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24-09-17 20:33

7. 참된 회개

joywo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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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강해 7. 참된 회개

호세아 6:1–11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진정성을 상실한 회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호세아서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입니다. 표면적으로 읽어보면 이스라엘이 회개하는 듯 보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가 여호와를 힘써 알자”.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이 말씀을 근거로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는 찬양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뒤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1절이 “오라”와 3절 마지막 “하니라” 뒤에 따옴표를 치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라”...“하니라” 이 말은 지금 누가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이스라엘입니까?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회개하는 장면입니다. 6장이 시작되기 전에는 어떤 말씀입니까? 5장 전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5장에서 이스라엘의 타락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제사장, 왕족,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의 사명을 저버리고,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우상숭배에 물들었다고 하십니다. 가나안의 삶의 방식을 따랐고 그들의 신까지 섬겼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너희가 죄를 깨닫고 돌이킬 때까지 너희와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호세아 5:15 (NKRV)
15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 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 가리라” “내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회개할 때까지 기다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낮게 하실 것이라.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어서 6장4절부터 다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타락을 책망하시는 내용입니다. 
그 사이에 낀 1-3절은 과연 이스라엘이 회개하는 내용일까요? 
그들은 회개하는 듯 보이지만, 불성실한 회개, 참된 회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이렇게 말하지만,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3절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위선적인 회개, 진정성을 상실한 회개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로 타락했는가 하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돌아가면 받아 주실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고,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가기만 하면 즉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를 받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성 있는 회개의 자세가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이럴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깨닫는 사람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이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떨면서 나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물을 들고 제단에 제사를 드리면 언제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받아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6:6 (NKRV)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스라엘은 여전히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긍휼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은 알았지만,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쉽게 죄를 짓게 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두려움은 무서워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거룩 앞에 설 때 느끼는 경외감, 하나님의 권능 앞에 느끼는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웅장한 자연 앞에 서 본 사람은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경외감을 느낍니다. 두려움도 갖습니다. 하물며 무한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경외심을 가지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의 비참함에 대해 깨닫게 되면 감히 이스라엘처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 고는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체험적으로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지금 살아서 내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실제로 깨닫고 믿을 때 그래서 그 하나님의 지금 여기 살아계신 분으로 믿고 경외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그 결과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나안의 문화에 물들었고 그들이 섬기는 신을 섬겼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고난입니다. 

호세아 5:15 (NKRV)
15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 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고난을 통해 자신을 찾게 하십니다. 고난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우리를 연단하여 성장시키기 위한 고난이 있고, 죄로 인한 징계로서의 고난도 있습니다. 고난의 원인은 다양하여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고난은 징계 차원에서의 고난입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들의 침략을 받게 되어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징계로서의 고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고난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 고난은 내 힘과 지혜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고난입니다. 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고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을 고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 물질과 능력과 의지력으로도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때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삶에 이러한 고난이 찾아옵니다. 고난이 아닌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좀 더 고상한 방법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자신에게도 돌아오게 하실 수는 없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방법을 선택하셨을까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고 붙들고 의지할 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절망적인 질병 앞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도무지 일어설 수 없는 인생의 실패 앞에서 하나님께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고난을 통과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고난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전까지 하나님은 피상적이고 관념적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겪고 통과하고 극복하면서 피상적이고 관념적이었던 하나님이 내 곁에 살아계신 분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시편 119:67 (NKRV)
67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편 119:71 (NKRV)
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성도들은 징계로 인한 고난이든 우리를 연단하여 성숙시키려는 고난이든, 고난을 유익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오히려 죄를 범하면서 고난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무서운 심판은 버림받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6–8 (NKRV)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자녀이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잘못하고도 징계를 받지 않으면 사생자, 즉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녀들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날 때 징계를 받습니다. 그 징계가 고난을 겪는 것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반복되는 싸이클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이때 징계의 방법은 고난인데, 주변 민족들의 침입을 받고 압제를 당하게 됩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도자(사사)를 세우셔서 열강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사사기 3:7–9 (NKRV)
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9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하나님의 그의 백성들, 자녀들이 죄를 범할 때 진노하십니다. 진노는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에서 발현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긍휼함이 풍성하십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안타까워하십니다. 죄인들이 죄를 깨닫고 돌이키기만 하면 다시금 품어주십니다. 하나님이 품지 못할 죄인은 없습니다. 그만큼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서 가나안의 삶의 방식을 부러워하고 그들과 동화되어 살아가고 결국 그들의 신까지 섬기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언제든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 사명을 감당하길 원하셨습니다. 

