못된 정보와 확인되지 않는 사실들이 진리 인양 포장하여 우리를 오염시킵니다.
진리는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첫째, 불편성.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대나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때는 잘못되었지만, 지금은 옳다’라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과학적 진리도 계속해서 바뀝니다. 새로운 이론이 현재의 이론을 무너뜨립니다. 과학이라고 무조건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보편성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도 진리이고 저기서도 진리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진리이고,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진리여야 합니다. ‘여기서는 진리이지만 저기서는 아니다’라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보편성을 지녀야 합니다.
셋째, 영원성. 영원해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천년 후에도 같아야 진리입니다. 이처럼, 불변성, 보편성, 영원성이라는 세 요소를 충족해야만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이 진리라고 믿고 있고 신뢰하고 있는 것들을 과연 진리입니까?
여러분들이 붙들고 있는 것들을 과연 진리입니까? 불변하고, 보편적이고, 영원한 것들입니까? 진리를 붙들지 않으면 쉽게 넘어집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늘 흔들리고 무너지고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오직 진리만이 우리를 견고하게 합니다.
하나님만이 불편하시고, 보편적이며, 영원합니다.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은 썩고 쇠하고 사라집니다. 하나님만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기록한 성경만이 진리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보편적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영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한된 이성과 지혜로 진리의 말씀을 판단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의 말씀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경험 세계에 갇혀 있어,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틀렸고 성경이 옳습니다. 과학이 틀렸고 성경이 옳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판단했습니다. ‘네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냐?’ ‘네가 어떻게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죄 용서를 선포하느냐?’ ‘네가 너에 대해 증언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13 (NKRV)
13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요한복음 8:14 (NKRV)
1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어디서부터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너희가 나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경험 세계에 사는 너희가 경험 세계를 넘어서 온 나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한합니다. 시공간의 제약 가운데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어떻게 태어났으며 죽어 어디로 가는지 아십니까? 유한한 우리가 나름대로 이론을 만들고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진리가 아닌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품과 뜻을 계시하신 말씀을 진리로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만이 불변하고 보편적이며 영원합니다.
이사야 40:8 (NKRV)
8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성도의 회복은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말씀 중심의 신앙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세상 지식에 시간을 쏟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예배하기 위해 그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그 뜻대로 살기 위해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대할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이 판단하는 태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너진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엄중한 말씀을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불순종 이전에 말씀을 판단했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를 말씀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이 한마디 질문에 엎드러졌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하나님은 에덴의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이 마치 에덴에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 말씀을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판단의 대상이 아닙니다. 믿고 순종해야 하는 진리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판단할 때,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사단은 선악과를 먹어도 정녕 죽지 않을 것이라며 하나님 말씀에 정면 도전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하여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뜻과 질서 안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하나님의 구속으로부터 해방하여 자유롭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자유로운 인생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의 종, 사단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인생은 비참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떠난 인생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허무와 외로움 속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 삶의 중심에 세우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삶의 질서와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선과 악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합니다.
다음으로 인생길에 엎드러졌을 때,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말씀의 회복과 동시에 예배가 회복되야 합니다.
호세아 14:2 (NKRV)
2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아뢰기를’ 기도입니다. 어떤 기도입니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회개입니다. ‘선한 바를 받으소서’. ‘선한 바’는 자신을 말합니다. 불의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선함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선한 것으로 받으십니다. 불의한 자식일지라도 부모에게는 선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신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와 종으로라도 써 주시길 간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품에만 살게 해달라는 간청입니다.
이어서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입술의 열매는 찬양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수송아지를 드리는 대신에 우리가 입술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찬양은 자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화려함을 자랑하던 입술이 이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부와 명예를 자랑하던 입술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자랑하던 입술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고 주님께 돌아와, 우리의 불의함을 자각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입술의 열매인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는 것. 이것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결국 엎드러진 우리가 일어설 수 있는 길은 예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예배가 회복되야 합니다.
예배의 회복 없이는 엎드러진 우리가 일어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난 번 살펴본 야곱을 떠올려 보십시오. 세겜의 일로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아라.’’ 무슨 말입니까? 네가 의지하던 것 내려놓고 이제 예배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5:2–3 (NKRV)
2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갈 때 하나님은 사면 고을로 두렵게 하셔서 아무도 야곱의 사람들을 건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설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 때 있었던 전쟁기사가 나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역대하 20:1–2 (NKRV)
1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2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사람들이 연합하여 남유다를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위중한 상황입니다. 당연히 여호사밧은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때 그가 한 일이 이것입니다.
역대하 20:3–4 (NKRV)
3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4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역대하 20:12–13 (NKRV)
12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선지자를 통해 전략을 주십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역대하 20:21–23 (NKRV)
21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하나님의 전략이 무엇입니까? 바로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예복을 입은 찬양대가 맨 앞에 섭니다. 그 뒤에 군대가 행진합니다. 그들의 찬양은 이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그 찬양이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그들을 쳐 진멸시키셨습니다.
여호사밧왕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역대하 19:4 (NKRV)
4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살더니 다시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두루 다니며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그는 여호와를 떠난 백성들을,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길이 무엇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듣고 여호와께로 나가, 금식하며 기도하며 여호와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일에 함께 모여 찬양하고 기도할 때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던 악한 권세가 물러갑니다.
호세아 14장의 나머지 구절들은 회복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호세아 14:7 (NKRV)
7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도 불의로 말미암아 엎드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와 찬양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예배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반드시 회복시키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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