그 죄를 깨닫게 하려고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너희 삶에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징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의 길로 가면, 여러 차례 경고하십니다. 그 길이 아니라고, 주변의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하실 때도 있고, 설교 말씀을 통해 깨닫기도 합니다. 또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깨닫게도 하세요. 분명한 것은 마음에 평안이 없어요. 이러한 여러 가지 것들을 통해 우리를 경고하십니다. 그런데 끝까지 내 생각을 고집하고 하나님 뜻을 저버리면 결국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징계를 통한 고난의 목적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이 달성되면 고난은 끝납니다. 모든 고난이 죄로 인한 징계는 아닙니다. 이미 고난의 이유는 다양하고 우리가 그것을 다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죄로 인한 징계로서의 고난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끝이 납니다. 

만일 우리 삶에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가 없었다면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그때는 참 죽을 것처럼 힘들었지만, 그 고난 때문에 겸손을 배웠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다시는 그와 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인생이 가장 복된 삶임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도 있습니다. 다시 과거의 잘못된 삶으로 돌아가는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충성하겠노라고, 다시는 과거의 잘못된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결단하고 삶의 변화가 있는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이전의 죄악 된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는 듯 보였습니다. 고난 중에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그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삶이 평안히 졌을 때, 또 다시 가나안의 삶의 방식을 동경했습니다. 그들과 어울려 살았고, 결국 그들이 섬기는 신을 섬겼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부르짖으면 언제든 달려가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반복됩니다. 
사사기 3:12 (NKRV)
12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사사기 3:15 (NKRV)
15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사사기 4:1–2 (NKRV)
1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사사기 4:3–4 (NKRV)
3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4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사사기 6:1 (NKRV)
1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사사기 6:7–8 (NKRV)
7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8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여러분, 하나님에게는 공의의 성품도 있지만, 긍휼과 자비가 크셔서 그의 백성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으면 달려가십니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러자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6:1 (NKRV)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는 진정성 있는 회개가 아닙니다. 

참된 회개

1. 세상을 향했던 마음을 하나님께도 돌이키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탕자의 모습과 같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의 유산을 상속받아 아버지 품을 떠나 독립하여 살길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유산을 미리 받은 아들은 자신이 가진 돈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돈을 탕진하며 쾌락을 추구하며 삽니다. 재산을 완전히 탕진한 아들은 결국 돼지를 치는 신세가 됩니다.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이때 그가 깨닫습니다. 그의 독백입니다. 
누가복음 15:17–19 (NKRV)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스스로 돌이켜’라는 말은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은 정신이 들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영어성경은(ESV) When He came to himself 그가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NIV도 When he came to his sence 그는 자신의 감각으로 돌아왔다. 즉 돌아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돌이켜’라는 단어는 원어로 ‘에르코마이’인데 이 단어의 뜻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는 ‘돌아가다’라는 의미입니다. 

탕자는 그 순간에 아버지 품을 떠난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비록 아버지품에 안기지는 않았지만 그 깨달음의 순간 그는 ‘에르코마이’ 즉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자고 결단한 것입니다. 회개의 첫 번째 단계가 이것입니다.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버지 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미 탕자는 세상길에서 돌아섭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가면서 할 말을 준비합니다. 

누가복음 15:18–19 (NKRV)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탕자가 준비한 말은 이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죄인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나를 그냥 종으로서 받아 주세요. 아들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저 아버지 품에서만 살게 해 주세요.”

회개의 두 번째 단계는 철저한 회개의 고백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저 아버지 품에만 살게 해주세요. 노예라도 좋으니 아버지곁에만 있게 해주세요.”
놀라운 것은, “내가 일어나”라고 할때 ‘일어나다’라는 단어는 ‘아니스테미’입니다. 
이 단어는 일어나다 라는 의미도 있지만 ‘부활하다’라는 의미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단어를 일부러 사용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품을 떠난 것은 죽음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갔을 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15:24 (NKRV)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집을 나갔다 돌아왔다고 하지 않고,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회개라는 것은 다시 살아난 사람, 즉 부활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는 회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죽은 우리를 먼저 살리시고, 즉 부활시키시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아버지께도 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20 (NKRV)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일어나서’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고 말합니다. ‘에크코마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돌아가다는 아들의 지위가 회복된 것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가 있어야 할 아들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는 것은 죄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가 되었는가를 깨닫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아버지는 탕자를 받아 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자세입니까? 
누가복음 15:20–21 (NKRV)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잔치를 베푸시고 아들의 지위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만,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어떠한 죄인이지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성 있는 회개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죄인인지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자녀로서의 축복을 주시지만, 내가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말씀하시면 이렇게 시작하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왜 심령이 가난해진 것입니까?
심령이 가난하다는 단어는 시편 51편에 등장합니다. 
시편 51:17 (NKRV)
17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범죄하고 나서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죄인인가를 철저하게 깨닫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상한 심령인데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시고 죄를 깨닫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천국을 상속받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렇게 일으킨 자들은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호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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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치료하시는 하나님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호세아7:1-16 2024.09.22
» 7. 참된 회개 영상보기 새창 joywoori 호세아 6:1-11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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